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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식의 허튼소리- 운명을 바꾼 김해불교청년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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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식의 허튼소리- 운명을 바꾼 김해불교청년회 회장
  • 경상도 촌놈 조유식
  • 승인 2014.12.23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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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학력 무학으로 기자가 되기까지<34>

진해에서 통기어 기술 및 외제 자전거 조립과 수리기술을 배워 부산에서 6개월을 취업한 뒤 김해로 스카우트되어 동상동 삼천리자전거 대리점인 중앙자전거상회에서 6개월, 협동자전거상회에서 6개월, 대동자전거상회에서 6개월, 서상동 삼천리자전거상회에서 6개월을 근무했다.

서상동 합성초등학교 앞 삼천리자전거상회에 근무하던 1978년 어느 날 필자와 형, 동생으로 친분이 두텁던 경남대학교 불교학생회 회장 출신으로 김해불교청년회의 임원인 김진령, 천오형 두 동생이 필자를 찾아와 차기 김해불교청년회 회장을 맡아 달라고 했다.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제안을 받은 필자가 펄쩍 뛰며 사양을 했다.

한글도 제대로 모르는 자전거 펑크나 때우는 주제에 김해불교청년회장이라니 얼토당토않은 말이었기에 단박에 거절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약 30여 일 동안 두 동생은 거의 매일 필자를 찾아와서 청년회장이라는 이름만이라도 올려 달라는 것이다.

일은 자기들이 다 알아서 할 테니 형님은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며 수십 번도 더 강조했다. 참으로 별 볼 일 없는 필자에게 많은 용기와 격려를 주었던 고등교육을 받은 인재들인 동생들의 간곡한 부탁을 끝까지 거절할 수 없어 청년회장을 맡기로 했다.

축구공에 미쳐 불청축구조기회에 들어가면서 불교청년회 활동을 해왔는데 회장이라니 걱정과 불안으로 밤잠 설치기를 수일, 결국 김해시 동상동에 있는 연화사(포교당) 회관에서 개최된 청년회 총회에서 회장으로 추대되고 말았다.

불교청년회원으로서 가끔 법회에 참석할 때와는 달리 이제 회장으로 단체를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중압감으로 마음고생 엄청나게 했다.

크고 작은 단체의 회장 자리는 적어도 대학 밥을 먹은 사람 중 훌륭한 인물이 맡는 것으로 알고 있던 터라 객지 김해에서 초등교육도 받지 못한 보통 이하의 청년에 불과했기에 필자에게 회장 자리는 너무 과분하고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난생 처음 숱한 주인어른들과 기술자들로부터 이놈 저놈 소리만 듣다가 최고의 경어인 조 군까지가 최고대접이었다. 이처럼 천대받던 조 군이 조 회장으로 호칭이 바뀌면서 필자의 운명도 180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회장으로서 단체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다짐 속에 매일 밤낮으로 법회의식인 법요집과 목탁 치는 법 반야심경, 천수경 외우기에 열중했다. 밤에는 옆집에 들리지 않게 겨울 솜이불을 덮어쓰고 작은 전구 불에 의지하여 관광유적지에서 산 1000원짜리 장식용 작은 목탁을 치면서 독경을 시작했다.

하루 2~3시간 정도씩 얼마까지 인지는 모르지만 꾀 오랫동안 반복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상하게도 염불과 목탁 치는 것이 너무 좋아 시간만 나면 목탁을 치며 독경을 했다.

그리고 몇 달 후 신도회 법회 때 필자가 목탁을 치며 법회의식 집전을 했는데 잘했다는 평을 받았다.

회장으로 취임한 필자가 가장 먼저 한 사업은 어려운 이웃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조성 사업으로 폐품수집 운동을 전개했다. 50여 명의 회원들은 리어카를 빌려 끌고 다니며 고철과 공병 등을 수집했다.

10여 일 동안 추진했던 이 사업으로는 기금 목표달성에 어려움이 있어 정부가 시행했던 아카시아 잎 수매 운동에 참여했다. 농촌지도소에서 아카시아 잎이 가장 많은 곳으로 추천해준 장유입구 산으로 가서 하루 종일 아카시아나무 가시에 찔려가며 잎을 땄다.

왠종일 노력 끝에 큰 대형 포대 8개 모두 아카시아 잎이 가득 채워졌다.

가축용 사료가 부족했던 정부가 시행한 아카시아 잎으로 수매 운동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데 유별나게 김해불교청년회 회원들만 이 운동에 참여하여 애국도 하고 이웃돕기 기금도 마련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때부터 김해불교청년회는 부처님 말씀 전하는 포교 활동보다 자비사상 실천운동에 더 매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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