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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식의 허튼소리- 18년 만에 나타난 쌍둥이 아빠, 그리고 영원한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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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식의 허튼소리- 18년 만에 나타난 쌍둥이 아빠, 그리고 영원한 이별
  • 경상도 촌놈 조유식
  • 승인 2015.01.26 1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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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학력 무학으로 기자가 되기까지<38>

김해불교청년회 회원들과 가족들의 지극한 도움과 정성을 받아 건강하게 회복한 쌍둥이 엄마와 쌍둥이들, 20여 일 만에 나타난 19살의 쌍둥이 아빠와 찐빵집 개업 그리고 흔적 없이 사라진 그 가족들을 보고 조금은 냉혹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말 못할 사연이 있었겠지만 간다 온다 말도 없이 정들었든 사람들을 뒤로하고 떠난다는 것이 그리 싶지만은 않았을 텐데...

회장인 필자로서 내 가족처럼 돌봐주고 지원해준 회원들과 그 부인들에게 송구하고 미안할 뿐이었다. 우리는 한동안 그 가족들의 걱정스런 이야기로 소주잔을 비우기를 수차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눈에 선한 그 쌍둥이 남매가 사라진 지 18년째 되던 어느 날, 쌍둥이 아빠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때 말없이 떠나게 되어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그날 이후부터 밀양 무안에 정착하여 중화 요리식당을 하여 제법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때 도움을 주신 회원들과 부인들을 한번 모시고 싶다고 했다.

솔직히 괘씸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했었는데 그래도 성공하여 우리를 잊지 않고 초대해 준 것만으로도 고맙고 반갑기 그지없었다. 어느 날 우리는 시간 나는 사람들을 모아 무안으로 갔다.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아담한 가게에 무안의 짜장면 명소집이 되어 있었다.

부인은 바로 옆에 보신탕집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고 쌍둥이 남매들은 너무나 씩씩한 건장한 청년들이 되어 있었다. 이런저런 긴 이야기를 나누고는 우리 일행은 즐거운 마음으로 무안을 떠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쌍둥이 아버지가 김해시 내동 대동 상가 앞 삼우빌딩에서 중화요리 식당을 개업한다고 연락이 왔다. 의아해 하다가 이런저런 사연을 알고 보니 부부 사이가 멀어지면서 헤어졌다는 것이다.

무안의 중국집도 보신탕집도 조금 사두었던 과수원 땅도 몽땅 여러 가지 이유로 다 날려 버리고 빈 털털이가 되다시피 하여 김해로 돌아왔던 것이다.

마침 신축건물 상가 주인이 불교청년회 회원들이었고 20여 년 전 쌍둥이 구원 작전에 참여했던 인연으로 친구가 되어 있던 사이였기에 또 다시 그 쌍둥이 아버지에게 기회를 주자는뜻에서 친구들이 자신들의 건물 2층 상가 일부를 아주 싸게 세를 주어 중화요리 식당을 열게 했던 것이다.

한참을 그곳에서 장사를 잘 하는 듯했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어느 날 가게 문을 닫고 또다시 필자를 찾아와 하는 말이 "형님 이곳 주차장 터 조금만 빌려 주이소. 여기 냉동냉장고 하나 두고 중국집 식자재 납품영업을 해 보겠습니다"라며 애원을 하기에 거절하지 못하고 그렇게 하라고 했지만 그 장사 또한 얼마 가지 못했다. 결국 필자가 경영하던 무인 경비업체 경비대원으로 채용을 하여 근무를 했다.

근무를 한 지 1년여 만에 쌍둥이 중 한 아이가 경북 어느 도시의 직장 여성과 연애를 하여 부모 간 상견례를 하는데 필자에게 삼촌자격으로 자리를 좀 해달라고 부탁하여 참석했다. 그리고 결혼식 날에도 삼촌으로서 가장 먼저 절을 받고 절값을 톡톡히 내기도 했다.

결혼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참으로 특별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부산서 연애하던 친구가 왜 하필 김해 병원에 와서 산모를 입원시켜 필자와 연을 맺게 하고 퇴원시키고 방을 마련하여 따뜻한 방에 재워주고 먹여 주며 키워주다가 헤어졌는데 20여 년이 지난 인제 와서 조가가 지 씨 아이의 삼촌이 되어 그 아이의 장인장모와 사돈이 되어야 했는지 참으로 묘한 인연이 아닐 수 없었다.

필자의 사업체가 부도가 나자 그 쌍둥이 아버지는 학원 버스 기사로 취직을 하여 충실하게 열심히 착하게 살았다.

그 착하고 한 많은 인생을 살아온 그놈이 어느 날 몸에 이상을 느껴 자기 차로 운전하여 시내 종합병원에서 검사를 위해 대기 중 사망했다는 연락이 왔다. 심장마비라고 했다.

1980년 갓 태어난 그놈의 쌍둥이 아들들을 안고 병원을 나섰는데 2013년 이제 그 애비의 싸늘한 시신을 들고 병원을 나서다니 세상에 이런 기구한 인연이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속에 사랑했던 동생을 보냈다.

수야 잘 있나 보고 싶다 이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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