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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식의 허튼소리- 80년 초반 김해지역 초ㆍ중학생들의 결식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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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식의 허튼소리- 80년 초반 김해지역 초ㆍ중학생들의 결식 실태
  • 경상도 촌놈 조유식
  • 승인 2015.02.21 15: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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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학력 무학으로 기자가 되기까지<41>

필자가 회장으로 있는 김해불교청년회가 사회복지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치면서 특히 어려운 청소년들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졌다.

우연한 기회에 청소년 비행 예방을 위한 김해시청, 김해군청, 경찰서, 교육청, 청소년 담당자, 초ㆍ중ㆍ고학생부장, 종교단체 대표자, 사회단체 대표 등이 교육청에 모여 간담회를 가진 적이 있었다.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데 평소 친분이 있던 몇몇 학생부장 선생님들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되었다. 부장선생님들은 초등학생과 중학생 중 점심 도시락을 싸오지 않는 아이가 학교 마다 수십 명에 이르고 있으며 점심시간만 되면 교실 밖 식수대로 달려가 점심밥 대신 물로 배를 채우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하루 새끼는 고사하고 한 끼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고 밥을 굶고 있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 아이들에게 점심 한 끼라도 해결할 수 있도록 행정적인 지원이 절대 필요한 데 아무도 이에 대해 건의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부장선생님들은 건의는 고사하고 교육청에서 학교마다 당부하기를 점심을 굶고 있는 결식 아이들에 대해 절대 외부에 알리지 말고 누가 물어 와도 결식 아이가 없다고 답하라고 강요하고 있다고 했다.

가난한 학교, 불우한 학생이 많은 학교와 교육청으로 인식되면 안 된다는 비뚤어진 일부 교육장들의 출세욕 때문에 가난한 아이들은 더 가난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필자는 지난날 암울했던 과거를 뒤돌아보면서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밥을 굶는 아이들은 없어야 한다는 필자의 간절한 마음이었기에 이들을 돕는 일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김해읍 관내 학교 중 평소 친분이 있던 초등학교, 중학교 학생부장 선생님들로부터 추천을 받아 겨울 방학 때 아이들의 집 주소지를 찾아가 실제 환경 실태를 파악했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삼계초등학교에 다니는 세 자매 집이었다.

할머니와 함께 살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세 자매만 남아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이웃 주민들이 가져다주는 김치와 간장, 국수, 약간의 쌀과 보리, 라면 등으로 하루 한 끼만 먹고 지낸다고 했다. 연탄이 없어 냉방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3년이나 되었다고 했다.

1학년, 3학년, 5학년 이 아이들의 행색는 한여름 그 자체였다. 맨발에 여름 슬리퍼를 신고 5학년짜리 큰언니가 가장이 되어 남아있는 식량에 따라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방문한 곳은 대성동 논실 지금의 김해여중 건너편 나란히 칸칸이 늘어선 달세 방 중 두 번째 집에 장애인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합성초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 집이었다.

필자가 방문한 그때 그 아이는 아버지와 함께 점심인지 저녁인지 모르지만 밥을 먹고 있었다.

둥근 바가지에 담긴 싸늘한 보리밥을 간장 하나만으로 겨울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서 밥을 먹고 있었다. 제비 새끼가 어미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먹기 위해 머리를 내밀듯이 이들 부자도 머리만 이불 밖으로 내밀고 찬 보리밥을 먹고 있었다.

이곳 역시 연탄이 없어 냉방으로 지내 온 지 수년째라고 했다.

필자가 청년회원들과 함께 약 2개월간 직접 어려운 아이들의 가정환경을 조사하면서 대다수 비슷한 환경에서 한마디로 죽지 못해 살고 있다는 표현이 딱 맞아 떨어질 정도로 사람이 살 수 없는 그런 비참한 환경에서 겨우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았다.

그 아이들을 보면서 많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냉혹한 이웃들과 사회 그리고 종교 시설과 단체 행정기관들에 대해 원망을 하기도 했다.

필자가 돌아본 60여 곳의 어려운 소년ㆍ소녀가장들과 장애인 가족들에게는 하나님의 사랑도 부처님의 자비도 없었다.

영상으로만 봐 오던 6.25전란 당시 난민촌을 방불케 할 정도로 우리 주위에 아니 바로 코앞에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따뜻하게 누울 곳도 없이 고통 속에 나날을 보내는 이웃들을 보면서 많이 괴로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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