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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식의 허튼소리- 김해 최초 번호계 부도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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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식의 허튼소리- 김해 최초 번호계 부도 사건
  • 경상도 촌놈 조유식
  • 승인 2015.03.22 2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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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학력 무학으로 기자가 되기까지<45>

필자가 김해 와서 가장 먼저 사귄 친구가 중동건설 붐을 타고 한국의 1군 건설업체서 모집하는 중동지역 건설현장 경력사원으로 합격했다.

국가 경제가 위기에 처하고 한국건설경기가 연일 곤두박질치자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관료 7명에게 중동건설 붐이 일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등으로 날아가게하여 그들과 경제협력 교류 문제를 논의해 보라는 특명을 내린다.

중동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각료들이 순방국으로 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들고 오자 박 대통령은 즉시 국내 건설경기와 해외건설 촉진법을 제정하기 이르렀다.

해외건설 촉진법이란 문자 그대로 해외 건설을 촉진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것으로 국가에서는 중동진출 및 해외진출을 독려하기 위한 각종 지원 정책을 담고 있었다. 이 정책은 오늘날 중동의 신화, 현대의 정주영과 이명박을 탄생시켰으며 대한민국의 건설기술 또한 세계시장에서 인증받는 계기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나라살림살이도 엄청 나아졌으며 80년도 한해만 100억 달려 수주를 할 정도였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 수많은 건설사들이 건설현장의 경력직 사원을 모집하고 응시생들을 대상으로 실습 면접을 통해 선발했다. 평군 100대 1 정도의 경쟁력을 보인 건설기술자로 필자의 친구가 뽑혀 중동으로 갔다.

친구는 참으로 열심히 하여 매달 월급을 받아 꼬박꼬박 아내에게 보내 왔는데 그 돈이 김해에서 직장생활 하면서 받은 월급의 약 4배 이상 많은 큰돈이었다.

친구의 아내는 최소한의 생활비를 제외하고는 모두 계를 넣어 목돈을 만들기로 하고 김해에서 제법 인지도가 있는 한의원 원장 부인과 예식장 대표부인 김해시 전직 고위공직자 부인 등 3명이 공동계주로 있는 번호계에 들었다.

5년간 60번까지 있는 그 번호계에 친구의 부인도 4구좌(57번 58번 59번 60번)를 가입하여 매달 곗돈을 착실하게 냈다.

친구의 부인은 친구가 4~5년 후에 귀국하면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돈을 먼저 타는 앞 번호 보다 월 계금이 적게 들어가고 많이 타는 끝자리 번호들을 선택했던 것이다. 김해서 태어나고 김해서 자란 친구가 난생처음 타국 공사현장에서 힘들고 외로운 나날을 보내며 많은 고생도 했다.

친구가 보내오는 편지내용 중에는 힘들지만 보람을 느끼는 것은 조금 나아진 경제사정으로 김해 대식구들의 생활이 조금 넉넉해졌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조국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에 건설 기술자들이 크게 기여를 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등에서 땀 흘려 가며 번 돈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을 것으로 믿고 있던 그 피 같은 친구 돈이 계주들의 사기로 단돈 1원도 받지 못하는 대형사고가 터졌다.

56번까지 곗돈을 잘 받아 가던 그 계주들이 57번째, 친구부인이 곗돈을 타는 날 계가 펑크(빵구) 났다며 곗돈을 태워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58번 59번 60번까지 모두 곗돈 6천여만 원에 대해 한 푼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친구가 급기야 휴가를 내어 귀국하여 계주 집을 찾아다니며 사정도 해보고 항의도 해보았지만 계주들은 방법이 없다며 배 째라는 식이었다. 참다못한 친구가 계주들 집을 찾아다니며 안방에 인분을 퍼붓는 바람에 경찰에 잡혀가 구류를 살기도 했다.

남의 돈 6천만 원을 떼먹은 사람은 가만두고 자신만 구류를 살게 했다며 친구가 낫을 들고 계주 집으로 가는 것을 겨우 말려 안정을 시킨 후 경찰에 고소를 하자고 했다.

그렇게 하여 경찰에 고소를 했지만 고소 한 계주들이 혐의가 없다는 통지서가 경찰서로부터 날아와 또 한 번 소동이 일어났다.

필자와 친구는 부산지방 검찰청을 찾아가 재수사를 요구했고 우리의 요구가 받아들여져 수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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