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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식의 허튼소리- 노태우 대통령 후보에게 전한 화엄선사 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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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식의 허튼소리- 노태우 대통령 후보에게 전한 화엄선사 화두
  • 경상도 촌놈 조유식
  • 승인 2015.06.23 16: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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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학력 무학으로 기자가 되기까지 <58>

1987년 6월 어느 날 김해 신어산 동림사 화엄선사께서 필자를 좀 보자 한다는 연락을 받고 화엄선사를 찾아뵈었다.

선사께서 필자를 보고 말씀하시기를 "내일 오전에 서울에 좀 다녀와야겠다. 내가 써준 이 글을 노태우 대통령 후보에게 전달하고 설명해 드리고 오라"고 했다.

그리고 선사께서 약 1미터 정도 되는 사진을 넣은 통을 꺼내어 그 속에 두루마리 형태로 들어 있는 화선지를 꺼내어 펼치시고는 거기에 쓰여 있는 문장에 대해 설명을 해 주셨는데 그 내용은 "百尺竿頭進一步 大死一番 (백척간두진일보 대사일번)"이었다.

百尺竿頭進一步 大死一番은 "백 척이나 되는 장대 위의 낭떠러지에서 한발 더 나아가 크게 죽어라. 그래야 다시 크게 살 수 있다."

백척간두의 막다른 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떨어져 죽을 것같이 생각되지만 사실은 더 크게 살아나게 된다는 말. 곧 두려움을 무릅쓰고 목숨을 걸 때 비로소 살 길이 열린다는 의미라고 선사께서 일러 주셨다.

선사께서는 "한 며칠 전에 노 후보로부터 직접 전화가 와서 이 난국을 이겨낼 수 있는 지혜의 말씀을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자네가 이것을 노 후보에게 가져가 설명해 드리고 회신을 받아오라"고 했다.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당시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던 6ㆍ10항쟁을 비롯한 전국대학생들의 민주화 요구 시국선언과 시위 등을 지혜롭게 잘 이겨 내어야만 했다.

언론과 국민들은 노태우 후보가 사퇴하지 않겠느냐는 여론이 형성될 정도로 노태우 후보의 입지는 사면초가였다. 이런 와중에 평소 노 후보 부인의 이모와 친분이 두터웠던 화엄선사께 이 난국을 벗어날 수 있는 가르침을 달라고 요청했던 모양이었다.

다음날 필자는 화엄선사의 선필이 담긴 사진 통을 어깨에 가로로 둘러매고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갔다. 김포공항에서 당시 민정당 당사가 있는 인사동까지 택시를 타고 도착해 보니 오전 11시였다.

선사께서 반드시 12시 전에 전달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서둘러 출발하여 도착한 것이다. 당시는 민정당 노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본부가 있는 곳답게 경비가 철저했다.

노 대통령 후보의 사무실은 당사 6층에 있었고 5층에는 심명보 비서실장 방이 있었는데 승강기는 5층까지만 운행되도록 해 놓았던 것으로 기억 한다. 노 대통령 후보의 비서실장인 심명보 비서실장의 비서에게 노태우 후보를 찾아오게 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꼭 만나고 가야 한다고 했더니 기다리라고 했다.

약 50여분을 기다린 후 선거대책본부로 돌아온 노태우 후보를 만나 화엄선사께서 보내서 왔다고 하고는 매고 간 사진 통에서 화선지를 꺼내 설명을 드렸다. 노 후보께서 필자를 보고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다. 선사님께 명심하겠다고 전해 달라"고 하셨다.

필자가 노태우 후보를 만난 날이 1987년 6월 23일이었고 그로부터 6일 뒤 6ㆍ29선언이 나왔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 저는 각계각층이 서로 사랑하고 화합하여 이 나라의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정부 역시 국민들로부터 슬기와 용기와 진정한 힘을 얻을 수 있는 위대한 조국을 건설하기 위해 비장한 각오로 역사와 국민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 후보 6.29선언 중) 6월 29일 노태우 대통령 후보는 국민들의 대통령 직선제 뜻을 받아들이겠다는 내용의 "시국수습을 위한 8개 항"을 선언하였다.

대통령 직선제, 김대중 사면복권, 시국사범 석방, 지자체 및 교육자치 실시, 정당 활동보장, 대통령선거법 개정을 통한 공정한 경쟁보장 등 6.29선언으로 완전히 환골탈태하는 노태우 후보는 결국 전국을 안정시키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화엄선사께서 주신 화두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이지만 누구에게도 확인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당선 후 노태우 대통령의 형제, 자녀, 처이모 등 가족들이 동림사 화엄선사를 찾아와 감사인사를 하기도 하고 자주 왕래를 하기도 했다.

필자는 그때부터 `百尺竿頭進一步 大死一番`이란 글귀를 잊어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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