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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식의 허튼소리- 월간 금관가야 창간, 한국을 알리는 우수잡지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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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식의 허튼소리- 월간 금관가야 창간, 한국을 알리는 우수잡지 선정
  • 경상도 촌놈 조유식
  • 승인 2015.07.05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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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학력 무학으로 기자가 되기까지<60>

종교 신문과 월간잡지 기자활동을 하면서 느끼고 배운 경험을 토대로 신문 또는 잡지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이 같은 결심을 하게 된 계기는 1981년 미래 지도자로 선정되어 지도자 연수교육을 받으면서 마음먹었던 것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서울에 있는 공보처에서 정기간행물등록을 받아 심사 후 등록증을 발급해 주었기 때문에 등록서류를 만들어 공보처에 접수를 시켰고 약 10일 후 등록증을 받았다. 편집장과 기자를 채용하고 본격적으로 금관가야 창간 작업을 했다.

편집방향은 김해(가야)의 역사와 문화 발굴소개, 전통사찰 탐방, 지역 문화 예술 활동소개, 지역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지역 단체와 개인 소개, 어려운 환경에 처한 이웃 발굴소개, 역사유적지 및 문화재 탐방, 민원현장, 소외계층들의 목소리 정취, 독자들의 다양한 글 게재, 아동ㆍ청소년과 노인 문제, 지역의 현안, 환경문제, 결식아동 문제, 장애인 문제 등 지역 밀착형으로 편집을 했다.

월간 금관가야는 칼라지면을 포함하여 총 70여 페이지로 편집 제본하여 매월 1만2천부를 발행했다.

가락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고 한국불교 최초 도래지인 가야불교의 역사와 유적도 함께 알리고 싶은 마음에 공짜로(무료) 전국의 군부대와 교도소, 주요사찰, 박물관, 도서관, 국회와 정부행정부처 등 1만여 곳에 우편으로 발송했다. 그리고 2천여 권은 김해지역 인사와 기관단체에 우편배송을 했다.

필자를 비롯한 편집진들이 나름대로 열정을 가지고 취재와 편집을 하여 서울에 있는 출판사에서 제작을 했다. 당시에는 원고와 사진을 직접 들고 가서 의뢰를 해야만 했기 때문에 탈고와 교정까지 한 달에 두 번은 서울을 가야만 했다.

돈도 많이 들어가고 힘들기도 했지만 김해불교청년회원들의 도움으로 금관가야는 계속 발행이 되었고 시민들과 잡지를 받아 본 전국 각지 독자들의 반응도 좋았다.

우리는 종교와 정치 등 어느 한 곳에 편중하지 않고 모두에게 필요한 정보를 담아 제공한다는 사명감으로 열심히 그리고 재미나게 잡지를 만들었다.

잡지를 창간한 지 만 7년 되던 해인 1994년 대한민국 국회의장이 보낸 등기우편물이 금관가야 발행인(조유식) 앞으로 왔다. 의아해 하며 등기 내용물을 살펴보았더니 국회의장이 보낸 공문서 2장이 들어 있었다.

내용은 귀하가 발행하고 있는 월간 금관가야 잡지가 대한민국 국회가 선정한 한국을 알리는 우수 잡지로 선정되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금관가야의 보도기사 상당수가 대한민국과 수교를 맺고 있는 각국 정부와 국회에 번역되어 제공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환호를 지르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대도시도 아니고 소도시에서 그것도 신문방송을 전공한 전문인이 아니라 그저 열정 하나로 똘똘 뭉쳐 제작해 온 금관가야가 한국을 알리는 우수 잡지로 선정되었다는 것은 김해의 자랑이기도 했다.

국회의장이 보낸 공문서에는 대한민국 국회가 선정한 우수 잡지에 대한 각종 지원과 혜택이 주어진다는 안내 내용도 있었다.

편집 팀과 기자들이 지금부터 새로운 각오로 더 열심히 알차게 다양한 정보를 발굴하여 대한민국과 김해를 알려 보자는 결의까지 했다. 하지만 이 같은 기쁨과 행복함도 얼마 가지 못하고 금관가야는 휴간에서 폐간으로 이어지면서 영원히 김해에서 사라졌다.

금관가야 잡지사가 사용하던 왕릉 앞 김해문화센터와 불교회관 건물주 아들의 요구로 2층 상가에서 쫓겨나면서 원상복구를 해 주느라 필자가 감당하기 힘든 거액의 공사비를 들였기 때문에 금관가야를 다시 발행할 수 있는 공간마련과 제작비를 충당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늘 아쉬움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지만 지나간 세월이기에 되돌릴 수도 없다.

다행히 2007년 영남매일을 창간하여 오늘까지 금관가야가 못다 한 사명을 충실히 담아 금관가야의 혼을 이어가고 있어 다행히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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