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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를 대표하는 9길(걷고 싶은 길)- 4길 분성산길 (48.3km) '가야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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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를 대표하는 9길(걷고 싶은 길)- 4길 분성산길 (48.3km) '가야의 꿈'
  • 특별 취재팀
  • 승인 2015.09.02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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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품관광도시 김해`
 `김해를 대표하는 9경(볼거리), 9미(먹을거리),
 `9품(살거리), 9길(걷고 싶은 길)을 소개합니다.

김해천문대 이야기

 

 
   

김해시내를 한 눈에 굽어보기에 좋은 분성산은 높이가 382m에 지나지 않는 야산이지만 평야지대에 우뚝 솟은 산이라 천문대가 자리잡기에는 좋은 조건을 지녔다.

김해천문대는 밀레니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김해시에서 지어 2002년 2월 1일 문을 열었다. 외관은 김수로왕이 태어난 알을 상징하듯 둥근 모양을 하고 있다. 제1관측실, 제2관측실, 보조관측실 등 3개의 관측실과 전시실, 천체투영실을 갖추었다.

김해시내와 가야컨트리클럽을 잇는 도로에서 구절양장의 포장도로를 한참 올라가야 천문대를 만날 수 있는데 야간 천체관측에 방해를 받지 않도록 주차장에서 다소 멀리 떨어져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10분 정도 비탈길을 올라가는 수고를 들여야만 한다.

지름 8m의 천체투영실에 들어가서 밤하늘의 별자리를 관찰하는 것이 천문대 방문의 첫 번째 순서이다.

계절별로 달라지는 별자리를 전문 해설자가 등장해서 소개해준다. 오후 2시부터 8시30분까지 하루에 7회 실시되지만 주말에는 오후 3시30분과 4시30분 등 두 번이 더 늘어난다.

이렇게 실내별자리 해설을 들은 뒤에는 천체 관측에 나선다. 오후 7시10분, 7시40분, 8시10분, 8시40분, 9시10분에 실시된다. 단 5분 전에 날씨를 보고서 개설 여부가 결정된다. 구름이 낀 날에는 별자리를 관측할 수 없는 것이다.

지름 7m 규모의 원형돔인 제1관측실은 플루오라이트 아포크로매트 굴절망원경(구경 200mm)을 보유하고 있으며 역시 지름 7m 규모의 원형돔인 제2관측실은 리치크레티앙식 반사망원경(구경 600mm)을 보유하고 있다.

소도마을 이야기

문화의 도시 김해에서 배달문화 연구회가 운영하는 “소도마을”은 김해시에서 유일하게 한민족사상을 고취하기 위해 제천행사와 다양한 문화행사를 개최하며 우리민족의 아름다운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곳으로, 자연을 보존하기 위하여 상당한 수목을 주위에 심고 가꾸어 10여년이 지난 지금 많은 시민들의 휴식처로써의 “소도마을”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사충단 이야기

 

   
 
  ▲ 사충단.  
 

충의각은 김해문화협의회가 최근 분성산에 흩어져 있던 흥선대원군 만세불망비 등 4개의 비를 모아 건립했다고 한다.

충의각은 분산성의 수축내력 등을 기록한 4개의 비석을 보존하기 위해 건립한 건물이다.정국군박공위축성사적비(靖國君朴公葳築城事蹟碑)는 고려말 분산성을 보수하여 쌓은 박위장군의 업적과 내력을 기록한 것으로 김해부사 정현석이 고종8년(1871년)에 세운 것이다.

흥선대원군 만세불망비(萬世不忘碑) 2기는 김해부사 정현석이 분산성을 보수하여 쌓은 후 이를 허가해준 흥선대원군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비석에는 고려말 정몽주가 쓴 분산성 관련 글도 새겨져 있다.

부사통정대부정현석형세불망비(府使通政大夫鄭顯奭永世不忘碑)는 분산성을 보수하여 쌓은 정현석 부사의 공을 영원히 잊지 않고 기리기 위해 고종 11년(1874년)에 건립한 것이다.

만장대 이야기

 

   
 
  ▲ 만장대.  
 

김해시민들에게는 “만장대”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데, 만장대는 조선시대에 대원군이 왜적을 물리치는 전진기지로 ‘만길이나 되는 높은 대”라는 칭호를 내렸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1999년에 복원된 봉수대 뒷편의 바위에는 만장대라 쓴 대원군의 친필과 동장이 새겨져 있다.

분산성 이야기

 

   
 
  ▲ 분산성.  
 

분산성은 산꼭대기에 있는 평탄한 지형을 둘러서 그 주위에 남북으로 긴 타원형을 이룬 성벽으로 수직에 가까운 석벽은 높이가 약 3∼4m인데 무너진 부분이 적지 않다. 이 곳에 세워진 ‘정국군박공위축성사적비(靖國君朴公葳築城事蹟碑)’에 의하면 이 산성은 조선 초기에 박위(朴葳)가 고산성(古山城)에 의거하여 수축한 뒤 임진왜란 때 무너진 것을 1871년(고종 8) 다시 현재의 성벽으로 고쳤다고 한다. 성기(城基)의 선정법은 삼국시대 산성의 주류를 이룬 테뫼식[鉢卷式]을 따른 점으로 미루어 그 시축(始築) 연대가 삼국시대임을 추측할 수 있다.

봉수대이야기

사자바위 바로 뒷터에 있으며 왜구들이 쳐들어오면 가덕도-녹산-분산으로 이어지는 봉화가 여기를 거쳐 밀양으로 건너갔던 곳이다.

김해테마파크

고구려, 백제, 신라가 격돌하던 삼국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뛰어난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500여 년 동안이나 찬란한 역사를 꽃피운 나라 '가야' .

역사 속에서 '잊혀졌던 왕국' 가야가 되살아나고 있다. 바로 드라마 '김수로' 에 의해서다.

'김수로' 는 화려한 영상미도 그렇지만, 베일에 쌓여있던 가야의 건국신화와 철의 왕국을 건설한 인물 김수로를 재조명했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실 삼국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빠지지 않을 만큼 중요한 역사적 가치가 있지만,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조차 다뤄지지 않을만큼 '가야' 는 미지의 영역이나 다름없었다.

역사의 기록도 거의 없거니와 1970년대 이후 유물이 쏟아지면서 뒤늦게 주목받은 탓이다. 금관가야의 실제 고도였던 김해에게도 많은 시선이 옮겨진다. 실로 김해 도시 곳곳에는 옛 가야의 유물들이 산재해있을 뿐 아니라 전설 속 지명과 흔적들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가야 역사기행지로 굉장히 매력적이다. 2000여 년의 시공간을 뛰어넘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고대 가야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김해로의 여행을 시작해보자.

철을 만드는 시설인 쇠부리가마와 단야공방, 제련로 등이 꾸며진 야철장과 주요 인물들의 무대가 되는 김수로의 나라 '구야국 마을 해반천', 제사장인 천군 '이비가의 집', '가야왕궁' 등이 들어섰다.

김해의 해일을 없앤 해은사

반도 남단이면서 태평양의 거센 파도의 직접적인 피해를 면할 수 있었으며 서북풍이 몰아치는 겨울절기에는 모진 찬 기운과 눈보라의 동해로부터 보호된 지역들이었다.

그러나, 연중 두 세 번의 계절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이 땅의 기후조건으로 하여 폭풍이 몰아치거나, 폭우가 쏟아지는 시기에는 어김없이 김해 지역은 낙동강의 내륙으로 흘러드는 강물과 넘실대는 바닷물의 합류로 인한 몸부림이 심하면 바닷물이 넘쳐 들끓었던 것이다.

해변을 따라 이룩된 산들은 그 형상이 거북, 용, 호랑이 등의 모양을 하여 김해지역의 기질은 거북을 닮은 돈후, 인자, 유구와 장생이 있으며, 풍운 조화를 불러 승천하는 변화난측의 용의 진운이 있는가 하면 모질고 사나우며 살기 어린 죄와 같은 기질을 대변하는 산중 호랑이의 무서운 바탕도 함께 하고 있었기에 해신, 산신, 걸신 등의 기운을 겨루는 땅이기도 한 가락 지역이었다.

일찍이 장유화상이 임호산에 절을 지어 가락의 악귀를 눌렀다는 이야기는 이러한 지기 조화를 부처님의 뜻에 귀순시키려는 방편이었던 것이다.

화상은 말하였다. "이 땅에 깃든 거북, 용, 호랑이 등의 영험한 지기 중에서 이미 자기는 호랑이의 악기를 붙들어 매었는데 어찌하여 대왕과 왕후께서는 나머지 둘의 기운을 다스리지 못한다는 것입니까?"라고 되물었다.

왕과 왕후는 서로 얼굴을 바라보다가 그제서야 왕후께서 그말의 참뜻을 알아 차렸던 것이다.

이런 말을 들은 허왕후께서는 죽어서 구지봉에 안길 것을 작정하였으며 임금님은 용신의 기운을 눌러 함께 할 수 있는 물명당을 점지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수로왕 이후 점차 바다의 넘침이 줄어들고 또 물의 깊이가 줄어들어 해마다 한 두 차례 넘치던 바닷물이 그 기세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은 벌써 뭍으로 변한 금발의 넓은 들은 띄엄띄엄 언덕과 작은 산들을 의지하여 태고의 전설을 안고 풍부한 김해를 말해주고 유서 깊은 옛 이야기들이 잊혀져 가고 있다.

바다에 떠 있던 가락의 오봉산과 일곱 개의 점으로 물결 속에 점점이 떴던 옛 가락의 아름다운 산천을 머리에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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