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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산성 수축 관련된 명문(銘文) 다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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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산성 수축 관련된 명문(銘文) 다수 발견
  • 조유식취재본부장
  • 승인 2016.05.19 15: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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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사적 제66호로 지정된 김해 분산성 내 자연 암벽에서 조선말 분산성 수축과 관련한 명문(銘文)이 다수 발견되었다.

국립가야문화연구소에 근무하던 박종익 학예연구관(현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장) 등이 경남지역 봉수대 조사 중 1개소를 처음 발견한 이래 김해문화의전당 김해학동아리 회원들이 추가로 여러 개를 더 발견하여 이를 김해시 문화재과에 알려왔다.

이에 따라 5월 17일 문화재과 및 동아리회원들이 비문 등을 확인 한 결과 座首 朴東浣(좌수 박동완), 別將 吳義(별장 오의), 折衝 朴德權(절충 박덕권), 김영년(金永年)등을 비롯한 18명의 인명(人名) 과 만장대(萬丈臺) 등의 각자(刻字)가 확인되었다.

이 명문들은 대부분 1873년(고종 10년) 분산성 개축 당시 공사를 감독 또는 관여한 관리와 지역 양반들의 이름으로 보이는데 그 중 일부는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기록에도 확인되어 사료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만장대는 분산의 별칭으로 김해지역에서 널리 불리고 있다.

특히 한국최초의 근대학교인 원산학사 설립(1883년)에 공을 세운 정현석(鄭顯奭)과 정헌시(鄭憲時)의 인명도 확인되어 근대사연구의 새로운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분산성은 김해의 진산인 분산 정상부에 테를 두르듯 쌓은 석축으로 길이 940여m의 테뫼식 산성으로 가야시대 수로왕이 처음 축성했다고 전해져 이후 고려말 대마도 정벌을 위해 박위 장군이 수축한 이후 조선말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김해부사 정현석 등이 다시 보수하였다고 전한다.

시는 분산성 개축과 관련하여 조선말 김해지역의 정치사회 양상을 해석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며 추후 문헌자료를 토대로 분산성 개축관련 인명을 세밀히 분석하여 도문화재로 지정 신청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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