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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나누고 함께해야 할 때 입니다"배상기 회장 "봉사는 받아서 기쁜 선물보다 줘서 기쁜 선물"
최금연 기자 | 승인 2018.01.30 19:40
▲ 배상기 합동기업(주) 회장.

"김해 분들이 저를 너무 좋아해 주신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김해분들이 보여주신 고마움을 이젠 나누어야 할 때인 것 같아 함께 나누고 함께 하고 있습니다."

16년 전 딸랑 20만원을 움켜쥐고 충남 논산의 한 젊은 청년은 김해에 첫발을 디뎠다.

아무런 연고 없는 김해에 석재(石材) 사업을 하는 삼촌만 믿고 왔다.

삼촌 밑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하며 김해에 정착을 했고 어머니의 8번의 암수술 뒷바라지를 했으며 하반신 마비로 13년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버지를 돌보며 `대리석 디자인 특허`를 받았다.

그리고 2남1녀의 자녀를 둔 건실하고 모범적인 가장으로 김해에 뿌리를 내리고 주위의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제2의 인생 서막을 열었다.

합동기업(주) 배상기(39세) 회장의 화려한(?) 외면이다.

배상기 회장의 어린 시절은 가방이 아닌 돌맹이를 손에 쥐고 다녀야 했고 공부보다는 싸움을 배워야했다.

베트남 참전용사였던 아버지는 전쟁 후유증과 외상 후 심한 스트레스 증후군을 겪고 있었는데 그 고통의 끝은 가정폭행과 알콜중독이었다.

"아버지께 맞기도 많이 맞았어요. 이유 없이 맞기도 했지만 사실은 제 위로 두 살 터울의 형이 있다. 그 형이 몸이 참 약했다. 아버지는 이런 형이 항상 불안했던 모양인지 저에게 형을 잘 지키라는 명령 아닌 명령을 내렸다. 형이 밖에서 맞고 오거나 학교에서 학용품을 빼앗기고 오는 날은 죽는 날 이었다. 일주일씩 학교 못가는 건 보통이고 항상 볏짚에서 잠을 자야했다. 아침이면 어머니가 아침을 가져다 줬다. 저 때문에 우리 어머니도 참 많이 맞았어요"라며 어머니 이야기를 했다.

"우리 어머닌 암 수술을 8번 했어요. 유방암, 자궁암, 대장암, 직장암 등등 몸 안의 장기를 다 잘라내는 수술을 했어요.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어머니가 수술을 할려면 돈이 만들어지더라고요. 그땐 제가 참 힘들 때 였거던요. 현장에서 먹고 자면서 젊은 놈이 너무 억척을 부린다는 주위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현장의 스티로폴 위에서 자고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다른 사람 보다 더 열심히 일을 했으니 꼴사나웠겠죠. 그러나 전 어쩔 수가 없었어요. 어머니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선..."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눈물이었다.

"엄마가 수술을 해야 한단다. 수술하면 살 수 있다는데 수술 좀 해주면 좋겠다"는 아버지의 말에 두 번 생각할 이유도 없었다. 주위사람 눈치 볼 시간도 없었다. 오직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죽어라 일만했다.

그 결과 8번의 큰 수술 후에도 어머닌 고맙게도 건강하게 살아계신다. 병과의 사투는 아직 진행 중이지만~

하반신 마비에 알콜중독으로 오래 동안 병원생활을 하다 세상을 떠나던 아버지는 "미안하다. 네가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네가 너무 좋고 좀 더 강해졌으면 하는 마음에 그랬는데 미안하다"는 말에 배 회장은 그런 아버지가 너무 안스러웠고 가슴 아팠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파 삼촌의 권유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논산에서 도망쳐 온 그는 김해에서 16년이라는 긴 시간을 돌(石)과 함께 하고 있다.

비바람에도 끄덕 없던 돌덩이가 배상기 씨의 손을 거치면 수채화 같이 화려한 돌이 되고, 산수화를 그려놓은 듯한 담백한 돌이 된다. 그리고 피카소 그림을 방불케 하는 신비로움을 가져오는가 하면 아무런 멋을 부리지 않았는데도 자꾸만 뒤돌아보게 하는 그런 멋을 만들어낸다.

배상기 씨는 돌에 그렇게 생명을 불어넣으며 `대리석 디자인 특허`를 받았다.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낯선 설계도면과 사투를 벌인 결과 이렇게 큰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주경야독의 표본을 보인 셈이다.

삼촌이 운영하던 합동석재에서 일을 하며 세상을 알고 김해를 배워나갔다.

삼촌을 따라다니며 빌라며 원룸 등의 건축 일을 배우면서 이젠 혼자 해도 될 것 같은 생각에 독립을 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했다. 다른 업체보다 낮은 견적으로 최고의 집을 지었고 그러자 김해에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배상기 사장한테 집을 맡기면 돈은 적게 들고 집은 단단하고 이쁘게 잘 지어준다"고~

물밀듯이 밀려드는 공사로 몸은 피곤했지만 자신을 알아주고 믿어주는 사람들이 너무 고맙고 감사했다. 그러나 이런 감사함도 잠시, 경기침체로 본의 아니게 부도가 나고 나를 믿고 일을 맡겼던 분들에게 실망을 주었다.

`사회봉사활동명령`

무료급식소에서 봉사활동명령을 수행하면서 태어나 처음으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식사준비를 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봉사활동을 수행하려니 창피하고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했다. 그러나 하루 이틀 사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가슴 속이 꽉 채워지는 듯 했고 뿌듯했다. 무엇보다 너무 행복했다.

"봉사는 받아서 기쁜 선물보다 줘서 기쁜 선물이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오히려 내가 기쁘고 마음이 좋아졌다. 함께 나누어서 받은 것이 더 많은 듯 오히려 내가 봉사를 당하는 것 같았다"고 그때를 회고했다.

배상기 씨가 운영하는 합동기업(주)은 집을 짓기 위해선 꼭 필요한 부분의 업체 대표들이 모인 회사다. 그러니까 전기, 도배, 장판, 수도 등의 업체를 이야기 한다.

같은 회사에 있어도 얼굴보기 어렵고 그러다보니 유대관계도 없다. 경조사가 있어도 대표인 배 회장만 참석하게 되고 한 회사에서 한 솥밥을 먹는다는 의미가 없는 것 같아 배 회장이 묘책을 냈다.

"친목도 도모하고 봉사활동도 하는 모임을 만들자"고 "무슨 쓸데없는 소리하냐, 우리도 먹고 살기 힘든데, 우리가 무슨 힘으로 남을 도우냐"며 업체 대표들은 불만을 늘어놓았지만 배 회장은 `같은 마음 같은 생각으로 달려가자`는 뜻의 `동인회`를 발족하고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갖기 시작했다. 술 한 잔 하자면 어디 던 달려오던 회원들이었다.

그러나 봉사활동가자고 하면 다들 시큰둥했다. 그러나 한 달에 한번이 두 번이 되고 세 번되더니 이제는 회원들이 봉사활동 안가냐고 보챌 정도란다.

"아빠 오늘 봉사활동 간다"
"아빠 오늘 공치러 가는데 아무한테 이야기하지마라"는 말 중 어느 게 더 멋있어요?

배상기 회장의 뜬금없는 질문에 눈만 꿈벅였다.

"하하하.. 우리 회원들이 요즘 이렇게 말합니다. 봉사활동 갈 때마다~"

돈 씀씀이가 헤픈 회원들 마음의 물꼬를 바꾸어 놓았다.

"이백만원 가지고 룸살롱가면 어질어질해 질 정도로 대접받고 기분 좋게 온다. 그러나 다음날은 꼭 후회한다. 머리 아프고 속 쓰려 후회하고 영 찜찜한 기분을 후회하고 도움되는 게 하나도 없다. 그러나 봉사활동을 하고 오면 돈 한 푼 안 들어도 가슴은 두근거리고 자꾸만 웃음이 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마음이 뿌듯해진다"고 한다.

"내가 태어나 제일 잘한 일은 동인회 회원이 되어 남을 돕는 봉사활동을 했다는 것"이라며  한 회원이 송년회에서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동인회를 발족할 때는 집수리 봉사를 목적으로 했다. 우리 회원들이 자신 있게 할 수 있고 남의 손 빌리지 않아도 되는 일, 그것은 집 짓는 일이기에 자신이 있었다.

집수리 봉사 제1호로 주촌의 모 할머니 집을 우여곡절 끝에 수리 마쳤다.

그러나 더 이상은 집수리 봉사를 할 수가 없었다. 집수리 봉사를 해줄 집도 마땅히 없을 뿐 아니라 동사무소의 추천으로 찾아가보면 모 방송의 나는 자연인이다 등에 출연했던 집을 수리해 달라는 어처구니없는 제안에 집수리 봉사는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회원들은 어려운 시설이나 무료급식소 등을 찾아다니며 필요한 식자재와 기부금을 기탁하며 설거지 등 회원들이 직접 몸으로 느끼는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배상기 합동기업(주) 회장은 "우리 회원들의 얼굴 표정이 달라졌다. 현장에서의 날카롭고 사나운 모습들이 봉사활동을 하면서 부드럽고 맑게 밝아졌다. 그리고 남을 배려하는 여유와 너거로움도 생겼다"며 조금씩 변해가는 회원들의 모습에서 보람을 느낀단다.

이런 회원들의 정성과 변화에 찬물을 끼얹은 일이 지난 김장철에 있었다. 해마다 12월이면 김장김치를 해서 홀몸어르신과 어려운 이웃에 전달해 왔다. 물론 동사무소의 추천을 받아서다.

지난해도 변함없이 동사무소의 추천을 받아 독거노인이신 한 할머니 댁에 김치를 가져다 드리고 배달한 김치 박스를 사진으로 남겼다. 할머니를 촬영하거나 할머니가 사는 집을 촬영한 것도 아니다. 다만 김치가 제대로 배달이 되었는지 확인하기위해 배달 후 김치박스를 사진으로 찍어오라고 했는데 그것이 화근이 되었다.

김치 배달 며칠 후 파출소 직원이 파출소에 신고가 들어왔다며 동사무소 직원 함께 난처한 얼굴을 하고 찾아왔다.

전후 사정을 듣고 설명을 하고 있는데 밴츠를 탄 아주머니 한분이 씩씩거리며 "왜 이따위를 가져 다 주고 사진을 찍느냐. 우리는 이런 거 필요 없다. 우리는 이런 것 받으면 당신들 때문에 피해를 본다. 그러니 앞으로 이런 짓 하지 마라"며 김치 박스를 내동댕이치고 돌아갔다.

아마도 할머니가 자식들 덕분에 정부로부터 뭔가를 받고 있는 모양인데 사진 때문에 산통이 깨질까봐 그래서 그 할머니의 며느리가 밴츠를 타고 찾아와서 항의를 한 것이다. 행여나 김치로 인해 모든 것이 뽀롱나서 뭔가를 받지 못할까 걱정이 되어서 말이다.

"우리는 행정관서에서 추천해 주면 믿고 후원도 하고 많은 도움은 안 되더라도 힘이 될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이런 일이 한번 벌어지면 우리 회원들은 힘이 빠진다. 이런 사람으로 인해 정말 어렵고 힘든 사람들은 도움 받을 기회를 놓쳐버린다"며 "행정관서의 나태한 업무로 인해 배고프고 추운사람은 더 어렵고 힘든 겨울을 나야하고 자식 잘 둔 무늬만 어려운 사람들은 먹을 것이 넘쳐나서 겨울이 한없이 좋기만 할 것이다"며 게으른 공무원들의 태도를 꼬집었다.

배상기 회장은 요즘 너무 행복하다고 한다.

27명으로 시작했던 동인회가 40여명으로 식구가 늘어 인연 닿는 곳곳에 기부와 협찬 후원, 재능 기부 등으로 사회공한 활동을 하고 있고 봉사활동이라면 열일을 제치고 달려오는 회원들의 달라진 모습니 어무 좋단다.

"무엇보다도 사회봉사활동을 시작하고부터 우리 사장님들의 얼굴표정이 확 달라졌고 사업도 나날이 번창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어렵고 힘든 이웃들에게 나누고 베풀며 함께 하겠다는 아름답고 따뜻한 마음들을 내어 주고 실천에 왔던 덕분이 아닌가 싶다"고 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건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보고 노가다라고 한다.

남들처럼 많이 배우지 못했기에 유식하지 못하고 든든한 줄도 없어 노가다 판에서 굴러먹고 산다고 해서 노가다 패거리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 하찮은 노가다 패거리들이 모여 누구도 하지 못하는 오직 자신만의 재능과 기능 지혜를 바탕으로 기적 같은 일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김해 최고의 기업 `합동기업`, 김해 최고의 봉사단체 `동인회`, 김해에서 최고로 따뜻한 사람들이 김해를 훈훈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힘없고 절망적인 쓸쓸한 소외계층에 용기와 희망, 재기의 기회를 만들어 주고 있는 이들이 있고 `노가다 오야봉 배상기` 회장이 있어 이웃의 네트워크가 탄탄해지며 김해의 집들이 튼튼하고 아름답고 디자인 건축물로 각광을 받는 것이다.

청춘스타 배상기 회장이 꿈꾸는 `행복한 세상`이 빨리 오기를 기대하며 합동기업의 무궁한 발전과 `동인회` 회원들의 끝없는 사랑이 어렵고 힘든 이웃의 튼튼한 주춧돌이 되어주길 소망한다.

최금연 기자  bbsy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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