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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김해의 역사와 문화 학술회의 개최중세도시 金州, 김해의 재발견
조민정 기자 | 승인 2018.04.02 17:04
▲ 봉황동유적 고려시대 기단건물지.
▲ 포은 정몽주의 「김해산성기」(포은집 제3).

올해는 고려 건국 1100주년이 되는 해다.

김해시와 한국중세사학회는 이를 기념하고, 가야왕도 김해의 역사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고려시대 김해의 역사와 문화를 조명하는 학술회의를 4월 6일에 개최한다.

주제는 '중세도시 金州, 김해의 재발견'이다.

김해에서 처음 개최되는 ‘미지의 역사’ 고려시대 김해에 대한 학술회의인 만큼, 학계와 시민들의 큰 관심 속에 깊이 있는 발표와 열띤 토론이 전개될 전망이다.

고려시대 김해는 지방행정 중심지이자 군사요충지였다.

고려 성종때(995년) ‘금주안동도호부’로 지칭된 김해는 고려가 전국에 설치한 4개 도호부 중 하나로서 위세를 크게 떨쳤다.

김해는 창원, 마산, 진해, 함안 등 주변 지역을 부속 현[속현(屬縣)]으로 거느리고 통제한 지역 중심지[주현(主縣)]였다.

고려후기에는 일본 정벌의 전진기지로 여몽연합군이 이곳에 주둔했다.

여몽연합군을 격려하기 위해 김해에 들렀던 충렬왕이 금강사에서 제공한 차를 마시고 훌륭한 맛과 향에 감동하여 ‘장군’이라는 칭호를 내렸는데, 이것이 김해 ‘장군차 유래설’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

또한 김해는 고려 말 왜구 침략을 방어하는 군사적 전략지역으로 김해부사 박위가 축조한 분산성이 산 정상부에 성곽으로 남아 있다.

김해는 교통과 산업의 중심지였다.

김해가 중심이 되어 밀양, 양산, 울주, 기장, 동래, 웅천, 창원 등의 지역을 사방으로 연결하는 교통로를 ‘금주도(金州道)로 칭했는데, 오늘날 김해에서 동서남북으로 연결하는 도로의 바탕은 이미 고려시대에 확립되어 있었다.

고려시대 김해는 가야의 전통을 계승하여 대동, 상동, 생림 등에서 제철 수공업이 성행했다. 대동면의 대감과 감내 등 고려시대 철 생산 관련 지명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또한 현재 불암동에 설치된 조운(漕運) 시설 불암창은 낙동강 유역의 물류 소통 중심지로 기능하였고 낙동강 하류에 설치된 수참(水站)은 다목적 물류 운송 항구 기능과 대일 교류의 왜관 역할도 맡아 고려시대 김해는 남해안의 관문이자 대일교역 창구로서 그 명성이 높았다.

허성곤 김해시장(김해시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학계와 시민들의 깊은 관심 속에 약 20억원의 예산을 들여 2021년 발간 목표로 ‘김해시사’ 편찬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해방 후 최초로 발간되는 김해시사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김해와 김해시민이 걸어온 발자취를 15권의 책으로 담아 낼 예정이다.

이번 학술회의 성과는 ‘김해시사’ 편찬 자료로 활용되어, 고려시대 김해 사람들의 삶과 문화가 충실하게 반영될 것으로 기대가 높다.

아울러 이번 학술회의를 계기로 지금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한 고려시대 김해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될 것이며 시민들의 관심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조민정 기자  webmaster@yn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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