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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변해 버린 나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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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변해 버린 나의 모습
  • 경상도 촌놈 조유식
  • 승인 2019.08.14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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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식의 허튼소리

김해지역에 언론 하나 없던 시절 최초로 언론사를 만들고 잡지를 발행하고 신문을 만들면서 말할 수 없는 개고생을 하기도 했다.

월간 금관가야라는 잡지를 제작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다 만들어진 72쪽짜리 잡지 1만 2천 권을 한 권 한 권 봉투에 넣어 봉합하는 작업도 예삿일이 아니었다.

남들처럼 대학의 신방과 출신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자 수업을 잘 받은 언론인은 더더욱 아니다.

어쩌다 보니 문선명 목사가 이끄는 통일교회 소속 모 주간신문 기자로 활동한 적이 있고 부산 영도구의 정각스님이 운영했던 불교신문 기자로도 활동했다.

전국에 불교 라디오 방송국 개국을 위해 전력하고 계시던 장상문 회장님이 발행하던 월간 대원 기자도 했다.

월간 금관가야 창간에 이어 창간한 영남매일도 12년 동안 잘도 걸어왔다.

필자가 몸담았던 각 언론사 초창기 당시만 해도 전국적으로 별로 알아주지 않는 언론사의 기자인데도 종교인들에게는 제법 인기가 있고 대접이 남달라다.

남다른 기회를 백분 활용하여 힘들고 외롭고 절망적인 소중했던 소외계층들과의 결연과 후원 지원 등으로 그들과 인연 맺어 친구도 되어 주고 용기와 희망이 되어 주기도 하는 연결 고리 역할을 했다.

그 연결 고리 활동은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고 김해시의 조례를 통해 그들 그룹을 구제지원 하게 하는 기적을 났게 하기도 했다.

얼마 전 부산의 모 복지학과 대학교수가 천원의 행복밥집 운영에 대해 알고 싶고 부산서 운영하고 싶다면 천원의 행복밥집을 찾아왔다.

사무실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어떻게 이런 훌륭한 사업을 하시게 되었느냐, 행복1%나눔재단을 그것도 11년 전에 만들어 사회봉사 활동을 해오고 있다고 하는 데 어떤 계기가 있었느냐고 묻는다.

그래 무슨 계기가 있었지 금방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분명 무슨 계기가 그것도 엄청난 충격의 계기가 있었는데도 30여 년 전 시절과 영남매일 12년 전의 일을 까맣게 잊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허허벌판에 비닐하우스를 치고 그 속에서 생활하던 어린아이들, 비바람이 몰아치고 금방이라도 하우스 비닐이 날아갈 것 같았던 그곳에서 전기도 없이 맨발에 여름옷을 입고 추위에 담요 한 장으로 똘똘 뭉쳐 온기를 나누던 그 모습을 보고 충격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김해 들녘 도로변 비닐하우스에서 사람이 살기 힘든 환경에서 초인적인 생활을 하는 장애인 가정, 편부ㆍ편모ㆍ조손 가정들이 6곳이 있었다.

김해불교청년회 회원들의 도움을 받아 이들에게 필요한 내의, 양발, 신발, 따뜻한 옷가지, 목도리, 장갑은 필수고 동화책, 노트, 볼펜, 연필, 책가방, 우산, 비옷 등등을 아이들 몸집에 맞게 학년에 맞게 일일이 체크하여 공동구매해 한 보따리 식 안겨 주었다.

그리고 장학금이라는 면목의 과정을 거처 학비와 용돈도 안겨 주었다.

쌀과 라면, 석유, 연탄에서부터 간장, 된장, 고추장, 참기름, 깨소금, 김, 김치까지 식품도 풍성하게 전달하며 초등학생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하우스를 훈기 나게 한 적이 있다.

이 친구들과 함께 하면서 사회의 어두운 곳곳에서 씨름하는 모자가정, 장애인 가정, 홀몸 할아버지와 할머니, 소년소녀 가장들을 하나둘 알게 되었고 그 숫자만 결식아동 216명부터 300여 가족이 생겼다.

지금은 상상도 하지 못하겠지만 당시 불교청년회원들과 필자는 추천되고 확인된 대상 세대 가정과 학교를 일일이 방문하여 철저한 생활환경실태를 조사하여 당장 시급한 지원목록을 작성하여 조사된 그 프로그램대로 매달 두 번 가정을 방문하여 지원했다.

아이들이 잘 자라 공무원, 선생님부터 동상동 김해제일교회 출신 목사님 탄생까지 훌륭하게 자란 인제들도 많다.

여중 하키골키퍼와 선수, 남 고등학교 하키선수, 여고 싸이클 선수, 합성초ㆍ김해중ㆍ김해농고 축구선수로 성장한 아이들도 있다.

진영읍 거주 부모 없이 생활하는 초등생 세 자매가 기울어져 가는 초가집에서 기어들어 가 기어 나오는 모습을 보고 매달 20십만 원씩 7년 동안 지원을 하여 생활과 학업에 충실이 할 수 있도록 했던 일들도 이제 기억으로만 남는다.

가정보다 우리보다 꺼져가는 힘든 생명들에게 이웃이 있다. 친구가 있다. 가족이 있다는 희망의 의지처가 되어 주자고 다짐했던 순수 백배였던 그 시절 그 열정 아름다운 정신과 육신에 먼지가 앉고 때가 쌓이면서 나의 참모습을 볼 수도 없을 정도로 나도 모르게 변해 있었던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잘난 척에 취해 망각의 세월을 즐기다 보니 그때 그 사람이 아닌 아상 인상 중생상을 다 가진 욕망 덩어리 또 다른 조유식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신문 한 장 만드는데 100평의 사무실이 왜 필요했으며 대형 간판은 무엇을 과시하고자 했던 것인지 후회스러운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제 주변 지인들의 고언을 통해 새로운 각오로 영남매일과 천원의 행복밥집, 좋은복지뉴스를 통해 열정 넘쳤던 30여 년 전 순수 백배 그때의 정신과 마음으로 새롭게 지역사회와 서민복지를 위해 마지막 회향을 하고자 한다.

새로운 정신과 각오로 천원의 행복밥집 장유센터와 진영센터를 오픈하기로 하고 준비 중이다.

찾아가는 희망천사! 찾아가는 행복나눔 운동에 기대를 해도 좋다. 함께 하며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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