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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유명 화백 작품 ‘무릉도원2’ 소장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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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유명 화백 작품 ‘무릉도원2’ 소장 30년
  • 경상도 촌놈 조유식
  • 승인 2019.08.19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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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가 살다가 신기한 일도 다 있다.

그토록 알고 싶어 했고 다방면으로 사연을 보냈지만 그 누구도 응답이 없었다.

그림을 볼 때 마다 답답함은 말할 수 없고 누군가가 물으면 대답할 수 없어 더욱 답답하기만 하여 미안했다.

그림을 걸어놓고 판매를 한다면서 작가도 작품명도 모르는 무식한 장사꾼이 또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1989년 4월 김해불교문화원으로 가끔 오시던 그림 도매 중개상 할아버지가 찾아왔다.

"중국에서 구한 건데 북한 그림이다. 작가는 모르겠고 작품명도 무릉도원이라고는 하던데 정확히는 모른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소장하기 힘든 귀한 그림이니 나중에 돈 좀 될 것이라며 사라고 하셨다.

북한 당국 몰래 밀반출하다 보니 접고 접어 부피를 줄이느라 접어진 곳은 조금 흠이 이었지만 워낙 큰 대작인 데다 국내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화선지가 흑지였으며 이엄도 없는 원지의(폭 1m 10, 길이 2m 50) 대작이라 마음에 쏙 들었다.

할아버지의 설명에 따르면 북한에서 생산되는 천연 색채를 가진 천연 돌가루를 소재로 그림을 완성했기 때문에 천년만년 변색이 없는 보물이 될 것이라고 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할아버지의 마법에 걸려들기 시작하여 결국 가격 흥정을 하게 되었고 할아버지 요구가격보다 1/3을 깎아 그림을 매입하여 표구를 하고 특별 주문했던 고급 액자 속에 담아 오늘까지 가까이서 감상하고 있다.

이 그림은 2014년 천원의 행복밥집 준비 경비에 보탬이 되기 위해 행복1%나눔재단에 기부를 했지만 그림을 볼 때마다 좋은 에너지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매력과 저런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게 하기도 한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저 그림의 작가와 정확한 작품명을 알아보기 위해 다방면으로 수소문해 보았지만 소득 없이 30년이 훌쩍 지나갔다.

늘 아쉬움 속에 컴퓨터 앞에 앉을 때마다 북한 그림에 대해 검색을 해보던 지난달, 이 그림이 1997년 북한 그림 전문 경매방송 39번에 경매로 나와 고가에 낙찰된 사연이 실린 신문 기사를 발견했다.

22년이 지난 신문 자료에는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북한 그림과 모든 것이 똑같은 복사본 같은 흑백의 그림 사진이 실려 있었다.

그 신문에서는 작가와 작품명까지 상세하게 밝히고 있어 너무나 감명을 받으면서 읽고 또 읽어보았다.

작품명 '무릉도원 2' 작가는 남과 북에서 모두 일가를 이룬 북한 최고 서화가 일관(一觀) 이석호(李碩鎬, 1904-1971) 화백이었다.

30년 동안의 궁금증과 고민이 해소되는 순간이었기에 참 기쁘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림을 그린 화백을 알게 되었다는 기쁨은 지금도 느낌이 올 정도로 짜릿했었다.

특히 이석호 화백은 월북 전인 1929년부터 서화협회 전람회에 출품하였고, 1936년에는 김기창(金基昶)ㆍ장우성(張遇聖)ㆍ조중현(趙重顯)ㆍ이유태(李惟台) 등과 김은호의 제자들 모임인 후소회(後素會)를 조직하여 1943년까지 6회의 회원 작품전을 가졌다고 한다.

이석호 화백은 1948년 당시 뜻을 같이하던 친구들인 김기창, 정종여, 이팔찬, 이건영, 조중현, 박래현 등 7인이 모여 동화화랑에서 '동양화 7인 전'을 열기도 했다.

이 전시회는 반응이 좋았던 데다 친구들의 호흡도 좋아 서로 힘을 합쳐 '서울동양화연구소'를 개설하기도 했지만 1945년 광복 후 이석호 화백은 정종여, 김용준, 이쾌대, 최재덕, 정현웅 등과 함께 이념을 좇아 북쪽으로 향했다.

조선화로 북한의 대표적 미술가로 자리 잡은 이석호 화백(1971년 작고)은 북한의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조선화분과위원장을 역임하고 평양미술대학 조선화과 초빙 교원 등을 지내며 북쪽에서도 성공한 미술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석호 화백은 1971년 사망한 후 20년이 지난 1992년 평양예술교육출판사에서 그의 작품 일천여 점 중 200여 점의 풍경화와 화조화가 실려 있는 '조선화 화가 리석호의 화첩'이라는 대형 도록을 출판하는 등 특별한 대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서울의 북한 그림 전문화랑가에 문의를 해본 결과 이 그림은 한국에 행복 밥집 소장본 포함 두 점이 전부일 것이라고 했다.

참으로 귀한 그림을 가까이서 보면서도 그 소중함을 몰랐다는 것이 부끄럽기만 하지만 지금이라도 뿌리를 알게 되어 다행이고 기분이 좋다.

좋은 에너지와 기운을 받으며 5년 동안 다녀가신 시민들도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조금은 놀라지 않을까 싶다.

천원의 행복밥집에 북한 최고 미술가의 그림이 전시되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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