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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을 달리한 김해 세 어른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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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을 달리한 김해 세 어른의 공통점
  • 경상도 촌놈 조유식
  • 승인 2020.02.11 14: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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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의 행복밥집을 이용하시면서 필자와 친하게 지니시던 김 모 할머니께서 건강이 그리 나쁘지 않았는데 몸이 좀 아프다는 말을 남긴 지 3일 만에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고 한다.

고인이 된 할머니는 폐지를 주어 생활하시던 80대 할머니로 인정이 너무 많아 이것저것 주변에 나누어 주는 것을 좋아하셨다.

천원의 행복밥집을 이용하시던 5년 전, 식사를 마치고 나오셔서는 봉사자들이 설거지를 하고 있는 곳으로 가시더니 의자에 앉아 밥그릇 국그릇을 닦고 수저까지 깔끔하게 정리하는 등 큰 도움을 주셨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하루 이틀 하시다 말겠지 했는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설거지 봉사를 해 주셨다. 그것도 2시간 30분 동안 말이다.

이때부터 할머니와 정이 들어 친하게 지내다 보니 할머니의 인생사를 모두 알게 되었다.

열심히 폐지를 주어 팔아 모은 돈 몽땅 어렵게 사는 아무게 장사 밑천으로 주었는데 장사가 안되어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할머니가 지목한 그 아주머니도 천원의 행복밥집에 자주 오시는 분이셨다.

그리고 여기저기 비슷한 환경의 주변 사람들에게 잔잔한 현금을 조금씩 빌려준다는 명목으로 그냥 주기도 했지만 절대 받을 생각이 없다고 하셨다.

그렇게 맑고 유쾌하게 대화를 즐기시던 할머니께서 어느 날 "이사장님 내가 생활보호 대상자에서 탈락되었다고 한다. 갑자기 병원비와 약값이 너무 많아 치료도 약도 사 먹을 수가 없을 정도"라며 좀 알아봐 달라고 하신다.

평소 3~4천 원 주고 타 먹든 약값이 7만원이나 달라고 하니 약을 사 먹을 수가 없어 야단났다는 것이다.

필자가 여기저기 알아보니 십수 년 전에 시집간 딸이 한 분 있는데 이혼을 하고는 혼자 살다가 약 2개월 전에 재혼을 했고 재혼한 새 남편이 급료가 제법 많아 탈락되었다는 것이다.

호적에만 남아 있을 뿐인 자식이었는데 그 자식 때문에 당신이 생활보호 기초수급자에서 탈락되어 낭패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저기 딱한 사연을 호소하고 다니다 보니 겨우 의료비 지원 정도 가능한 수급자로 재선정되기는 했지만 할머니는 늘 "이너무 세상이 와 이런지 모르겠다"며 섭섭해 하시기도 했다.

그때부터 행복1%나눔재단에서 할머니의 거주지 월 임대료 일부와 겨울 난방비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약 2년 정도 지원해 오던 어느 날 동상동 녹천탕을 운영하신다는 분께서 전화로 동상동 거주 어려운 분을 돕고 싶다며 매달 100,000원을 정기적으로 후원하시겠다며 추천해 달라고 하셨다.

동상동 거주민 중에 폐지 주어 생활하시는 할머니 한 분이 계신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그분을 후원하시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달부터 지난해까지 매달 100,000원씩 후원을 해 주셨다.

지난달 할머니의 지인을 통해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수소문 끝에 재혼한 딸이 장례를 치르고 합천의  모 사찰에 모셨다는 것이다.

너무 멀어 가보지는 못했지만 평소 좋아하시던 화사한 바구니 꽃 한 쌍을 영전에 바치고 극락왕생을 기원해 드렸다.

필자가 볼 때 당신만큼이나 힘들게 사는 노인도 없을 정도였지만 당신보다 더 힘들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그냥 보고 지나치지 못하고 무엇이든 주고 싶어 하시던 그 모습이 생생하다.

가진 것이 많고 적음을 떠나 할머니의 깊은 사랑의 정신을 본받아 천원의 행복밥집에서 할머니의 사랑을 오래오래 실천하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일주일 후 자신의 말로는 수백억대 재산가라고 자랑하던 지인도 급성 합병증으로 삶을 마감했다.

참 열심히 너무나 독하게 돈을 모아 부자가 되었는데 조금 편안하게 살아보지도 못하고 두 평 남짓 골방 생활로 외롭고 쓸쓸하게 고통만 겪다가 운명한 것이다.

또 한 사람 그분의 재산이 얼마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의 자수성가한 대단한 분도 운명했다.

고향 밀양에 10억원의 장학금을 내놓기도 하고 1999년 정산장학재단을 설립 110억 원 기금으로 매년 미래산업육성을 위한 영재 발굴 차원에서 장학사업을 해오고 있다.

김해시 북부동 김해시노인종합복지관을 건립하여 김해시에 기부하기도 했으며 김해인재육성장학재단에도 상당한 장학기금을 기탁하기도 했다.

회사가 어려울 때인 30여 년 전 필자가 먹을 간 벼루에 붓을 든 한국의 선승 화엄선사께서 그분에게 `정산`이라는 불가의 이름, 법명을 수여 하면서 다짐받기를 "살생하지 마라. 사냥하지 마라. 오늘 이후 반듯이 태산같이 재산이 쌓이는 부자가 될 것이다. 그때 비 오는 날 마을산 정상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우산 없이 비 맞고 다니는 사람 집을 찾아 도와주어 복을 지어라"고 하셨고 당신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정산` 그분은 선사의 예언대로 태산 같은 부자는 되었는데 명문교 자식들 장학 사업 말고 가난한 집을 찾아다니며 도와주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너무나 가난하여 폐지 주어 고달픈 삶을 살다 가신 80대 후반의 한 할머니와 세상 부러울 것 없던 70대 두 분 재벌의 공통점은 세 분 다 호주머니 없는 수의 한 벌만 입고 가셨다는 것이다.

세 분 다 고통 없는 무릉도원에 환생하시어 즐거움과 행복을 누리시길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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