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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김해 남산 합동위령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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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김해 남산 합동위령대제
  • 조민정 기자
  • 승인 2013.04.09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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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김해성을 지키다 순절한 임진왜란 최초 의병장 사충신과 1천여 의병 위령
6.25전쟁 당시 보도연맹사건으로 억울하게 학살당한 2천여 김해양민 위령 

잘려나간 남산, 무연고 영령 위령으로 김해 악재 막아보자
몰아치던 비바람도 행사 당일 화창한 봄 날씨로 변해
1960년 7월 25일 남산 합동위령제 이후 53년 만에 재현

애향시민, 기관단체장, 시의원, 도의원, 국회의원 등 2천여 명 다녀가 큰 호응
주최:영남매일의병장사충신선양회 주관: 김해남산합동위령대재봉행위원회

 
   

김해의 악재를 막고 김해의 힘찬 번영과 시민의 무산안녕을 기원하는 제1회 김해 남산 합동위령대제가 4월 7일 김해시청 앞 광장에서 시민들의 큰 호응 속에 엄숙하게 거행되었다.

이날 위령대제는 호국영령 및 순국선열을 비롯해 임진왜란당시 김해성을 지키다 순절한 김해사충신과 무명 의병, 무지한 김해사람들에 의해 잘려지고 (활천고개) 파헤쳐진 김해의 수호 산인 남산을 위령하여 달래고, 남산 개발 당시 활천고개와 남산 끝머리(市 청사, 의회청사, 상공회의소 회관 자리)에 있던 공동묘지의 분묘 500여 기(활천고개 100여기 남산 400여기)의 영령들과 6.25 동란 당시 학살된 김해 양민 1000명의(일부 시신을 남산에 안치) 고혼을 천도하는 시민 합동위령재였다.

(공동묘지(共同墓地/ 이름 없이 죽은 사람과 연고자가 없는 죽은 자를 합장한 묘지로서 지방관청에서 공중(公衆)을 위(爲)하여 베풀어 놓은 묘지) 특히 이번 위령제는 1960년 7월 25일 당시 김해 군민들이 남산에서 거행한 합동위령대재 이후 53년 만에 합동위령재를 재현했다는데 그 의미가 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해 남산은 1970년대만 해도 만장대 분성산의 정기(맥)를 이어받은 울창한 숲을 가진 용머리로 김해를 지키고 보호해 주는 수호 산으로 사랑을 받아왔다.

1970년대 후반 남산이 개발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성황당과 산신각이 있었다.

김해 읍민들은 매년 당산나무(3그루) 앞의 성황당에서 성황제를 올리고 김해의 풍요와 읍민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했다.

주민들은 이때 동쪽 능선 인근에 있던 산신각에서 산신제를 지내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개발 이후 모두 철거되어 성황제와 산신제도 중단되고 말았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김해를 걱정하는 많은 시민들은 남산이 망가지고 난 이후부터 김해가 늘 소란스럽고 시민분열이 일어나는 등 조용할 날이 없었다는 것이다.

김해의 재력가와 기업인들 정치인과 행정 지도자, 지역인재를 총망라하여 더 큰 곳으로 비상하지 못하고 낙마하거나 구속되는 등 김해의 지도자들에게 악재가 연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수행승들과 원로들은 김해의 불행을 막기 위해서는 남산을 위로하고 신령의 화를 풀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여기다 개발업자에 의해 파헤쳐 사라진 공동묘지에 있던 500여 기의 고혼(넋)에 대해 위령하여 달래줄 필요가 있다고 역설해 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와 같은 원로들의 충고를 받들어 남산을 달래는 위령제를 올리자는 기관장도 정치인들도 재력가들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묵살해 버렸다.

김해의 수호 산인 남산이 망가지고 있던 당시 김해의 대표기업인 한일합섬 김한수 회장과 동생 김택수 국회의원이 명당의 가족묘자리를 찾기 위해 대한민국 최고의 풍수지리학자를 김해로 초빙하여 김해의 명당을 찾아다닌 적이 있는데 그 풍수학자가 망가져 가고 있는 남산을 보고 혀를 차면서 김해의 맥이 끊어지고 정기가 막히어 악재가 많겠다며 안타까워한 적이 있다.

신어사산 동림사의 화엄선사께서도 남산을 달래주고 위령헤애만 김해가 평온해 진다. 그리고 우리의 선대이기도 한 순절한 사충신과 무명 의병, 백성과 보도연맹사건으로 억울 하게 학살당한 양민, 사라진 공동묘지 넋들에 대한 추모와 천도재를 해마다 열어주어야 김해의 악재를 막고 김해의 평온한 번영과 인재들이 등용되어 김해가 행복해 질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걱정과 우려는 현실이 되어 근대 35년여 동안 김해는 수없는 변고가 일어났으며 김해 지도자들의 낙마로 시민들의 가슴에 큰 상처를 주기도 했다.

이에 영남매일과 뜻있는 불교지도자 스님들과 시민사회 단체들이 이제 더 이상 김해에 악재가 일어나지 않도록 임진왜란당시 김해성을 지키다 순절한 사충신과 무명의병(백성 등)을 추모위령 하고, 6.25전쟁 당시 보도연맹 사건으로 억울 하게 학살된 김해양민 위령과 잘려나간 김해남산을 고혼들을 달래고 위로해 보자는 취지로 마음을 모아 합동위령대제를 봉행하게 된 것이다.

전국적으로 강풍을 동반한 비가 내리는 악조건 속에서도 준비위원들은 남산의 신령과 영령들이 비바람을 거두어 줄 것이라는 확신 속에 봉행식장 준비에 박차를 가했으며 결국 봉행당일 비도 바람도 멈추었고 제법 쌀쌀한 날씨였지만 화창한 날씨 속에 약 7시간 30분이라는 장시간에 걸쳐 위령대제가 거행되었다.

식전의식을 시작으로 1부, 2부, 3부 순으로 봉행되었으며 봉행되는 틈틈이 1천여 명의 시민들이 다녀갔으며 1천여 명은 끝까지 자리하여 간절한 발원 속에 합동위령대재를 성대하게 회향할 수 있었다.

합동위령대제를 위해 멀리 강원도 원주에서부터 전국 각지에서 초빙된 민속전통 예술인들과 무신 등 70여 명이 살풀이와 극락무 바라춤을 강원도 강신무의 열두거리 작두타기, 그네 작두타기로 영령들을 위로 했다.

이번 합동위령대제에는 증명법사로 대성 큰스님(전 법어사 주지, 은하사 회주), 선공스님(이웃을 생각하는 모임 회장 영구암 주지) 외 30여 분의 스님, 김맹곤 김해시장,강복희 김해상공회의소 회장 등 기관단체장들이 대거 참ㄴ석했다.

위령대재 본 제례행사에 앞서 김해분성락우회 이원달 회장 외 회원 10여 명의 풍물패가 30여 분 동안 봉행식장과 김해시청 외곽과 청사 내 광장, 김해시 의회 청사 앞, 김해상공회의소 외곽과 1층 주차장, 구 보건소를 돌며 산신 및 혼백 맞이 길 닦음 의식을 했다.

이어 전국무신교총연합회소속 감동진 별신굿 보존회 소속 법사들이 부정거리와 산천거리 굿을 통해 산신제를 올렸다.

김해불교단체연합회가 주관한 1부 의례에서는 국민의례, 분향, 묵념, 내빈소개, 헌화, 헌작, 경과보고가 있었다.

봉행위원장 선공 스님께서 주제사를 하였으며 김맹곤 김해시장이 추모사를 강복희 김해상공회의소 회장이 추도사를 김태호 국회의원과 배병대 흥일산업 사장이 격려사를 했다.

강신, 참신의례에 이어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의 헌작 헌향 헌화와 참배가 있었고 준비위원장 부위원장 전원이 독축을 했으며 축문은 이원달 부회장이 낭독했다.

참신 순서에서 준비위원장, 부위원장 봉행위원 전원이 참석하여 헌화 헌작하고 천신께 이별을 고하는 삼배를 했다.

1부 의식을 마치고 김해 성원사 주지 성원 스님의 승무와 법고가 있었으며 가야의 혼 최경옥 대표 외 4명이 고혼위령 살풀이, 극락무가 있었다.

행사 틈틈이 감동진 별신굿 보존회 소속 법사들이 망자해원 굿 등 전통 민속 추모공연을 펴기도 했다.

이웃을 생각하는 모임이 주관한 2부에서는 호국영령 순국선열 및 남산의 신령, 무연고 영령을 위령하는 천도제가 있었다.

집전 스님들은 대령과 관욕, 상단권공 및 시식 불공을 집전했으며 증명법사 대성 큰스님께서 추모법문을 했다.

전국무신교총연합회소속 감동진 별신굿 보존회가 주관한 3부 의식에서는 무신들의 망자 해원 굿을 비롯하여 7가지의 주요 굿이 이어 졌다.

가장 하이라이트였던 굿으로 그네 작두타기와 열두 계단 작두타기가 시민들의 가슴을 졸이게 했으며 순간순간 감동을 주기도 했다.

우레와 같은 격려의 박수와 신령님들과 영령님들에 대해 위로 박수까지 20여 차례의 동참 박수와 참여 속에 아슬아슬한 작두타기 굿은 최고의 예술이었으며 참으로 보기 드문 감동이었다는 것이 시민들의 반응이었다.

마지막으로 퇴송 굿에 이어 참여 시민 30여 명이 미리 준비한 대나무를 들고 무신의 축원에 맞추어 행사장을 돌면 소구소망을 비는 순서도 인기가 대단했다.

주최 측에서 참석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준비했던 떡(콩 백설기)과 생수, 다과가 담긴 간식 봉지 590명분을 준비하여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었지만 상당수 시민들에게는 이마저 부족하여 나누어 주지 못하는 등 아쉬움이 남았다.

봉행위원회는 처음부터 이번 남산 위령대제를 53년 만에 복원하여 재현한다는 데 무게를 두고 전통 민속예술이 겸비한 김해의 대표적인 민속문화축제가 되어야 한다는 계획으로 준비를 했으며 실제로 이번 위령제가 시민이 참여하는 민속 문화축제로 손색이 없었다는 높은 평을 받았다.

남산위령대제를 준비한 조유식 준비위원장은 "오늘 이 합동위령대제는 준비한 봉행위원들과 각 주관 단체들의 길흉화복을 바라고 거행한 것이 아니라 오직 김해의 불행과 악재를 막아 김해의 무궁한 번영을 기원하고 김해출신 인물들이 보다 더 큰 곳으로 비상하여 개인의 영광을 비롯하여 김해를 빛내 달라는 소망이 담겨 있는 매우 뜻 깊은 위령재례였다" 고 밝힌 뒤 "분노한 김해의 조상 영령들과 남산의 신령인 천신들을 위로 하는 산신제와 남산의 무연고 영령들과 임진왜란 김해성 전투 1천여 의병 영령, 6ㆍ25동란으로 학살된 김해거주 양민 1000명(일부 시신 남산에 안치)에 대한 위령 천도재를 봉행 하므로 해서 김해시민들의 풍요와 무사안녕이 영원하길 발원하는 취지가 담겨 있다" 고 했다.

그는 또 "무엇보다 53년 전에 멈추어 버린 남산합동위령대재를 복원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 같은 김해의 대표적인 합동위령대재를 위해 장소를 제공해 주고 위령재를 후원해준 김해시장과 관계 공무원을 비롯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이끌어 주신 대성큰스님과 선공스님을 비롯한 대덕스님과 70여 명의 출연진을 이끌고 참여하여 다양한 민속예술을 선보여 주신 한국무신교총연합회 임원. 회원을 비롯해 헌신적으로 준비를 해준 봉행위원 준비위원 모든 분들께 충심으로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주최 측은 제2회 김해남산 합동위령대제는 내년 4월 중에 보다 더 알차게 준비하여 복된 김해 건설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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