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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고생 덕에 급식봉사가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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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고생 덕에 급식봉사가 가능했다
  • 경상도 촌놈 조유식
  • 승인 2020.07.27 14: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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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배고파 던 60년대 후반 키우던 개 한 마리 팔아 서울로 상경했다.

그리고 취직한 곳이 서울에서 가장 크고 소문난 평양 출신 주인이 운영하는 보신탕집이었다. 평화시장 뒷골목 일본식 2층집 전체가 식당인데 주방만 두 곳이나 되었다.

조리준비를 하는 주방과 조리만하는 주방이 있는 데 필자는 조리실 주방보조로 일하게 되었다. 주방보조의 역할은 첫째 대형 가마솥 3곳에 물을 가득 채우는 것이었다.

수도 호수만 되고 있으면 물이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약 1백미터 떨어진 마을공동우물에서 물지게로 물을 지다 날라 채워야했기에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둘째 고기가 잘 삶아 지도록 저어주는 것이었다.

셋째 부위별 고기를 담는 그릇 준비였고 넷째 주방장이 고기수육을 부위별로 썰어 담아주면 홀 입구까지 날라주는 일이었다.
다섯째 대형 솥 청소와 도마와 칼을 끓는 물에 삶아 소독하는 일이었다.

여섯째 마지막으로 조리실 주방 전체 청소를 하는 것이었는데 청소를 다 마치고 나면 12시 경이 되었다.

이곳에서 보신탕집이었지만 육고기 쌈는 법과 수육 간장소스 만드는 것과 불고기용 고기양념 만드는 방법을 주방장 어깨 너머로 살짝살짝 배우기도 했다. 전 직원이 개고기를 먹지만 필자는 개고기를 먹지 않는 관계로 식사 때마다 고통을 겪기도 했다.

결국 얼마 후 그 집을 나와 당시 노동부와 중앙청소년회관 앞에 있는 용호호텔 정문 뽀이로 취직을 했다. 커다란 벙거지 모자를 쓰고 고객을 유인하기도 하고 안내를 시작으로 1층 한식당 조리실에서 신설로 등 궁중요리전문과정과 과일로 모양을 내는 조리사들의 칼 놀림을 보면서 신기하기도 하여 지배인과 조리장 몰래 직원들이 흉내를 내기도 했다.

호텔에서 나와 충무로 한국배우전문 학원 앞 사거리 1층 함흥냉면 돼지갈비 집에 취직이 되었다. 이 집에서는 사각 연탄 20여개를 피워 주문 받은 돼지갈비를 구워서 쟁반에 옮겨 담아 테이블에 올려 준다.

서울대 출신 사장님이 개발했다는 이 집의 돼지갈비 간장소스 양념은 소문이 날 정도로 유명했다. 당시 한국의 유명배우들 모두 다 단골이 될 정도로 명소가 된 이 집의 돼지갈비는 필자가 모두 구워냈다. 

이때의 추억으로 지금도 돼지갈비를 즐기고 있지만 그때 그 맛은 찾기 어렵다.

이 집 사장님의 도움으로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기에 필자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은혜로운 사장님이자 갈비집이기도 하여 30여 년 전 찾아갔지만 그곳은 모두 대형 빌딩만 우뚝서 있고 아무도 그분은 몰랐다.

이 집에서의 인연으로 한국배우학원 청소부와 엉터리 아나운서 수업(공짜)을 시작했으며 실력이 있다는 평가 속에 배우들이 운영하는 신촌나이트클럽에 근무하기도 했다.

무대에 서는 시간은 하루에 겨우 5분. 그 넓은 홀 바닥 청소시간은 보통 3시간이나 걸려 너무 힘들어 그만 두고 또 다른 연예인이 운영하는 충무로 배우골목 레스토랑, 동대문 시장 앞 2층 금다방 주방 보조, 술과 요리전문 코스모스 요정 등을 거쳐 서울 생활을 마무리 했다.

그때는 너무나 배고팠기 때문에 일단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점을 찾아다니며 취직을 했다. 음식점은 밥걱정 숙식 걱정이 없기 때문에 서울 생활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징글징글한 추억으로만 간직 하고 있던 유년시절 요식업 생활의 경험이 오늘 이처럼 요긴하게 쓰여 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천원의 행복밥집을 시작하면서 자신했던 것이 모든 조리와 요리 대부분을 집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작용을 많이 했다.

실제 주방실장 없이 3개월 이상 매일 약 270명분의 1식5찬 조리를 하여 대접하기도 했고 반응도 좋았다.

6년 전만 해도 힘들게 식당과 식당으로 전전했던 유년시절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그때 그 경험과 교훈들이 필자로 하여금 천원의 행복밥집이라는 급식봉사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재능이 되었기에 고마움을 다 말할 수 없다.

이제 50년 전 그때 그 돼지갈비 불고기의 양념비법을 일부 접목한 50년 후 오리불고기 조리음식을 통해 시민의 건강을 위한 봉사를 하고자 한다.

따뜻한 나눔 운동을 목적으로 8월 1일 오픈하는 오리명품관은 본 영업에 앞서 20여 일 동안 사전 예약 시식을 통해 3개 단체 70여분의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50년 전 서울식 호텔 곰탕이라고 불리는 3일간 고운 오리뼈 탕이 특미이기도 한 생오리명품관이 오랫동안 모두에게 활력 넘치는 건강 유지와 삶의 희망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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