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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0년 전 풍요로웠던 김해읍 그때 그 시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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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0년 전 풍요로웠던 김해읍 그때 그 시절이 그립다
  • 조현수취재본부장
  • 승인 2021.10.27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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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2년 김해시 승격 1주년 기념으로 열린​​​​​​​ 제18회 가락문화제 개회식 장면.
▲ 1982년 김해시 승격 1주년 기념으로 열린 제18회 가락문화제 개회식 장면.
▲ 1982년 김수로왕릉에서 개최된 춘향대제 봉행모습.
▲ 1982년 김수로왕릉에서 개최된 춘향대제 봉행모습.

영남매일ㆍYN뉴스 창간 14주년 기획특집으로 `가야왕도 금관가야 도심 원형복원`이란 주제로 총 10회에 걸쳐 특집보도를 한다. 영남매일ㆍYN뉴스를 14년 동안 함께 해 준 김해, 응원하며 지켜주고 사랑해 주신 시민의 행복 등 인구100만 대도시를 바라본 김해 미래의 중심 도시 기반 조성을 비롯한 가야왕도 가락국 수도로서 균형 잡힌 도시 지형의 필요성에 대해 시민들의 의견을 기초하여 대안 제시와 시민운동을 통한 김해 숙원 해결에 기여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영남매일ㆍYN뉴스 창간 14주년 기획특집=가야왕도 금관가야 도심 원형복원]

<2> 40년 전 풍요로웠던 김해읍 그때 그 시절이 그립다

김해 장날 우시장은 대저,명지,녹산,가락,장유,진례,진영,한림,생림,상동,대동 사람 만남의 장
외곽 군민과 김해 읍민 서로 촌놈 읍내 놈 논쟁하며 어깨동무 등실등실 5일 회포 풀기도
소라도 한 마리 파는 날은 허리춤에 전대 매고 현금다발 뿌리며 부원동ㆍ홍동 가서 흥청망청
그때 그 시절 서상동 여인숙 촌, 동상ㆍ부원동 방석집 집성촌, 김해 정치 경제 문화 이곳서  해결

김해시 승격 2년 5개월 전인 1978년 2월 김해군 대저읍, 명지면, 가락면 일부 낙동지구가 갑자기 부산시로 편입되는 바람에 김해군이 왜소해지면서 군민들이 혼란스러워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일부 지역 인사들이 나서서 김해군이 부산시로 편입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펴기도 했다.

자녀를 둔 군민들 또한 학군 문제 등을 거론하며 부산시 편입을 찬성하는 분위기였다. 이러한 분위기가 정치인들의 마음을 꽁꽁 묶어 김해 땅 부산 강탈이 이루어지도록 방관했는지 모른다.

대저읍과 명지면 가락면 일부가 부산으로 편입되었지만 그곳 주민들은 김해 장날 우시장(회현동 행정복지센터 앞) 구경과 가축시장을 둘러보고 쇠고기 국밥 한 그릇에 막걸리 한잔 들이키는 기분을 만끽하기도 했다.

대저읍, 명지면, 가락면 녹산면 사람들이 진영읍, 진례면, 이북면(지금의 한림면), 생림면에 사는 친구와 지인들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김해 장날이기도 했다.

어쩌다 송아지나 소 한 마리 파는 날은 2차로 동상동 부원동, 방석집 골목으로 모여들어 밤새도록 부어라 마셔라 하며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행정, 정치, 문화예술, 교육, 사회, 경제, 농사문제, 법률문제, 혼인문제, 이혼문제, 진학문제, 취업문제 등 모든 것이 서상동 김해읍 사무소를 중심으로 다 이루어지고 있었다.

웅변학원, 주산학원, 사교댄스학원, 다방, 술집, 횟집, 고깃집, 기원, 당구장, 탁구장, 행정사, 대서소, 극장, 오락실, 문방구, 서점, 도장 파는가게, 구두수선과 닦이, 양장점, 양복점, 실집, 삔집, 단추와 지퍼 파는 가게, 미용실, 목욕탕, 결혼식장, 사진관, 도배 장판가게, 양화점, 전축 등 전자제품 가게, 이불가게, 세탁소, 전당포, 금은방, 시계가게, 병원, 약방, 식육점, 빵집, 해장국집, 보신탕집, 한복집, 아이장난감 가게, 쌀집, 떡집, 츄리닝 가게, 명찰가게, 회기 우승기 상패 가게, 가라오케, 정종잔술집, 막걸리시음장, 포장마차, 재첩국집, 소곱창집, 순대국집, 민물매운탕집, 추어탕집, 장어집, 꼼장어집, 고래고기집, 생선구이집, 삼계탕집, 일식초밥집, 우산파는 가게, 모자파는 가게, 그릇가게, 옷가게, 양말가게, 중국집, 만두집, 한식집, 아구찜집 등등의 가게와 업소들이 매일 호황을 누렸다.

김해공설운동장에서 김해 군민체육대회라도 열리는 날은 군민 잔칫날이 되기도 했다. 읍면동별 출전 선수들에게 소고기 돼지국밥 식권 3~5장씩을 주는 바람에 국밥 식권 받기 위해 출전한 선수가 있을 정도로 식권의 인기는 대단했다.

군민체육대회 하이라이트로 인기 있는 종목이 소싸움 대회와 일반인 씨름대회였는데 관중들이 몰려다닐 정도였다.

명지면 경기 종목 중 씨름선수들이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 이유가 있었다. 일반부 씨름 경기인데도 불구하고 명지면 선수는 모두 초등부 아이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그 외 읍면 지역 선수들은 모두 거장의 어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3판 2승의 승자를 겨루는 경기장에 명지면 선수와의 경기가 열리는 시간에는 초만원의 인파가 몰렸다.

이유인 즉, 매년 명지면 선수인 그 아이들의 아버지뻘의 거구의 어른 선수들을 기술씨름으로 넘어뜨리는 장면은 감탄이 아닐 수 없었기에 그 장면을 보기 위해 하루 종일 씨름장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1977년 김해공설운동장 개장 기념 군민체육 대회에 일반부 사이클 경기 서상동 선수로 출전했던 기자도 4800m 운동장 13바퀴를 달리는 경기에서 28명의 출전 선수 중 3위로 입상했다.

경기 중 수천 명의 군민들과 학생들로부터 응원의 합성을 열렬히 받아 당황할 정도였다. 이유인즉 1위와 2위를 한 선수가 현역 국가대표 선수들이다 보니 그들과 함께 선두 경쟁을 하며 달리는 자전거 방 수리공인 약자를 응원해 준 것이었다.

하여튼 그 시절의 김해 읍내와 김해군 전체는 김해평야를 중심으로 화합과 번창 경제가 팡팡 돌아가는 행복하고 재미있는 사회가 분명했다. 

이러했던 김해가 김해 읍내가 대저읍과 명지면, 가락면, 녹산면을 부산에 빼앗기고 난 이후부터 생동감이 사라진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월이 흐를수록 부원동 동상동 서상동 봉황동의 번창과 호황의 시대는 멀어져만 가고 지금은 쇠락한 원도심이 되어 김해 동 지역 중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변해 버렸다.

김해시 청사가 자리 잡고 있고 특급호텔 금융기관 김해상공회의소 김해세무서 중부경찰서 한전과 KT 노동부 김해센터를 비롯하여 병원 밀집 지역이 되기는 했지만 지역 활성화에는 별 기여가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한때 경전철을 이용한 김해 시민들이 부산 사상으로 몰려가 쇼핑도 하고 여가를 즐기는 바람에 부산 쏠림 현상을 빚기도 했다.

70대 전 후반의 김해 시민 특히 김해 읍내 거주민들은 그때 그 시절 호황 시대를 그리워하고 있다.

1980년 김해 관통 남해고속도로 개통과 김해시 승격에 따른 남산을 허물고 그 자리에 김해시 청사 신축, 경제인들의 모체인 김해상공회의소 청사 신축이 이루어졌지만 김해시 승격 이전보다 더 지역 경제는 악화일로였고 중견기업 몰락과 이주, 시장, 의장, 국회의원 등 지역 정치인들의 추락하는 모습을 해마다 지켜보아야 했던 악재의 나날이었다.

가야왕도 김해가 왜 이토록 비참하게 정치지도자들을 몰락시키는 도시가 되었는지 호황 도시에서 폐허 수준의 도시로 몰락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 한번 해보아야 한다.

그때 그 호황 시대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김해 읍내 사람들만이라도 뭉쳐서 방법을 강구하고 토론하며 연구하여 바로 잡아야 한다.

김해 읍내가 살아나야 가야왕도가 일어나고 김해시가 번영과 번창할 수 있고 시민의 행복도 더 향상될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 1967년 서상동 동신약국 골목안 김해극장 앞. 많은 학생들이​​​​​​​ 단체 관람을 온 모양이다.
▲ 1967년 서상동 동신약국 골목안 김해극장 앞. 많은 학생들이 단체 관람을 온 모양이다.
▲1970년대 김해군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던 부원동 방석집과 잔술집 골목 모습.
▲1970년대 김해군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던 부원동 방석집과 잔술집 골목 모습.
▲ 1971년 김해경찰서 전경. (서상동 국민은행 블럭 옆 사거리)
▲ 1971년 김해경찰서 전경. (서상동 국민은행 블럭 옆 사거리)
▲1978년 김해남산 목이 잘리고 머리는 파혜쳐지고 있다.
▲1978년 김해남산 목이 잘리고 머리는 파혜쳐지고 있다.
▲ 1981년 김해읍 사무소를 임시 김해시 청사로 사용했다. ​​​​​​​(서상동 국민은행 자리)
▲ 1981년 김해읍 사무소를 임시 김해시 청사로 사용했다. (서상동 국민은행 자리)
▲ 한때 김해의 명동 사거리로 불렸던 장유가는 길목. (장유가도)
▲ 한때 김해의 명동 사거리로 불렸던 장유가는 길목. (장유가도)
▲1990년대 부원동 미나리재배지 전경.
▲1990년대 부원동 미나리재배지 전경.
▲매년 개최된 가락문화제 줄당기기 큰줄을 만들고 있는 장면.
▲매년 개최된 가락문화제 줄당기기 큰줄을 만들고 있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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