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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4>-김해 연자루 연지공원 수변에 복원하여 옛 명성 되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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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4>-김해 연자루 연지공원 수변에 복원하여 옛 명성 되찾자
  • 기획취재팀 조유식ㆍ최성애ㆍ장휘정 기자
  • 승인 2023.05.10 0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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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중인 해체 전 김해 연자루 전경.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중인 해체 전 김해 연자루 전경.

영남매일영남방송TV 특별기획 <연지공원 김해 대표 랜드마크 관광특구 만들기> -4- 

진주 촉석루ㆍ밀양 영남루와 함께 영남 3대 대표 누각
김해 연자루 연지공원 수변에 복원하여 옛 명성 되찾자

연자루 팔각기둥 석주 높이 122cmㆍ상단 둘레 227cmㆍ하단둘레 227cm

<김해부내지도> 기록에서 김해 연자루는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영남 3대 누각으로 손꼽히던 곳으로 고려시대부터 정몽주와 맹사성을 비롯한 여러 인물이 찾아와 시를 읊은 곳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연자루는 가락국 시대부터 유서 깊은 누각으로 알려지고 있다. 구형왕(仇衡王) 9년(531) 겨울에 이 누각이 명동(鳴動)하니 장안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임자년에 국망(國亡)을 예언하는 것이라 하여, 왕명으로 훼철하였다고 전한다.

그 뒤 언제 재건되었는가에 대하여는 알 길 없지마는 1677년(숙종3) 부사(府使) 변국한(邊國翰)이 중건한 이래 여러 차례 중수를 거듭해오다가 1932년에 철거되고 건물 일부는 매각되어 서울로 이전되었다고 기록되고 있다.

고려시대의 정몽주, 주열, 김득배, 왕강 등과 조선 초기의 이행, 맹사성, 김감, 맹석흠 등의 제영(題詠)이 걸려 있었다. `포은선생문집`에 다음시가 전한다.

"헌납 이첨이 안행할 때에 김해 연자루 앞에 손수 매화를 심었다고 전하기에 연자루의 앞에는 제비가 돌아오건만 낭군은 한번 가서 다시 오지 않네. 그 당시 손수 심은 매화나무는 그동안 봄바람에 몇 번 피었을까"

조선 후기 김해의 아름다운 경치 `금릉팔경`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에 함허정의 이슬 맺힌 연꽃과 `연자루에서 멀리 펼쳐 보이는 낙동강 하구의 경치`가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영남의 대표적인 명소 누각이었다.

연자루는 동상동 김해객사 후원지(연화사/ 가락고도궁허비/ 가락국 수로왕비 허왕후 중궁 터)에 있었다.

"연자루 앞 버들개지/ 버들개지 제비새끼 석양에 비껴나네/ 제비는 꽃을 쫓고, 꽃은 제비를 쫓아/ 성 안의 여러 집으로 흩어져 들어가네((燕子樓前楊柳花/ 楊花燕子夕陽斜/ 燕逐飛花花逐燕/ 城中散入萬人家)"

조선 후기 지재당(只在堂) 강담운의 시집 `지재당고`에 `금릉잡시`라는 제목으로 수록된 34수 연작시 중 한 편에 연자루가 등장한다.

조선시대 기녀 중 송도삼절로 불리는 황진이, 부안의 이매창 등은 뛰어난 글재주로 후대에까지 이름을 남기며 많이 알려져 있다. 김해에도 한 사람을 향한 그리움과 김해의 아름다운 풍경을 시로 노래하며 여성한문학의 맥을 이었던 여류시인 지재당 강담운이 있다.

누각과 정자는 사람이 자연을 만나는 공간이다. 자연 속으로 들어가 자연을 볼 수 있는 공간, 그래서 자연과 하나 될 수 있는 곳이 누각과 정자다.

누각에서는 정치를 논하고 과거시험을 치르기도 하고 외국 손님을 위해 잔치를 베풀기도 했으며 국가의 크고 작은 행사를 치르기도 했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당쟁에 밀려 잠시 조정을 떠난 사대부들이 과시적인 목적으로 조영하기도 했지만 뜻이 있는 사람은 후학을 가르치는 교육의 장으로 사용하기도 했고, 조상의 뜻을 기리거나 그들의 학맥과 인맥을 기르는 장소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인 묵객이 모여 음풍농월하기도 하고 시류(時流)를 한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영남 대표 누각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연자루(燕子樓)를 김해 대표 브랜드로 조성 중인 연지공원 수변 북편에 복원하여 옛 명성을 되찾아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15년여 동안 한결같은 시민들의 바람이다.

연자루가 복원되면 옛 왕궁의 뒤뜰처럼 멋진 풍광이 될 것이고 연지공원 수변을 끼고 우뚝선 연자루는 마치 고궁에 온 듯한 아름다움을 전하는 역사적인 상징 건축물이 될 것이다.

현재 연화사 한쪽에 보존되고 있는 연자루의 유일한 건축물인 팔각기둥 석주는 높이 122cm이며 상단둘레가 227cm, 하단둘레는 227cm로 그 누각의 웅장함과 크기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동상동 연화사에 있는 연자루 팔각석주.
동상동 연화사에 있는 연자루 팔각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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