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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장경 전산화 주역 종림 스님 `고반재` 친견 도명 스님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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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장경 전산화 주역 종림 스님 `고반재` 친견 도명 스님 대담
  • 영남미디어공동취재단 신동호 기자
  • 승인 2024.06.12 0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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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대장경 복간본이 소장되어 있는 장경각 ‘천년지장’ 앞에 선 종림스님.

가야왕도 바람결에 친견한 고성대덕의 사자후

불경 연구의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한 
고려대장경 전산화 주역 종림 스님 `고반재` 친견 도명 스님 대담

10여 년 이상 가야문화 진흥과 우리 역사 바로 세우기 활동에 헌신하고 있는 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도명 스님이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지난 8일 고반재(考般齋)에 계시는 종림 큰스님을 찾았다.

고반재는 우리나라 최초 대장경인 초조대장경 복간본을 소장한 책박물관이자 고려대장경연구소다.

경남 함양군 안의면에 위치한 고반재(考般齋)는 `반야(지혜)를 생각하는 집`이란 의미를 담고 있으며 시경에 `군자가 고반재 간에 있으니 얼마나 즐거운가` 하는 구절에서 따왔다고 한다.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신 종림 큰스님은 먼저 고반재에 소장한 다양한 고서와 각국의 대장경들을 직접 소개하였다. 인도, 미얀마, 티벳, 송나라, 명나라, 청나라, 일본의 대장경 사본과 여러 가지 탁본들 그리고 불상과 서예 작품들까지 하나하나 설명해 주셨다.

고려대장경연구소는 2016년 초조대장경과 팔만대장경, 교장을 비롯한 돈황 필사본까지 불서 약 1,100종, 한자 5,400만 여자를 입력하면서 대장경 전산화를 마무리하였다.

방대한 고려시대 불교 문헌을 정리해 소실의 염려가 없어졌고 키워드만으로 일반의 접근이 용이하게 함으로써 불경 연구의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일로는 힘들었지만 잘 놀았다. 진짜 재밌게 했다"며 결과에 대한 소회를 말씀하셨다.

초조대장경 목간본은 고반재 뒤뜰 장경각(藏經閣)인 천년지장(千年之藏)에 보관되어 있는데 이는 `천년의 보물을 수장한 건축물`을 의미한다.

2층 규모의 고반재는 스님이 대장경 전산화 작업을 추진하며 모은 불교경전, 철학서적, 중국ㆍ일본ㆍ동남아 일대의 불상, 비석탁본 등 2만여 점의 불교미술품도 갖춰 사실상 국내 최초의 책박물관으로 평가되고 있다.

두 스님 모두 불교의 역사와 문화를 계승하는 분들이라 종림 큰스님은 당신이 아시는 것을 후학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크신 것 같았고 도명 스님은 대선배 종림 스님의 정신적 자산을 놓치지 않고 담으려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스님의 잔잔한 설명 속에서 대장경을 복원하기 위해 얼마나 남모르게 노력을 해 오셨는지 알 수 있었다. 한편으론 `세상이 알든 모르든 나는 이렇게 살아 왔어`라는 대가(大家)들만의 보이지 않는 자부심도 동시에 다가왔다.

도량을 둘러본 후 스님과 편안한 차담이 이어졌다. 담소가 이어지며 도명 스님의 질문에 큰스님이 답하셨다.

도명 스님의 질문은 무한을 추구한 서양 철학자들로부터 시작됐다. 종림 스님은 칸트를 비롯한 서양 철학자들 괴델, 라캉, 칸토어, 니체, 비트켄슈타인 등이 궁극의 진리를 쫓아 인간의 이성으로 끝까지 추구하였으나 그들이 결국 한계에 부딪혔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생각을 도구로 무한을 쫓았던 서양 철학자들의 고뇌를 곁들이며 그들이 현대 철학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고 하셨다.

"출발을 내 자신부터 하자. 그러면 문제가 없다. `이제 나를 아무 데나 세워도 똑바로 설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 비로소 자유가 있는 것이다. 유한의 틀을 깰 때 우리는 자유로울 것이다."

도명스님 : 수행 중심의 불교에도 향후, 현대 철학의 요소가 필요한지요?

종림스님 : 불교철학은 막연하다. `공즉시색(空卽是色)`을 예로 들면 중간 매개가 없어 접근하기가 어렵다. 반면 서양철학은 설명하는 연결선이 있어 비교적 용이하다. 동서를 내려 놓고 우선 출발을 나 자신부터 하자. 그러면 문제가 없다.

도명스님 : 불교의 공(空)이 왜 그리 어려운가요?

종림스님 : 절집에서 화두의 본질이 무엇인지 제대로 가르쳐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공도 마찬가지다. 우리 말로 설명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공에서 색으로 넘어오는 길에 대한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때문에 공과 색 사이의 중간다리를 연결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공에 대한 단상들`이란 책으로 정리해 보았다.

도명스님 : `空`을 증득한 그 자리에 무엇이 있는지요?

종림스님 : 공(空)은 말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저편에 있는 것이다. 공은 `無`라고 표현할 수도 있고 `虛`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공은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 속에 있다`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을 바라볼 때 누구는 1의 관점에서, 누구는 2의 관점에서, 누구는 3의 관점에서 한쪽만 바라 본다. 그렇게 한쪽밖에 못 보면 죽은 송장과 같아 살아도 산 게 아니다. 자기가 서 있는 위치가 아니라, `空`이라는 전체의 시각에서 보면 자신도 편해지고 세상도 편해진다.

`空`에서 시작해 空1, 空2, 空3식으로 보면 1도 살고 2도 살고 3도 살수 있다. 1,2,3,4 라는 수로써 계산이 안되는 부분 그런 게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보통 사람들은 이미 닦여진 길로 가지만, 모든 길은 내가 바라는 대로 도달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 때문에 어려워한다.

그 길에 매여 있었던 기존의 질서, 이념, 도덕들 우리가 그런 세계에 따르다 보니 부딪히는게 너무 많고 힘들다. 그래서 `다른 길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데 모두가 길과 길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사막에는 이정표도 없고 모든 길이 사라진다. 이처럼 길 없는 곳에서 나를 보면 비로소 내가 스스로 틀에 매여 갈등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경사진 곳에서는 아무리 똑바로 서 있으려고 해도 서 있지 못한다. 

그러나 진실로 자기를 돌아 보아 `이제 나를 아무 데나 세워도 똑바로 설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 비로소 자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이 이제 더 이상 나에게 문제가 되지 않을 때 편안함이 그냥 이 자리에 있다. 그러할 때 모든 것이 진정한 나의 길이 된다. 그런 다음에는 `무아(無我)와의 조우`이다. 어느 곳에 점을 찍어도 나는 괴로움과 상관없다.

"인간 자체가 모순이 많아서 어렵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행위의 문제는 결과가 따른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틀 안에서만 얘기해서는 안 된다. 내 문제를 볼 줄 알아야 한다. 현재의 불교는 제한된 범위를 가지고 있다. 위험하다. 음악, 미술, 건축설계와 같이 해당 분야 최고 전문가들의 철학이 깊고 넓다."

고반재는 자유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

도명스님 : 칸토어(1845~1918, 러시아수학자, 집합론)가 수(數)를 통해 무한(無限)과 대면하고자 했다는데 그들의 실제적 수준과 궁극적 본질에 대한 접근방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합니까?

종림스님 : 우리는 늘 무한을 염두에 두고 내 삶을 봐야 한다. 그렇게 보면 모든 것에 신성(神性)이 숨어 있는 것 같다. 서양에서 오랫동안 무, 무한은 인간 영역을 넘어 있어 연구 범위 밖이었다. 무한은 계산할 수 있고 실재하는 것이라는 것을 칸토어가 증명해 냈다.

무한은 셀 수 있고 종류도 있고 무한을 우리 일상으로 끌고 온 것이 집합이다. 유한의 틀을 깨면서 우리에게 자유를 준 것이다. 수학의 입장에서 보면 평면 기하학보다는 입체 기하학이 세계를 설명하기 보다 용이하다. 무한을 열어놔도 아무 문제 없다. 하지만 당시 준비되지 않았던 서양에서도 학문적 갈등이 있었다.

도명스님 : 우리가 진정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종림스님 : 존재를 말로 접근할 수 없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것은 신성(神性)-자연-인간이다. 인간 존재는 가장 확실하지만 가장 불완전하다. 우리가 완전하다고 여기는 존재 따위는 실제 없다.

신을 믿는 사람은 신이 시키는 대로 하면 편하다. 하지만, 신도 절대적으로 믿을만하지 못하다.

도가(道家) 같은 경우는 자연의 질서만 알고 따르면 육체적으로 편한 상태가 된다. 그게 신선인데, 신선이 되면 자연의 질서만 따르면 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마지막 남은 게 인간 존재인데 모순이 많아서 어렵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이냐.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어떻게 사고할 것인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결과가 따르는 행위에 관한 문제이다. 그렇다고 틀 안에서만 얘기해서는 안 된다.

도명스님 : 불교의 추상적인 공론(空論), 무아론(無我論)을 어떤 식으로 활용해야 하는지요?

종림스님 : 그것은 관념적인 교리와 논리를 넘어서야 하며 우리 일상의 삶에 투영시켜 실제적인 도구로써 써야 한다. 공과 무아를 내 문제와 연관시켜 볼 줄 알아야 한다. 

현재의 불교는 `불교`라는 또 다른 고정된 틀에 묶여 제한된 범위를 가지고 있다. 위험하다. 불교학자들이 시대에 맞게 불교를 해석하지 못하고 틀 안에 갇혀 있다. 우리의 현실 문제와 무관한 논리와 철학에만 갇혀 있다. 벗어나야 한다.

도명스님 : 복잡한 교리, 가르침과 현실과의 괴리, 각 종파들의 도그마로 세상과 소통이 어려운데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종림스님 : 요즘은 불교 철학자보다 음악, 미술, 건축설계와 같이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 안목이 깊고 넓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처럼 수행과 철학을 하는 이들은 허공과 무한을 가슴에 품고 어디에 점을 찍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큰스님은 한국 불교가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고 하셨다. 그것은 붓다의 실천 철학이었던 불교가 점점 교조화되고 중생들의 실생활과 멀어지는 것에 대한 우려였다. 인간 실존의 문제에 있어서는 "동과 서를 떠나서 함께 풀어나가면 좋을 것이며 좋은 물건은 어디에 써도 상관없다"란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스님은 한국 불교사에 한 획을 그은 분으로 고려대장경을 전산화하는 대작불사를 지휘하는 총도감(總都監)이셨다. 문화불사의 실제 기간은 10여 년이었지만 준비 기간 10년, 마무리 후속 작업 등을 포함하면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하셨다. 스님은 이것으로 절집과 부처님에 대한 밥값을 다하신 듯하다.

스님은 언제나 티끌만큼의 권위의식도 보이지 않고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으며 어떤 사람과도 격의 없이 벗할 수 있는 자유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고반재는 박물관이라기보다는 세월을 잊은 대화로 무한을 노래하는 스님의 가풍처럼 자유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라 할 수 있다.

종림스님

동국대 인도철학과 졸업
1972년 해인사에서 지관스님을 은사로 출가
월간 ‘해인’ 편집장
해인사 도서관장
일본 하나조노대학 국제선학연구소 수학
고려대장경연구소 이사장
1999년 세계전자불전협의회 공동의장 역임

도명스님

1998년 범어사 주지 정여스님을 은사로 출가
범어사 성보박물관 부관장
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밀양 여여정사 주지

 

고반재 전경.
종림 스님과 도명 스님 대담.
종림 스님과 도명 스님 대담.
각국의 대장경과 고서들을 설명해 주시는 종림 스님.
각국의 대장경과 고서들을 설명해 주시는 종림 스님.
대장경(왼쪽 CD)이 전산화 되어 온 과정.
대장경(왼쪽 CD)이 전산화 되어 온 과정.
고반재 소장 고서들.
고반재 소장 고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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