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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왕국 역사여행 <2> 가락국의 탄생-대왕을 맞이하는 큰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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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왕국 역사여행 <2> 가락국의 탄생-대왕을 맞이하는 큰 기쁨
  • 경상도 촌놈 조유식
  • 승인 2011.04.25 13: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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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안개 속에 서서히 내리는 자주빛 밧줄 끝의 붉은 보자기! 그 보자기를 열어보니 금합 속에 해처럼 둥근 황금의 알 여섯개! 이것을 눈 앞에 본 무리들의 놀라움과 기쁨은 오늘 우리들의 실감일 수도 있다. `황천상제님은 우리들의 소원을 들어주셨다! 이 황금의 알은 바로 그 징표가 아니겠는가!`

 
   

안개 짙은 구지봉, 그 정상에서 구(九)간과 그들의 무리가 노래 부르고, 노래에 맞춰 손에 손에 철도자(鐵刀子)를 쥐고 흙을 파면서 춤추는 것이다.

"거북(자라)아, 거북아, 네 목을 내놔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을란다"

<가락국기>를 수록한 <삼국유사>에는 비슷한 노래를 다른 장소에서 부른 사실이 적혀 있다.

<가락국기>의 기록을 정리해 보기로 하자.

(1) 서기 42년 3월, 안개 짙은 첫 뱀날.
(2) 구(九)간과 그의 집단 2, 3백 명이 계욕을 마쳤다.
(3) 경상남도 김해시 구지봉에서 공중어로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4) 달려 간 무리들은 모습을 감춘 소리만의 주인공이 황천 상제의 영을 받들어 천강한 대왕임을 확인했다.
(5) 그 대왕의 지시에 따라 무리들은 흙을 파면서 노래 부르고 춤추며 대왕을 맞는 기쁨을 나타냈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면, 이 사건의 서술은 오늘 우리들의 신문기사로 치더라도 빈틈이 없는 사실의 보고(報告)가 된다.  

 
   

분명히 서기 42년에 건국한 가락국의 건국주(建國主) 수로왕(首露王>의 출현에 관한 <가락국기>의 기록은 `전설`이거나, `설화`이거나, 흔히 말하는 `신화`와는 거리가 먼 과거 사실의 서술이다.

이것을 전설이나 설화라고 한 것은 이 사실을 사실로 고정하면, 저들이 날조한 역사(歷史)의 구조가 뒤틀리기 때문에, 이 편을 전설로 몰아세울 수밖에 없었던 식민지 시대의 학자들의 입장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시 구간과 그들의 무리들이 노래하며 춤추고, 대왕을 맞이하는 기쁨으로 잔치가 벌어진 구지봉으로 돌아가 보자.

"구(九)간 등이 그 이르는 말과 같이 모두 기뻐하며 가무(歌舞)하다가, 미기(未機)에 우러러 이를 관(觀)하니, 다만 자(紫)색의 밧줄이 천(天)으로부터 드리워 착지(着地)하였느니라. 밧줄 하(下)를 더듬어 보니 홍폭(紅幅)속에 금합자(金合子)가 보이고, 개(開)하여 이를 보니, 해처럼 둥근 황금(黃金)의 육란(六卵)이 있기에, 중인(衆人)이 모두 경희(驚喜)하였느니라"이렇게 이어지는 이 대사건의 디테일을 살펴보자.

우선 `보라 빛 줄이 하늘에서 드리워 땅에 닿았다`라는 부분을 제외하면, 전설스럽거나 거짓스러운 곳이 하나도 없음을 알 수 있다.

 
   

`하늘에서 땅에 드리워졌다`하는 것도, 이 날이 짙은 안개가 끼어 있었다는 사실과, 지금도 구지봉에는 노송(老松)이 서 있는데, 그 옛날에 나무가 없었다고 볼 수는 없고, 누군가가 높은 나무에 올라, 안개 속에 몸을 숨긴 채, 공중어로 소리를 내어 사람들을 모은 다음, 미리 준비한 황금의 여섯 알을 넣은 합자를 붉은 보자기에 싸서 그것을 보라빛 밧줄 끝에 묶어 땅으로 내려보냈다면 <가락국기>의 서술과 일치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짙은 안개 속에 서서히 내리는 자주빛 밧줄 끝의 붉은 보자기! 그 보자기를 열어보니 금합 속에 해처럼 둥근 황금의 알 여섯 개! 이것을 눈 앞에 본 무리들의 놀라움과 기쁨은 오늘 우리들의 실감일 수도 있다.

`황천상제님은 우리들의 소원을 들어주셨다! 이 황금의 알은 바로 그 징표가 아니겠는가!`구(九)간과 그 무리들은 이렇게 감격했을 것이다.

"모두 함께 백배(百拜)를 드리고, 본시대로 착(着)한 뒤 포지(抱持)하여 아도가(我刀家)에 귀(歸)하였느니라.

걸상(榻) 위에 두고, 그 무리들은 각각 산(散)하고, 하룻밤을 지낸 뒤 익일(翌日)의 평명(平明)에 중서(衆庶)가 다시 취집(聚集)하여 개합(開合)하였더니 육란(六卵)은 화(化)하여 동자(童子)가 되었느니라"분명히 하룻밤 새에 기적이 일어났다.

아도간의 집 걸상에 본시대로 잘 싸서 둔 금합 속에 있어야 할 여섯 개의 금알(金卵)은 없어지고, 여섯 명의 소년들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용모(容貌)가 심위(甚偉) 한동자(童子)를 좌(坐)하게 하여, 중서(衆庶)가 배하(拜賀) 드리고 공경(恭敬)을 다하기 그지없었느니라.

일일(日日)이 대(大)하여 십여 일 후에는 신장(身長)이 구척(九尺)으로 은(殷)나라 천을 (天乙)과 같았느니라" 그러나 알 여섯 대신 거기 있는 소년 가운데 가장 훤출한 이를 자리에 모시고 배례를 드렸다는 것은, 이 소년이 황천상제의 영을 받들어 천강한 대왕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가락국기>는 이 소년이 열흘 동안에 부쩍부쩍 자라, 신장이 은나라의 천을이라는 사람처럼 구척이 되었고, 얼굴 모습은 한(漢)나라 고조(高祖)를 닮고, 눈썹은, 눈동자는, ..... 하고 그 뛰어난 풍모를 적고 있다.

결국 수로왕의 출현 가운데, 이 대목이 가장 설화적인 곳이기도 한데 <김해김씨선원대동세보>에는 `年可十五, 容貌奇偉 (나이는 15세로 보이고 풍보가 예사롭지 않게 뛰어 났음)`라고 출현 당시의 수로왕이 이미 15세 소년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결국 이 15세의 소년이 다섯 소년과 더불어, 안개 짙은 구지봉에서 영왕의식(迎王儀式)을 기획하여 지휘하였고, 다시 밤새 아도간의 집에 들어 금합 속의 알을 거두고 대신 앉아서, 그 늠름하고 뛰어난 용모를 밝은 대낮에 무리에게 보임으로써 만장일치로 구(九)간들 위에 군림하는 왕으로 받들림을 받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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