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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시리즈 <3>“50만 김해 - 근대50년” 50년 후 오늘의 김해와 생활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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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시리즈 <3>“50만 김해 - 근대50년” 50년 후 오늘의 김해와 생활변천사
  • 조유식취재본부장
  • 승인 2011.10.17 16: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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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는 경상남도 2011년 지역신문발전지원 자유공모사업에 선정된 영남매일이 위 기금으로 취재하여 보도하였다.

   
 
 

▲ 2011년 10월 15일 김해 분성산 (만장대) 봉수대에서 내려다 본 김해시 시가지 좌측 삼방동에서 우측 북부동까지 10개동 전경. 저 멀리 임호산 뒷편으로 장유 신도시 전경이 보인다.

촬영 / 조유식 취재본부장

 
 

50년 후 오늘의 김해와 생활변천사

<지난 호에 이어> 60년대 당시 김해군청 소재지는 김해군 김해읍 서상동 27의5번지이며, 방위로는
동단: 대저면. 대동면 동경128°53′ 동서7.4km 이며 서단: 장유면.진례면 진영읍. 남단 :가락면 명지면 녹산면. 북단: 상동면 생림면 이북면 북위53°14′ 동북28km 626.04km2이다.

년도별 가구 및 인구현황을 보면 1966년도에는 총가구수는 36,207이며 가구로는 농가 24,280였고, 비농가 10,927였다. 인구총수199,046명으로 남자 99,793명 여자 99253명이었다.
1970년도 총가구수는 37,033이며 농가 25,329 가구이고 비농가는 11,704로 농업인 세대가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1978년 대저읍, 명지면, 가락면 일부와, 1989년 01월 01일 가락면, 녹산면 전부가 부산시로 편입되면서 김해의 인구는1/3 이상 줄어들었다.


이 당시 김해읍 거주 농가총수는 8,642가구이며 농가 3,962, 비농가 4,580이였다.
인구로는 총 45,863명이고 이 중 남자는 21,618명, 여자가 24,245명이었다.
1981년 김해군 김해읍이 시로 승격하여 분리되었고, 1995년 김해군과 김해시가 통합되어 지금의 통합시가 되었다.

2011년 기준 행정구역은 진영읍과 장유면·주촌면·진례면·한림면·생림면·상동면·대동면 및 동상동·회현동·부원동·내외동·북부동·칠산서부동·활천동·삼안동·불암동으로 1읍 7면 9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2011년 9월 말 기준 김해시 인구와 세대현황은 다음 표와 같다.

2011년 9월 말 인구
김해시의 인구는 505,764명으로 꾸준히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특히, 도시개발에 따른 유입인구의 급증으로 1991년에 20만 명, 1997년 7월에 30만 명을 넘어섰다. 2003년에는 광역시를 제외한 전국 시.군 중 14번째로 인구 40만이 넘는데 이어 2010.10. 4일 전국 228개 기초자치단체 중 15번째로 인구 50만을 돌파하였다. 앞으로도 도시발달 및 택지개발 등에 힘입어 지속적인 인구 증가가 예상된다. 2011년 9월 말 기준 김해시 인구와 세대현황은 다음 표와 같다
 

구분 세대수 인구수
전월
대비
전월
대비
전월
대비
전월
대비
당월계 180,476 +200
(0.11%)
505,764 +351
(0.06%)
254,970 +120
(0.04%)
250,794 +231
(0.09%)
전월계 180,285 505,413 254,850 250,563
 
진영읍 15,500 39 40,773 72 20,787 47 19,986 25
장유면 40,723 52 125,519 173 62,381 51 63,138 122
주촌면 1,856 -13 4,061 -32 2,209 -9 1,852 -23
진례면 3,566 4 8,171 27 4,353 9 3,818 18
한림면 4,497 0 9,706 4 5,210 -1 4,496 5
생림면 2,246 1 4,699 -9 2,437 -3 2,262 -6
상동면 1,721 -2 3,801 -11 2,047 -11 1,754 0
대동면 3,503 7 8,152 7 4,252 14 3,900 -7
동상동 4,040 30 9,798 38 4,871 8 4,927 30
회현동 4,045 6 9,390 13 4,754 16 4,636 -3
부원동 3,505 12 7,803 23 3,992 12 3,811 11
내외동 30,315 31 87,558 56 43,672 8 43,886 48
북부동 25,326 12 77,116 -15 38,528 -33 38,588 18
칠산서부동 3,682 -4 9,757 -17 5,076 0 4,681 -17
활천동 16,470 24 46,592 73 23,700 23 22,892 50
삼안동 16,275 1 43,811 -28 22,139 -7 21,672 -21
불암동 3,206 0 9,057 -23 4,562 -4 4,495 -19

총 인구 및 세대

 
연도별 인구 인구증가 세대 세대증가
증가수 증가율 증가수 증가율
2009 492,103 14,841 3.1% 171,380 7,490 4.6%
2008 477,572 12,608 2.7% 163,890 6,189 3.9%
2007 464,964 11,236 2.5% 157,701 5,547 3.7%
2006 453,728 10,711 2.4% 152,154 5,205 3.5%
2005 443,017 15,585 3.7% 146,949 6,866 4.9%
2004 427,432 20,064 5.0% 140,083 8,135 6.2%
2003 407,368 17,076 4.4% 131,948 8,121 6.6%
2002 390,292 36,524 10.3% 123,827 13,731 12.5%
2001 353,768 10,151 3.0% 110,096 3,944 3.7%
2000 343,617 17,547 5.4% 106,152 6,440 6.5%
1999 326,070 5,581 1.7% 99,712 2,335 2.4%
1998 320,489 16,001 5.3% 97,377 5,830 6.4%
1997 304,488 17,683 6.2% 91,547 6,303 7.4%
1996 286,805 23,451 8.9% 85,244 7,911 10.2%


   
 
  ▲ 1974년 불암동 서쪽에서 본 지내동.  
 

교육발전 분야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는 김해향교와 구천서원·예암서원·물봉서원 등이 있었고,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08년 설립된 동광초등학교가 처음이며 중등교육기관으로는 1927년 김해공립농업학교가 설립되어 김해농업고등학교로 지금은 김해생명과학고등학교로 바뀌었다.

2011년 9월 현재 초등학교 57개교, 중학교 31개교, 고등학교 20개교, 특수학교 1개교가 있으며 대학교는 인제대학교, 가야대학교, 부산장신대학, 김해대학 등 4개교가 있다. 2006년도에 영재교육학교로 육성할 김해외국어고등학교가 개교했다.

교통관광 분야
부산·마산·창원·진해·대구의 중간에 위치하여 교통로가 발달하였다. 남부로 남해고속도로가 동서로 통과하고, 중앙으로 부산·창원·마산을 연결하는 국도가 통한다. 고속도로 4개 노선을 포함하여 총 2,275개 노선에 1,546km의 도로가 개설되었으며 도로 포장률은 95%이다.

문화유적 분야
가야국의 문화 중심지인 까닭에 문화재가 많이 산재하고 고분유적들이 많다. 문화재로는 수로왕릉(사적 73), 회현리조개더미(사적 2), 분산성(사적 66), 예안리고분군(사적 261), 김해향교(경남유형문화재 217), 김해 은하사 대웅전(경남유형문화재 238), 김해 구산동 마애불(경남유형문화재 186), 초선대 마애석불(경남유형문화재 8) 등이 있다.

   
 
  ▲ 1971년 국도14호선 (대성동).  
 

생활문화 분야
김해박물관이 1998년 개관, 가야유물전문박물관으로서 1,288점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김해시민천문대는 분성산 정상에 세워져 관측실, 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이곳은 영남 유일의 천문대로서 주말마다 1천여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2005.11.25 예술, 스포츠, 영상이 결합된 복합문화공간인 김해문화의 전당이 개관되고, 2006. 3월 세계 유일의 건축도자 전문 미술관인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이, 2005.10.1 민속유물의 수집. 전시교육장인 김해민속박물관이 개관되기도 했다.

김해시를 대표하는 먹을거리로는 허황옥이 인도에서 시집올 때 가져왔다는 장군차와 선암의 장어구이, 진영의 암소갈비, 진영 단감 등이 유명하다.

   
 
  ▲ 1979년 부원동 (남밖다리 부근).  
 

산업 발전분야
기후가 따뜻하고 인근에 대도시가 있어 일찍부터 도시근교농업이 발달하였으며 우리나라 처음으로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온실농업이 시작된 고장이다.

전국 최대의 화훼재배단지로 연간 3억본의 화훼를 생산하여 일본,동남아, 중국 등지로 수출하고 있고 진영 단감과 칠산 참외는 비타민과 당도가 높아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다. 또한 소비자의 건강과 환경오염 예방을 위한 고품질의 친환경농산물 생산도 확대해 나가고 있다.

김해는 대도시와 연접하고 있고 김해국제공항, 부산항, 고속도로, 철도, 경전철 등 편리한 교통망을 갖추고 있다. 물류유통과 인력수급, 원자재 확보의 이점 등으로 현재 6,000여개의 기업이 입주해 있으며 기계, 자동차, 금속분야가 특화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며 메카노 21 기계 산업과 의생명산업 등 새로운 고부가가치 산업을 유치 육성 중에 있다.

   
 
  ▲ 1914년 백운대에서 바라본 김해읍.  
 

지방자치 발달분야
1920년 면협의회 시행(일제 침략정책을 대변하는 기구에 불과) ▶1930년 김해읍으로 승격(면협의회에서 읍회로 변경) ▶광복 후 지방자치의 변화 ▶1952년 주민이 지방의원과 대표자 선출 ▶1961년 5.16군사 구테타로 지방자치제도 폐지▶1991년 지방자치제도 부활, 김해시.군의회 출범 ▶1995년 시.군 통합, 시민이 시장과 시의원 직접 선출

   
 
  ▲ 1924년 당시의 교사전경(김해시 서상동 일대 : 사진제공-제16회 허금 동문).  
 

역대 김해군. 김해시 의회 의장

풀뿌리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실시된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 김해시군 통합 전 김해군의회
초대의장으로는 박재근 의원이 당선되었고(취임일 1991년 4월 15일)
초대 후반기에도 박재근 의장이 유임되었다.(취임일 1993년 4월 9일)
통합 전 김해시의회 초대 전반기 의장에는 최태환 의원이 당선되었다.(취임일 1991년 4월 15일)
초대 후반기 의장에는 박용일 의원이 당선되었다.(취임일 1993년 4월 9일)
김해시ㆍ군 통합 이후 김해시의회 초대의장에는 박재근 의원이 당선되었다.(1995년 5월 1일 취임 김해군과 통합으로 연장)
2대 전반기에는 김덕영 의장(1995년 7월 12일 취임)
2대 후반기에도 김덕영 의장(취임 1997년 1월 13일)
3대 전반기 박용일 의장(취임 1998년 7월 8일)
3대 후반기 박용일 의장(취임 2000년 7월 7일)
4대 전반기 박용일 의장(취임 2002년 7월 3일)
4대 후반기 박용일 의장(취임 2004년 7월 3일)
5대 전반기 임용택 의장(취임 2006년 7월 6일)
5대 후반기 김영립 의장(취임 2008년 7월 1일)
6대 전반기 배정환 의장이(취임 2010년 7월 1일 구속으로 2011. 9월 중도 사퇴)
6대 전반기 제경록 의장이 보궐선거로 당선( 잔여기간/취임 2011년 10월 3일).

   
 
  ▲ 구교사 전경(1927~1943) 김해시 서상동 현 김해합성초등학교 자리.  
 
   
 
  ▲ 가야문화축제 줄달리기 모습.  
 

가야문화축제
가락국을 건국한 김수로왕의 창국정신과 위업을 기리기 1962년부터 개최해 온 가락문화제는 가야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주간(7일간)에 개최하는 김해의 국제적인 문화관광 축제이다.

진영단감축제
김해의 특산물인 단감의 풍성한 수확을 자축하는 동시에, 홍보와 판로 개척, 지역민의 향토애 고취를 통한 단감산업의 활성화 등을 도모하기 위한 축제이다.
매년 11월 첫째 일요일을 폐막일로 하여 3일동안 각종 문화예술행사와 단감을 홍보하기 위한 단감시식회, 단감전시회, 단감품평회, 현지 판매대회 등이 펼쳐지고 있다.

김해분청도자기축제
옛 가야문화의 전통을 계승하고 지역의 관광상품으로 육성하기 위한 도자기 축제가 매년 11월 첫째 일요일을 폐막일로 하여 6일간 열리고 있다. 가야토기, 차사발 등의 전시공간과 관람객이 참여하는 각종 체험행사와 아울러 수준 높은 문화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지며 행사기간 중에 도자기를 저렴하게 구입 할 수 있다.

   
 
  ▲ 연지공원 전경.  
 

김해 대표 시민휴식공원-연지공원
연지공원은 김해시민의 보건.휴양 및 정서 함양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조성된 근린공원으로 기존의 신못을 정비하여 만든 호수공원이다. 호수에는 현재 연꽃, 어리연, 갈대 등이 심어져 있다.

   
 
  ▲ 대성동 고분박물관 전경.  
 

김해근대50년 생활변화

1960년대의 김해는 김해평야를 중심으로 쌀농사가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점차적으로 비닐하우스 발달로 전국 최초로 김해 안동지역이 비닐하우스단지 화 되어 계절에 관계없이 야채와 과일 꽃들이 재배되어 농가소득을 올리기도 했다.

훗날 이들 안동 비닐하우스 단지는 사라지고 한일합섬 등 기업들이 들어서면서 지금의 안동 공단지역으로 변모했다.

   
 
  ▲ 1967년 서상동 김해극장 주변.  
 

전국에서 몰려든 수 천 명의 한일합섬의 여공들 덕분에 김해의 총각들은 신바람이 났고, 결국 약 50%에 달하는 한일합섬출신들이 김해총각들과 결혼에 성공하기도 했다는 설이 있다.
얼마 전 까지 여성으로서 김해시 의원과 경남도 의원을 지낸 모 씨도 이 회사 출신이다.

한일합섬 덕분에 김해의 경제는 다른 지역보다 활성화 돼 있었다는 것이 지역 어른들의 말씀이다.

여기에는 육국공병부대도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김해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지난 호에도 잠시 언급했지만 양계농장, 축산농장, 양돈농가들이 가장 많이 활성화 돼 있기도 한 김해다보니 계란은 넘쳐났고 돼지고기와 소고기 국밥도 유명세를 달렸다.

전국 최대의 축산물 가공공장이 두 곳이있고 여기에는 전남, 강원, 경주, 제주에서 까지 소. 돼지를 실고와 가공해 가고 있다.

때문에 진영갈비가 특산품이 되어 인기를 누리고 있고,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돼지고기 특정부위를 싸게 파는 뒷고기집이 김해 곳곳에서 성업 중이다.

대동면의 화원단지에서 재배되는 하우스 꽃들은 세계 각국으로 수출되는 효자 상품이기도 하다.

때문에 김해지역의 각종 경조사에는 반듯이 생화 화환과 조화가 2~3단으로 걸려 타 지역 인조 화환과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농업지역이 공단 등의 기업체가 들어서면서 대다수 농민들은 본업을 제쳐두고 6000여개 기업의 산업역군으로 생활방식이 달라졌다.

때문에 김해시 관내에 사업자등록을 하고 성업 중인 일반 상업인이 약 6만개 업소가 될 정도로 소상공업이 발달 돼있다.

또 여관(모텔), 다방(커피숍), 술집(주점), 식당(요식업)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도시로 명성을 얻고 있기도 하다.

50년 전 외국인은 선교사 등 개신교도들이 주를 이루었지만, 50년 후인 오늘날 김해는 다문화 가정과 외국인 근로자 등 외국인 정착민이 줄잡아 2만 명을 넘어 서고 있다.(불법체류자 포함)

기초단체로서는 김해가 전국 최대 외국인 정착 도시가 된지 오래이고, 초.중.고. 대학 등 학교시설이 110개를 넘어 교육도시 김해로 발돋움하고 있기도 하다.

가야문화축제, 진영단감축제, 진례도자기축제를 비롯한 국립김해박물관과 대성동 고분군, 천문대, 김해예술의 전당 등 문화 예술도 발달돼 왔다.

2010년 10월을 기준으로 인구 50만을 돌파한 김해시는 전국에서 15번째 대도시로 우뚝 섰지만 지난 9월 부산~김해경전철 개통으로 연간 1천억대의 운행 적자 분을 보전 해 주어야 하는 부도 직전의 도시로 전략할 위기에 놓여있다.


50년 세월 속에 변화된 김해 이모저모
그동안 서상동에 있던 김해시청. 김해 등기소 김해경찰서는 부원동과 봉황동으로 이전 했고 등기소는 또다시 내외 동으로 이전해 갔다.

김해소방서는 동상동 파출소 옆에서 삼정동 현 위치로 이전 되었으며 교육청(교육지원청)은 회현동에서 대성동 현 위치로 이전 해 갔다.

김해군 청사는 부원동 김해중학교 앞 남박 못을 매우고 그 자리에 신축됐지만 김해시와의 통합으로 김해세무서가 들어섰다.

서상동에 있던 김해읍 사무소는 시 승격으로 김해시청사로 사용하다가 사라졌으며 그 자리에 국민은행이 들어섰다.

서상동, 지금의 농협중앙회 맞은편 아래쪽의 마종여객 주차장과 신한은행자리에 있던 시외버스 정류장, 구 김해백화점(서상동 국민은행 옆) 자리에 있던 동신버스 정류장 등은 사라지고 부원동 삼부주유소 옆 터미널로 통합 이전 했다가 내외동 터미널로 이전 해 갔다.

시민들의 애환이 담겨 있던 서상동 김해극장, 금보극장, 청동클럽, 범환상가 자리에 5일마다 한 번 서던 우시장도 사라진지 오래이다.

장날 시골 노인들의 소판 돈을 도박과 미인계로 등쳐 내던 단골 장소인 우시장 주변여인숙들도, 왕릉 옆 막걸리 도가와 진주식당도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공병부대 자리인 삼계동 매정부락, 화정부락과 내외동 옥토 논밭은 90년 초부터 아파트단지로 변했다.

50년 동안 김해시 17개 읍면 전체를 비교했을 때 유일하게 발전되지 않은 지역이 봉황동 일부지역과 부원동, 동상동, 서상동, 대성동으로 한때 날리던 김해읍내 전성기는 사라지고 초라하게 유지되고 있다.

요즘시민들에게 물어 보면 80년대 까지 이름 있었던 재민병원(동신약국에서 동상시장 입구 왼쪽) 대동병원 (서상동농협중앙회 자리옆) 메리놀병원(동상동 시장사거리 남쪽)을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68~70년 초 메리놀병원 담장에 기대어 영업하던 김해최초 포장마차(점주 김종호 해병대 출신으로 지금은 가야골프장 인근서 향연찻집 운영)에서 밤마다 판매하던 500 CC 생 막걸리와 생맥주 그리고 조개구이와 담치 국물 한 사발은 인기절정이었다.

맞은 편 삼천리자전거 대리점 옆 골목에도 명물하나가 인기를 얻었다.

김해유일의 재첩을 자동으로 분리하는 기계를 개발(개발자 공 모씨)하여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고 분리된 그 재첩으로 끊인 재첩국물은 해장국으로는 일품으로 술꾼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오늘날 김해 재첩국의 원조인 셈이다.

이때 김해 7공주파가 활개를 치던 시절로 부산 수산대학생 20여명이 수로왕릉으로 놀러왔다가 7공주파와 시비가 붙어 7명의 여자들에게 단체로 신나게 두들겨 맞아 주간지인 선데이 서울에 나는 등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김해여자가 좀 거세다고 한다. 왜냐하면 수로왕비 릉은 구산동 산 중턱 높은 곳에 있는데 김수로왕 릉은 한참 아래에 있다는 것이다. 김해여고와 중앙여고는 위쪽에 있지만 김해고와 농고(생명과학고), 건설고는 아래에 있다는 것. 그리고 중앙여중 또한 높은 곳에 있지만 김해중학교는 그 아래에 있어 여자들이 기가 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김해의 여성들이 생활력이 강하고 봉사와 희생정신이 남달라 전국 총각들로부터 인기 만점이라는 설도 있다.

김해여고생들의 검정빛을 주는 짙은 남색 계열 교복(자켓과 치마와)에 풀을 먹여 잘 다린 넓은 하얀 교복 깃(카라)에 찰랑이는 단발머리소녀들이 걸어가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어 짝사랑을 하면서 마음을 뺏기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 당시 총각들의 증언이다.

이처럼 김해는 50년 이라는 세월과 함께 많은 변천이 있었다. 시골의 농부들이 장사를 하고 직장을 다니며 반 도시인 이상으로 생활환경이 달라졌으며, 자녀들의 교육수준도 엄청 향상되기도 했다.
시내버스와 택시의 1/3 정도가 여성들이 차지하고 있고 상업과 산업전선에도 여성들이 주도권을 쥐락펴락 하고 있다.

단층 집이나 초가삼간 가옥에서 살던 60년대와는 달리 김해시 전체인구 50만 명중 약 3십7만명 정도가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고 나머지 대부분도 빌라나 단독주택에서 살고 있다.
김해시 등록 차량대수가 13만대에 이르고 있는 등 50년 전 김해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을 정도로 김해가 달라졌다.

마종여객, 남밖다리와 장유카도, 북문다리껄은 잊혀져만 가고 내동 물고매(물고구마), 주촌 차차 촌 차차, 동신 마다리를 기억하는 사람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우리는 지금 김해에 살고 있고 계속 김해에 살 것이기 때문에 김해 근대사와 현대사 정도는 조금 알아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취재를 하여 보도를 해 보지만 지면관계상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지 못해 아쉬울 뿐이다.

(다음호에는 김해군 김해읍 김해시로 승격 을 주제로 기획 취재하여 보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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