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매일 PDF 지면보기
과월호 호수이미지
과월호 호수이미지
과월호 호수이미지
과월호 호수이미지
과월호 호수이미지
과월호 호수이미지
최근 김해종합뉴스
행복1%나눔재단 희망캠페인
함께해요 나눔운동
時도 아닌 것이
행복밥집
TV 방송 영상
커뮤니티
다시보는 부끄러운 김해 현장
김해 신어산 은하사
상태바
김해 신어산 은하사
  • 조유식취재본부장
  • 승인 2012.01.14 12: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수로 왕 7 왕자 장유화상이 출가시킨 고찰
대웅전과 대웅전 벽화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김해의 진산인 신어산은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과 왕비의 신화가 어린 성산(聖山)으로 북쪽으로는 낙동강이 굽이쳐 돌아 흐르고 남쪽에는 광활한 김해평야가 시야 가득 펼쳐져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고 있고 2000여 년 전의 찬란했던 가야문화의 중심부에 있었다.

   
 
  12폭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신어산을 보고 금강산이라고 했다. 이 산 품속에 은하사가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은 일반 다른 사찰과 달리 정면과 측면이 모두 3칸인 정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으며 안으로 들어서면 보관을 쓴 부처님이 온화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계신다. 다른 절과 달리 대웅전에 석가모니불이 아닌 관세음보살상이 주존불(主尊佛)로 모셔진 곳이다.

은하사는 가락 고찰로서 경상남도지정 유형문화재 제238호로 지정된 대웅전을 비롯해 402호로 지정된 대웅전벽화는 내부 벽면 전체에 그려져 있으며 주제는 삼세불, 아미타내영, 보살상, 나한상, 도인상, 모란 등 총 32점에 이르고 있다. (진본은 수장고에 보관 중이고 이것은 모사(模寫)한 것임.)

 

 

그 옛날 수로왕비가 되고자 머나먼 항해를 해 온 허황옥 공주, 그 항해 길에 함께 모셔 왔다는 장유화상과 파사석탑 그리고 인도 근동 지역의 전통문양인 신어 문양이 잊혀 진 가야왕국의 불교문화를 증명해 주고 있다.

이 신어 문양을 보고 이 산의 이름을 신어산(神魚山)이라 지었다고도 한다.

또 대들보 안쪽의 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섯 발가락이 매우 힘차고 다른 곳의 용과는 좀 다른 기상을 보이고 있다.

대웅전 대들보에 아주 독특한 문양의 신어(神魚)가 있고, 부처님의 좌대 아래에 있는 수미단에도 있다.

이렇듯 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는 사찰이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며 수많은 승려들이 기도하며 수행하였던 대 가람이기도 했다.

은하사는 김해의 대표적인 큰 사찰로서 김해불교의 중심이 되고 있다.

   
 
  김해불교계의 원로이신 대성 큰스님과 조유식 본부장의 담소.  
 

이 사찰의 회주이신 대성 큰스님(전 법어사 주지)은 40여 년 전 찬란한 역사에 비해 초라하기 짝이 없던 이 사찰을 불사에 불사를 거듭하여 오늘의 웅장함을 갖춘 역사 속의 대가람으로 복원한 것이다.

대성 큰스님은 40여 년 전 바랑 하나 달랑 짊어지고 은하사로 올라 올 때만 해도 지금의 삼방동에서 은하사까지 길다운 길이 없었다고 한다.

산길을 대충 다듬어 겨우 사람이 다닐 정도였지만, 길 가운데 불쑥 솟아있는 바위 때문에 잠깐만 한눈팔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 일쑤였다고 했다.

그래도 그 길을 수십 년 오르내리면서 불사를 했고 불쌍한 많은 아이들을 이 길을 통해 공부시키고 훌륭하게 키워내기도 했다.

한 스님의 원력이 오늘 이처럼 수 없는 시민과 불자들이 자가용으로 휑하니 쉽게 찾아와 의지하고 위로받고 기도하여 새로운 희망을 담아주는 국민사찰로 부처님 도량으로 태어나게 한 것이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02호 대웅전 벽화.  
 

새해 아침 기자를 만난 대성 큰스님은 “우리나라 최초로 불교를 들여와 가락국을 번성시키고 김수로왕의 7 왕자를 출가시켜 성불시킨 불지로서 김해 전체가 불교성지이다. 장유화상이 7곱 왕자를 데리고 이곳 신어산과 은하사에 머무르며 수행하고 7왕자를 출가시킨 역사 깊은 고찰이다.”고 강조하시며 “김해불교가 하루빨리 제자리로 돌아와 찬란했던 가라국 당시의 불교와 같이 나라와 국민의 정신적인 의지처가 되고 국민정신 문화 창달 사업에도 기여하여 오늘의 난국을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도록 한 역할을 했으면 한다.”고 했다.

 

 

“우리 불교도 이제 힘을 모아 백화점이나 대형 유통매장 정도는 운영하여 불자들이 한곳에서 필요한 것을 사고, 보고, 먹고, 즐기는 대중사업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시기도 했다.

   
 
  대성 스님께서 영남불자들에게 새해 법어로 "만사길상"을 선물하셨다.  
 

스님은 “이제 불교도들이 앞장서서 불교도들을 위한 다양한 복지사업 즉, 병원 복지시설 장례문화(납골 추모공원 조성과 이용) 등에 박차를 가하고 불자들도 이를 적극 이용하여 활성화 시켜야 한다.”고 했다.

 
   

흑룡의 해를 맞이한 영남 불자들과 시민들에게 '만사길상'이라는 휘호를 직접 쓰시면서 모든 분들의 가정과 직장에 한 해 동안 즐겁고 좋은 일만 가득하길 기원한다는 신년 법어를 주시기도 했다.

은하사에 관한 문헌기록은 '조선사찰사료(朝鮮寺刹史炓)' 상권에 있는 활천면(活川面) 서림사(西林寺)조가 유일하다.

이 기록에는 42년(후한 건무 18)에 가락국의 시조인 김수로왕에 의해 창건되었다. 또한, 절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김수로왕이 인도아유타국에서 온 허황후의 오빠인 장유화상(長遊和尙)과 함께 절을 창건하여 산 이름을 금강산(金剛山)이라하고 절 이름을 금강사(金剛寺)로 하였으며 수로왕의 일곱 왕자를 모두 이곳에서 출가토록 하여 수도정진 끝에 깨우침을 얻어 칠불(七佛)이 되었다고 한다.

창건 이후 임진왜란 때 절이 전소되었다가 1644년(인조22)에 중건되면서 절 이름을 서림사(西林寺)라하고 하였다.

이후 기록들은 현판으로 잘 남아있어 비교적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다.

기록에는 1801년(순조 1)에 대웅전 중창을 하고, 1831년(순조 31) 사찰 중수, 1835년(헌종1) 대웅전의 관음보살상 개금 및 후불탱 조성, 1861년(철종 12) 대웅전 중창,1904년(광무8) 대웅전 후불탱 조성 등이 돼 있다.

대성스님이 주석하면서 낡은 전각들을 보수하고 도량을 정비하여 현재의 가람을 이룩했다.
대웅전에는 목조관음 보살상을 주 존으로 모셨다. 석가모니부처님과 신중을 후불탱으로 모셨다.

목조관음보살상 17세기 불상양식을 띠고 있어 대웅전 중건과 함께 봉안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범어사의 말사이다. 전하는 설에 따르면 신어산 서쪽에 인도불교가 들어온 것을 기념하여 서림사를 지었으며, 동쪽에 동림사(東林寺)를 지어 구야국의 번영을 기원했다고 한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화운루·설선당·명부전·응진전·요사채 2동과 객사·산신각·종각 등이 있다. 이 중 대웅전은 조선 중기 이후에 세워진 전각으로 1983년 7월 20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38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용두(龍頭)와 봉두(鳳頭)의 생김새가 독특하다. 대웅전 안 수미단에는 신어(神魚) 무늬가 있었으나 근래에 도난당했다. 그밖에 1668년(숙종 14)에 쓴 시왕전 상량문과 1791년에 쓴 시왕전 이건 상량문, 취운루 현판 등이 전해오고 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02호
명 칭/ 김해은하사대웅전벽화 (金海銀河寺大雄殿壁畵)
분 류/ 유물 / 불교회화/ 벽화/ 석벽화
수량/면적 32점(點) 지정(등록)일/ 2003.10.30
소 재 지/ 경남 김해시 삼방동 882 은하사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 은하사주지 관리자/ 은하사

 
   

벽화는 은하사대웅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38호) 내부 벽면 전체에 그려져 있으며, 주제는 삼세불, 아미타내영, 보살상, 신장상, 나한상, 도인상, 모란 등으로 총 32점이다.

전각 내의 좌우측 중심벽화인 삼불회도와 아미타내영도는 다른 벽화 간에 기법상 차이가 있는데, 다른 벽화보다 시기가 다소 앞서는 것으로 보이며 조선후기 18세기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세불 벽화는 대웅전 본존을 중심으로 좌측 벽면에 녹청안료를 전체적으로 펴 바르고 석가여래 입상을 중심으로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를 좌우에 배치하였으며, 육신부는 백색으로 육신선은 주색선으로 묘사하였다.

대웅전 본존을 중심으로 좌측 벽면에 녹청안료를 전체적으로 펴 발랐으나, 갈색으로 변색된 상태이다. 도상은 화면 가운데 석가여래 입상을 중심으로 왼쪽(향우측)에 약사여래, 오른쪽(향좌측)에 아미타여래 입상 등 총 3구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두 답할연좌 위에 정면을 향해 배치되어 있다. 육신부는 백색안료를 바르고, 육신선은 주색선으로 묘사하였다. 안면의 코는 콧등의 윤곽을 그은 뒤 콧방울을 이중으로 겹쳐 긋고, 비공은 먹을 발라 표현하였다. 원형 두광은 녹청을 비교적 짙게 바른 뒤, 테두리는 안쪽에서부터 백색·주색·적갈색·녹청색·백색의 순으로 윤곽선을 두르고 있다.

   
 
  대웅전 주존ㆍ관세음보살 경남도지정 문화재.  
 

벽화의 테마는 삼세불, 아미타내영, 보살상, 신장상, 나한상, 도인상, 모란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대웅전 전각 내의 좌우측 중심벽화와 그 외 벽화 간에 기법상 차이가 보여, 동시기에 모두 제작된 것으로 보기 힘드나, 대웅전 벽화중 좌우측 벽면의 중심벽화인 삼불회도와 아미타내영도는 다른 벽화보다 시기가 다소 앞서는 것으로 보이며, 적어도 조선후기 18세기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