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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남산의 분노-6- 김해읍 부원·봉황 토지구획정리사업 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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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남산의 분노-6- 김해읍 부원·봉황 토지구획정리사업 실상
  • 경상도촌놈 조유식
  • 승인 2011.10.04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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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김해에 정착한 그 시절은 김해군 김해읍, 대저읍, 진영읍 등이 김해군의 중심이 되고 있었다.

김해평야의 옥토에서 각종 농작을 하는 농민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들 3개 읍은 대체적으로 농사보다는 상업을 주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따라서 군민으로서 출입께나 하는 지역정치인들과 자칭 유지들은 당연히 이들 3개 읍 번화가를 누비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김해읍(지금의 김해시 동지역)은 군청과 경찰서 읍사무소를 비롯한 행정기관들이 몰려 있다 보니 김해군을 대표하는 지역유지 대부분이 이 지역에서 터를 잡고 생활했다.

김해군의 유지들이 타 지역 유지보다 더 파워가 있다는 평을 받기도 했던 이유가 바로 치안당국인 경찰의 업무는 경남경찰청이 관할하고 법원과 검찰의 업무는 부산지원 및 부산지검에서 관할하면서 부터다. 이렇다 보니 경찰과 검찰의 적극적인 단속, 감시가 소홀한 점을 악용하여 각종 범죄와 비리가 속출했다.

당시 부산 교도소는 김해사람이 없으면 문을 닫아야 한다는 유행어가 나돌 정도로 부산교도소에 김해사람들이 많았다.

70년대 대한민국 최초로 7토막 살인사건이 난 곳이 김해이며 부산 모 대학생 20여 명이 수로왕릉으로 놀러 왔다가 김해 범띠 처자 7명으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해 심각한 중경상을 입는 사건이 터져 선데이 서울 전면을 장식했던 곳이 김해이다.

1년에 한 번 자식들 학비마련을 위해 애지중지 키우던 소를 팔아 큰돈을 쥐고 돌아가는 농민들을 여자 깡패들이 폭행하거나 여인숙으로 유인하여 농민들의 소 판 돈을 몽땅 들고 도망가는 일도 종종 일어나기도 했다.

이처럼 치안 사각지대가 된 김해에 돈께나 있는 졸부들이 낮에는 경찰서를 드나들며 유지행세를 하고 밤에는 서남다리 장어골목으로 검사 판사를 초대하여 접대하기도 하면서 특별한 유지가 되었던 것이다.

이들 특별한 지역 토호권력자들은 밤낮으로 고급 방석집(구산동 잉꼬장 등)과 높은 철조망 울타리가 처진 내동 단감 과수원 별장에 손녀 같은 아가씨들을 불러들여 질탕하게 희희낙락(喜喜樂樂)하면서 김해의 미래가 아닌 자신들의 미래를 도모하기도 했다.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안 되는 것이 없던 바로 그 시절에 이들 토호세력이 합심하여 떼 돈을 벌어보자며 만들어 낸 것이 김해읍 부원동, 봉황동 일대 약 13만여 평을 대상으로 하는 토지구획정리사업이었다.

그때 부원동 김해중학교 정문 앞(세무서 뒷길)↔장유가도↔(구)봉황초등학교 앞 남쪽 지역 대부분이 저습지로서 논, 밭농사는 불가하여 미나리 농사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이 지역에 대해 1~2미터 높이로 매립 복토하여 택지를 조성한다는 것이었다.

이 계획은 김해군청이 먼저 경남도에 이 지역 도시계획사업 승인을 받아야 가능했기 때문에
그들은 김해군수와 공무원들을 압박하여 도시계획사업 승인을 신청하도록 했다. 그리고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 편입 예정지에 대해 사전에 매입하기도 했다.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로 지정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순진한 농민들은 현 시세보다 조금씩 더 주겠다는 그들의 제안에 속아 논을 다 팔아버렸다.

논을 팔고 난 이후인 1978년 8월 22일 경남도로부터 도시계획토지구획사업지구 시행에 필요한 인가신청기간을 1978년 8월 31일까지 지정했다는 발표가 있고 나서 논을 판 농민들은 난리가 났다.

속았다. 논을 돌려 달라. 매매계약은 무효다. 매매한 논 값을 더 달라 등등 농민들의 원성이 극에 달했다.

오직 재산 불리는데 눈먼 그들의 농간에 재산을 잃은 일부 가장들은 가족들로부터 한참 동안 원성을 받아야 하는 이중삼중의 고충을 겪어야만 했다.

지역의 절대 권력자들이 된 그들이 돈 없고 힘없는 농민들의 항의와 호소를 묵살해 버리자 농민들이 그들을 보고 사기꾼 놈들 후손들이 얼마나 잘사는지 두고 보자며 이를 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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