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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 의병장 곽재우 장군과 17장령 모신 충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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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 의병장 곽재우 장군과 17장령 모신 충익사
  • 조유식취재본부장
  • 승인 2013.09.10 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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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령 의병장 곽재우 장군과 17장령모신 충익사

   
 
  충의각(忠義閣) 조선후기 건립, 1978년 이건. 곽재우 장군과 17장령의 명판(名板)을 모신 정각이다. 다포팔작 양식으로 극락세계를 염원하는 상여(喪輿) 모양을 본뜬 건물이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22호)
 
 

경남 의령군은 2012년 기준 인구 3만329명으로 전형적인 농촌소도시이다.

하지만 이 작은 인구를 가진 의령군이 펼치고 있는 의병들을 추모하는 의병의 날 행사와 충의사상은 전국뿐만 아니라 세계 기네스북에까지 기록될 정도로 잘 알려져 있다.

매년 6월 1일을 의병의 날로 재정하여 이날을 전후하여 의병제가 화려하게 열리고 있다.

1978년 12월 22일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을 가진 충익사는 2009년 의령 9경 중 제1경으로 지정될 정도로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의병탑(義兵塔) 1972년 6월 3일 군민의 성금으로 건립하였으며, 탑의 18개 백색고리는 관재우 장군과 17장령을 상징하고 있다. 또한 양기둥은 의병의 승리를 뜻하는 만세형상이며, 전체 형상은 전의충전하는 의병의 횃불을 상징하고 있다. 기단은 조선팔도를 뜻하는 한자 `八`자이다.  
 

경남 의령군 의령읍 중동리 467-2 남산 아래 위치한 충익사(忠翊司)는 1592년 임진왜란 때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켰던 망우당 천강홍의장군 곽재우(1552-1617)와 17장령 및 의병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곽재우 장군은 명종 7년인 1552년 8월 28일 외가인 경상남도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에서 출생하였다. 1585년(선조18)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답안지에 왕의 뜻에 거슬린 글귀가 있다하여 파방되자 과거를 포기하고 은거한 채 자연과 더불어 시를 지으며 초야에서 지냈다.

선조25년인 1592년 4월13일 왜병이 침입하여 서울로 진격해오자 “나라를 지키는 일은 관군에게만 맡길 수 없다”고 판단 4월22일 전국에서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켜 왜병의 침공을 막았다. 장군은 홍의에 백마를 타고 휘하에 17명의 장수와 수천의 의병을 거느리면서 낙동강과 남강이 만나는 기강을 비롯해 정암진과 현풍, 창녕, 영산, 화왕산성, 진주성 등의 전투에서 실로 신출귀몰한 전략과 전술로 적을 크게 무찌르고 백전백승함으로써 왜병의 전라도 진격을 차단하는 한편, 낙동강 등지에서 적의 화약 등 군수품의 수송을 저지하였다. 왜란 이듬해에 성주목사를 거쳐 진주목사와 경상우도방어사를 지냈고 난 후에는 오위도총부 부총관을 비롯해 산성부 우윤, 함경도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사후에 충익이란 시호와 함께 병조판서 겸 지의금부사에 추증되었다.

1972년 이래로 매년 의병창의일인 음력 4월22일에 의병제전 행사와 더불어 추모행사를 거행하고 있으며, 음력 8월 28일에는 장군의 탄신다례를 올리고 있다. 충익사 내 의병탑, 충의문, 곽재우장군 유적정화기념비, 충의각, 사당, 충의문, 기념관, 박물관 등 다양한 시설물이 있으며 5백년 이상 된 모과나무와 백일홍이 일품이다.

충익사 앞을 흐르는 남천을 따라 조성된 자연경관을 잘 살린 유적공원은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려오는 명소가 된지 오래이다.

 

 
   
   
 
  사당(祠堂) 곽재우 장군과 17장령 및 무명의병들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을 드리는 곳이다. 매년 6월1일 의병의날에 추모제향을 올리고 음력 8월 28일에는 곽재우 장군 탄신다례를 올리고 있다.  
 

기념관에는 의병들의 행적과 전투 장면들 그리고 각종병기들이 전시되고 있고 손으로 터치하며 영상시스템이 가동되면서 당시상황을 설명한다.

박물관 또한 의령의 역사와 유물 기념물들이 잘 정리되어 전시되고 있으며 세계기네스에 등재된 의령 큰줄당기기 장면도 전시되고 있었다.

일몰 시간까지 상시 개방되어 있는 충익사는 사당에 곽재우 장군과 17장령들의 위패를 봉안하고 재향을 드리는 곳으로 누구나 참배 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다.

의병장 곽재우 장군과 의병장들이 오늘의 의령군을 의병 발상지 충의의 고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인구 3만 의령군민들의 의병사랑 운동에 비해 인구 52만 김해시민들의 의병장 사충신에 대한 선양사업은 부끄러울 뿐이다.

 

 
   

지금이라도 의령 충익사 처럼 사충단을 도시로 옮겨와 성역화 사업을 통한 추모행사 등을 대대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사충단 이전 시민운동에 대해 구체적인 안들이 추진위원들에 의해 초안이 되고 있는 만큼 공청회 등을 거처 사충단 이전과 성역화 정비 등 추모행사가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곽재우 장군(1552~1617) ▲1552년 8월28일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 출생 ▲1567년 남명 조식 선생 문하에서 수학 ▲1593년 성주목사 ▲1595년 진주목사 ▲1597년 (정유재란) 경상우도방어사 ▲1610년 한성부 우윤, 함경도 관찰사 ▲1617년 4월10일 창녕군 도천면 우강리 망우정에서 서거.  
 
   
 
  기념관(紀念館) 2013년 6월1일 전시관과 체험관으로 새로 꾸몄다. 전시관에는 곽재우 장군의 기마도 및 전적도 등 5폭과 신도비문 탁본 등을 볼 수 있으며 체험관에는 말타기 등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의령 남산천 구름다리의 전설
이곳은 자굴산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의령천과 벽화산 기슭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남천이 합류되는 삼각지로 예부터 「宜寧의 西泉」이라 불리었던 곳으로 동쪽에서 구룡(九龍)이 西泉의 發源地에서 솟구치는 용출수 수증기가 서남풍에 따라 남산의 동쪽에서 九龍이 노닐고 갔다하여 지금도 구룡마을이 있고, 이곳은 구름다리 주탑에서 동쪽으로 남강 정암진 솥바위가 있어 솥바위 반경 30리(12km)에서 부자가 난다는 전설과 함께 우리나라 경제인 가운데 삼성그룹 호암 이병철(의령군 정곡면), 효성그룹 만우 조홍제(함안군 군북면),LG그룹 연암 구인회(진주시 지수면)선생이 그 실제인물로 태어나 우리나라의 경제에 큰 기여를 하고 있으며, 이곳 구름다리(주탑)에서 동쪽 해뜰무렵 솥바위쪽을 바라보고 기원하면 아홉용(龍)의 기운을 받아 부자가 된다는 전설(傳說)이 있는 이곳에 의령군에서 공원화하여 의령구름다리를 건설(2005)하였다.
 
 
 
   
 
   
 
   
 
   
 
   
 
   
 
   
 
   
 
   
 
   
 
   

충익사 가는길끑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충익로1(중동리 467-2) 055)573-2629,570-2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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