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시 동사동 옛 호계사 주변에 있던 연자루지. 가락국 시대부터 유서 깊은 누각으로 알려지고 있다. 구형왕(仇衡王) 9년(531) 겨울에 이 누각이 명동(鳴動)하니 장안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임자년에 국망(國亡)을 예언하는 것이라 하여, 왕명으로 훼철하였다고 전한다. 그뒤 언제 재건되었는가에 대하여는 알 길리 없지마는 1677년(숙종3) 부사(府使) 변국한(邊國翰)이 중건한 이래 여러 차례 중수를 거듭해오다가 1932년에 철거되고 건물 일부는 매각 되었다고 한다.
연자루는 밀양 영남루, 진주 촉석루(矗石樓)와 함께 남도의 대표적인 누각이었다. 고려시대의 정몽주, 주열, 김득배, 왕강, 등과 조선초기의 이행, 맹사성, 김감, 맹석흠 등의 제영(題詠)이 걸려 있었다.<포은선생문집>에 다음시가 전한다.
헌납 이첨이 안행할 때에 김해 연자루 앞에 손수 매화를 심었다고 전하기에
연자루의 앞에는 제비가 돌아오건만
낭군은 한번 가서 다시 오지 않네
그 당시 손수 심은 매화나무는
그동안 봄바람에 몇 번 피었을까
연자루의 유일한 건축물인 팔각 기둥 석주는 높이 122cm 이며 상단둘레가 227cm 이며 하단둘레는 227cm이다.
석주의 크기로보아 엣 연자루의 웅장함을 짐작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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