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매일 PDF 지면보기
과월호 호수이미지
과월호 호수이미지
과월호 호수이미지
과월호 호수이미지
과월호 호수이미지
과월호 호수이미지
최근 김해종합뉴스
행복1%나눔재단 희망캠페인
함께해요 나눔운동
時도 아닌 것이
행복밥집
TV 방송 영상
커뮤니티
다시보는 부끄러운 김해 현장
ㅡ가로등은 가난한 서민의 친구다
상태바
ㅡ가로등은 가난한 서민의 친구다
  • 편집부
  • 승인 2008.07.19 13: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ㅡ가로등은 가난한 서민의 친구다

윤재열
수필가

  나는 가로등을 좋아한다. 새벽에 출근할 때도 가로등이 인사를 한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올 때도 모두가 어둠살로 사라져 가지만 가로등은 나를 기다린다. 가로등은 친구다.

가로등은 도시의 여느 사물과 달리 생명감을 느끼게 한다. 하루 동안 팽팽했던 생활에 지쳐서 돌아오는 도시인에게 고향의 어머니처럼 포근하게 집으로 길을 열어 준다.

으슥하고 후미진 밤길에서 어둠을 쓸어내고 있는 가로등은 만취되어 돌아가는 술꾼에게는 안내자가 되어 주기도 한다. 아니 가로등은 어둠만 쓸어 내는 것이 아니다. 종종 걸음으로 돌아가는 처녀에게는 두려움을 쓸어 내주는 보디가드 역할도 한다. 가로등은 서양 산물 중에 가장 인간적이다.

우리가 만드는 문물은 편리를 위해 만들지만 언젠가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하지만 가로등은 단출하게 만들어졌으면서도 우리에게 한없는 혜택을 주고 있다. 오늘날 물량이 큰 것이 좋은 것으로 여기는 세태여서인지, 골목길 상가까지 크게 변하고 있다.

치장하고 있는 네온사인은 현란하게 자기 과시를 하고 있다. 하지만 가로등 만은 극도의 절제를 자랑하며 서 있다. 어둡고 무서운 뒷골목에서 가는 허리를 앙버틴 자세로 서 있다. 그래서인지 가로등도 인위적인 치장임이 분명한데, 그렇지 않게 느껴진다. 가로등은 대인군자(大人君子)처럼 겸허하다.

겨울 찬바람 속에서도 얼굴 표정은 오히려 따뜻하게 빛을 발하면서 이웃이 갈 길을 밝혀준다. 모두가 추위를 피해 문을 걸고 있을 때, 온몸으로 추위를 이기고 있다. 하늘이 노해 폭포처럼 빗줄기가 내릴 때도 가로등은 거기에 있다. 한 번 쯤은 한눈을 팔기도 할 텐데, 가로등은 변함이 없이 늘 외롭게 우리를 기다린다.

그러면서도 가로등은 자기의 행세를 말하지 않는다. 그저 뒷짐을 지고,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산 속에 침묵으로 서 있는 소나무처럼 행인의 발걸음을 굽어보고 있다. 난 큰 도로에 쭉쭉 뻗은 가로등도 좋아하지만, 뒷골목 후미진 곳에 있는 가로등을 더 좋아한다.

간혹 전봇대 허리에 얼굴만 빠끔히 매달려 있는 보안등, 가난한 집 담에 알전구만 흐릿하게 있는 등을 좋아한다. 뒷골목 오미에 웅숭깊이 자리한 등은 단순하고 소박한 짜임새 일지라도 제 몫은 다한다. 세련된 자태는 없어도 넉넉한 기품에 환한 미소는 잃지 않는다. 거만하지 않아 오히려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

가로등은 누구의 소유도 허락하지 않는 사물이다. 내가 바라보면 내 것이요, 내가 그 밑을 지나면 내가 차지하고 있는 불빛이다. 명리(名利) 앞에서 악착스럽게 살아가던 미운 인간이 지나가도 가로등은 책망하지 않는다.

삭막한 인간들의 삶의 상처를 어루만지듯 오히려 따뜻한 내심(內心)의 불빛을 쏟아낸다. 은백색의 얼굴은 무너지는 도덕과 윤리를 바로잡으려는 할아버지의 얼굴 같고, 주황색 보안등은 고향 앞마당에 빨간 감이 매달린 것 같다.

가로등은 사람이 만든 것인데도 사람보다 더 낫다는 생각을 담게 한다. 달을 좋아했던 이태백(李太白)이 지금 살아있다면 찬바람에 볼 시린 가로등과 함께 서서 얼어 죽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루소가 천지산물 중 하나도 스승 아닌 것이 없다며, 모든 사물도 사람에게 스승이 된다고 했다.

하루를 마치고 물먹은 솜처럼 무겁게 집으로 돌아오면서 골목에 신독(愼獨)의 자세로 서 있는 가로등을 보면서 하루를 반성하고 들어가는 습관을 가져보면 어떨까. 간혹 이른 아침 산책길에서 온몸에 이슬을 묻히고 서 있는 가로등을 보면 자기 이익 챙기기에 급급한 인간들의 삶을 반추하게 된다.

요즈음 세상에 잘났다고 떠들어 대는 사람은 많아도 모두 제 구실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각박한 세태 속에서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곧 자기 자신을 이롭게 하는 것임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가로등처럼 묵묵히 자신의 일을 다 하면서 스스로의 공을 말하지 않는 지도자가 그립다. 자신의 이익을 까맣게 잊은 채 청청(靑靑)한 자세로 서서 그저 소외받고 불쌍한 사람을 위해 자기의 몸을 밝히는 가로등 같은 지도자의 모습은 진짜 힘든 것일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