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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세 바위와 여의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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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세 바위와 여의각
  • 조유식취재본부장
  • 승인 2013.12.16 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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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국 겸지왕(肅王) 때 남대정동(南大政洞)에 사는 출(出)정승과 북대사동(北大寺洞:현 대성동)에 사는 황(黃)정승은 절친한 친구였다. 자녀를 낳아 만약 딸, 아들이면 혼인을 시키자는 약속을 하였다.

황정승은 아들을 낳아 '세(洗)'라 이름하고 출정승은 딸을 낳아 '여의'라 이름을 지었는데 출정승의 마음이 바뀌었다. 몰락한 황정승에게 딸을 주기가 싫어서 여의에게 남자 옷을 입히고 아들이라 하며 키웠다. 황세와 여의(如意)는 함께 들판을 뛰놀며 자랐다. 자신이 여자임을 숨길 왔던 여의는 사실을 황세에게 밝히게 된다. 출정승도 결국 황세가 장차 훌륭한 인물이 될 것으로 믿고 혼약을 맺어주었다.

얼마 후 황세는 신라군이 침범해오게 되자 전쟁에 출전하게 된다. 여의는 황세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날마다 기도했고 황세는 전쟁 중에 큰 공을 세우고 돌아온다. 왕이 황세를 하늘장군이라 칭하고 외동딸인 유민(流民)공주와 혼례를 시켜 부마로 삼게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여의낭자와의 약혼은 무효가 된다. 이를 안 출부인은 병을 얻게 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고, 여의낭자도 크게 상심하게 된다. 이미 황세장군에게 마음을 주었기에 다른 이에게 시집가길 거절하였고 홀로 지내다가 스물 네 살의 꽃다운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유민공주와 혼인한 황세 또한 여의낭자를 잊지 못하여 마음의 병으로 그 해에 역시 죽고 말았다.

유민공주도 유민산(임호산)으로 출가하여 여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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