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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걸궁치기의 대가 최덕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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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걸궁치기의 대가 최덕수 회장
  • 우정락 기자
  • 승인 2014.03.18 13: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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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가야의 혼을 지키는 사람

최덕수 그는 누구인가

 
   

역사와 교육, 문화의 도시 김해,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전승하고자 사재를 다 틀어 헌신하고 있는 김해의 자랑이자 김해 걸궁치기의 대가 최덕수 원장.

김해걸궁치기보존회 최덕수 회장(71세)은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인 1997년 11월 30일 김해시 서부로 1059번길 81(주촌면 양동리 냉정마을)에 사비를 들여 김해국악연수원을 개원하고 현재까지 소리,농악부문의 교육 및 연수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후진양성에 전념하고 있다.

기자가 인터뷰를 위해 국악원을 찾아간 그날도 그는 강당에서 꽹과리(상쇠)를 치면서 성주풀이(고사)굿을 리드하고 있었다.

문하생들의 북과 장구, 징, 소고 소리가 추임새처럼 들어가고 구성지다 못해 애환의 아픔이 금방이라도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최 회장의 소리가 국악원 강당을 넘실거리고 있었다.

최덕수 회장은 1982년 사라져 가는 김해전통놀이를 보존, 발전, 전승하기 위해 ‘김해걸궁치기‘를 재창립, 32년 이라는 오랜 세월을 오직 ’김해걸궁치기 보존을 위해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44년 김해시 장유면 유하리 448번지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때부터 자연스레 국악에 접할 수 있었고 소리에 천부적인 소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외할아버지(故 주인해 옹)는 판소리에 능한 명창이었고, 어머니 주봉연 여사 또한 민요(칭칭가)를 곧잘 하였기에 소리 소질을 타고 났다는 칭찬을 받으며 소리와 함께 성장했다고 한다.

그의 부모는 그가 12살 되던 해 (1955년장유초등학교 5학년)에 소리와 풍물의 대가인 김태갑 선생에게 수학시켜 걸궁치기와 성주풀이를 배우도록 하였다.

김태갑 선생(1910년생,상쇠)의 계보로는 강홍주 선생(1889년생,상쇠), 김윤기 선생(1897년생,상쇠), 안수명 선생(1902년생,상쇠)으로 전수되어 내려온다. 그 후 그는 37세때인 1981년에는 김병섭 선생에게 단기간에 전라우도 농악 상쇠부분을 전수받고 2년 뒤인 1983년에는 전북 고창의 김성구 선생으로부터 우도농악 판굿 한마당을 전수받았다.

 
   

그는 약 60년 이상을 오로지 소리와 농악 분야에 헌신하며 몸담고 있다. 어쩌면 그의 외골수적인 우리 전통 민속예술문화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현재의 후진들이 본받고 배워 지금껏 그들이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며 자랑스런 우리 전통의 맥을 이어 가고 있지 않을까!

가락고도 김해는 찬란한 이천년 역사를 자랑한다. 박근혜 정부는 문화융성정책을 펼치겠다고 대대적으로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김해에는 아직 너무나 먼 소리로만 느껴진다. 역사와 전통도시로 도배질한 김해에 아직 무형문화재(인간문화제)로 등록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이다. 가까운 밀양에는 6명이 있고, 창원에는 4명이 있고, 양산에는 3명이 있다.

한 분야에 60년을 몸담아 오며 김해의 전통문화예술의 현주소를 만든 최덕수 예능인은 무형문화재의 모든 조건을 갖추고도 충분히 남음이 있다. 수십차례 경남도와 김해시를 오가며 무형문화재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역부족이었다고 한다.

문제는 행정의 높은 장벽과 주위의 수많은 인간장애물이 턱하니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의 소리와 국악에 대한 전승활동을 살펴보면 그는 1984년에 (사)한국국악협회 농악분과 정회원등록 및 안동시 국악지회 농악분과위원장 맡아 활동하였으며 1992년 김해시로 이사해 김해걸궁치기 보존 회장을 맡아 김해가락문화제, 진영단감축제 등에서 농악공연을 하였고 1994년에는 (사)한국국악협회 김해지부장을 역임하고 김해 불암동 부녀회 부녀농악단 창단지도를 하였다.

그리고 1996년, 1997년, 1998년 등 해마다 장유면, 생림면, 주촌면농악단을 창단 후진양성에 매진함과 더불어 매년 전국 각지에서 펼쳐지는 걸궁치기대회에 참가하여 완창 발표회를 가져 김해걸궁치기와 김해전통예술문화를 알리는데 앞장서 오고 있다.

 
   

수상내력으로도 김해걸궁치기와 김해전통예술문화에 대한 그의 진가를 알 수 있었다.

1992년, 1993년, 1994년 경남민속경연대회 장려상 수상하였으며, 1997년, 2007년, 2008년 제주도에서 개최된 한국민속 예술축제 소리부문 개인연기상인 최우수상 을,2013년 제1회 경남전국민요 경창대회(거창)에서는 소리부문 개인대상(최우수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제14회 전국민요 경창대회(상주)에서는 명창부문 우수상을 각각 수상하는 영광의 안았다.

그는 현재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생활하면서 오로지 김해의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전수하기 위해 후진양성에 매진하고 있으며 남은여생도 김해 전통문화 보존을 위해 다 받칠 것이라고 한다.
평생을 소리와 농악에  바친 그의 노력과 보람이 헛되지 않도록 김해시와 경남도 그리고 정부는 행정과 규제의 벽을 허물어 아까운 예능인재가 무명으로 역사의 어둠속으로 사라져 지기 전에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그 재능을 보존 시켜야 한다.

 
   

<김해걸궁치기와 성주풀이의 유래와 고증에 대해>
김해전통민속놀이 걸궁치기는 원래 농사를 본업으로 하는 농민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하늘에 대한 감사와 기원을 올리기 위하여 제천의식으로 출발하였을 것이다. 김해걸궁치기는 음력 10월 상달을 기준하여 햇곡식을 성주단지에 담고 햇쌀로 밥을 지어 목욕제계하고 성주신을 모시는데 정월초부터 대보름날 까지 성주신을 달래기 위하여 농민들 스스로가 행사에 참여하는 우리의 귀중한 전통문화예술일 것이다.

걸궁치기의 순서는 지방에 따라 다르나 김해걸궁치기는 당산굿,용왕굿풀이,문굿,성주굿(고사)풀이,조왕굿풀이,장독굿풀이,청룡굿풀이,마대굿풀이 순으로 되어 있다.

김해걸궁치기의 유래는 김해자유면 불모산에 있는 장유사의 절 건립을 하면서 부터인데 이 절은 김해시 장유면 대청리에 소재하는 사찰로 1400년의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되던 때의 가락불교의 요람이다.

장유사는 여러번의 화재로 건물이 소실을 거듭했는데 1592년 임진왜란때 불탄 것을 중수하였으나 다시 불타 1935년 크게 중수하면서 유하리 627번지 강홍주 옹이 대웅전및 칠성각을 건립하기 위하여 신도들과 함께 김해걸궁치기를 통해 불사금을 모았다는 가록 이 있다.

이러한 역사와 정통의 가진 김해의 자랑이자 국가의 무형문화재인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는 김해걸궁치기보존회가 최덕수 회장의 집념에 의해 오늘까지 그 원형을 보존하며 또 다를 제자들에게 전수시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공연에 열중하고 있는 최덕수 회장.  
 
   
 
  최덕수 회장의 1대 제자인 이원달 김해문화원 부원장.  
 

최덕수 회장이 밝힌 제자들 중 1대 제자 이원달(김해문화원 부원장/ 김해문화에술 봉사단 회장, 한솔장례식장 대표) 으로 최 원장은 이원달 제자에 대해 소리 춤 사물다루기 등 모든 조건을 잘 갖춘 제자로 지역민들을 위해 무료공연을 실천하고 있는 아끼는 제자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제 2대 제자는 이명식(김해오광대 상쇠)라고 했다.

이명식 제자는 이원달 제자가 자기한데 데려와 소개를 시켜 주어 제자가 되었는데 요즘 전통예술 강사로서 사회 활동이 대단하다고 자랑했다. 그리고 제 3대 제자가 최 회장의 수제자로서 전수를 받고 있는 항일태(장유거주) 제자라고 했다.

김해걸궁치기놀이는 경상남도 김해시 장유면 유하리 벼등 마을에서 전승되어 오는 민속놀이다. 김해걸궁치기놀이의 연행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성주굿풀이는 굿놀이가 가진 연희적인 성격을 띠면서 동시에 성주신이라고 하는 가신에게 집안의 안택과 화평을 비는 굿음악이다.

이러한 굿풀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적으로 널리 행해지고 전승되어지는 성주굿풀이가 국문학과 민속학계에서는 학위논문을 비롯한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음악학적인 연구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성주굿(고사)풀이의 음악 분석 결과 첫째, 성주굿(고사)풀이의 사설에서 가장 핵심을 이루는 대목은 집을 짓기 위한 건축과정을 노래하는 부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형식은 노래사설 구분의 중요단락, 즉 노래사설에서 전환점을 이루는 부분에서 교묘하게도 음악은 단락의 구분을 선명하게 맺지 않고 이어지는 양상을 띠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셋째, 선율은 ‘미-솔-라-도-레’ 의 미음계인 메나리조이다. 가창자의 독특한 가창 방식에 의한 변화음의 출현은 앞의 선율과 구별되어 들리게 함으로써 선율적 변화 및 긴장감을 유발하여 노래에 더욱 주목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넷째, 장단은 굿거리, 자진모리, 휘모리장단으로 구성된다. 소박 유형은 노래는 3,3,3,3과 2,2,2,3,3이 대표적 소박 유형이고, 악기로 받는 부분의 소박 유형은 3,3,3,3의 소박 유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통해서 김해 걸궁(걸립)치기 놀이의 성주굿(고사)풀이가 고사풀이 형태의 곡이 갖는 일정한 구조화된 형식 안에서 세밀하고 다양한 음악적 변화를 추구하며 이룩된 곡으로 노래사설과 음악은 듣는 사람들에게 일치감을 주고 그 일치감은 굿풀이를 진행하는 사람과 그 현장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굿풀이의 중요성과 가치를 일깨우는 역할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락고도 가야문화를 꽃피웠던 김해시 전역에서 농악과 사물 우리 소리를 울려 퍼지게 하여 시민을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고 있는 핵심 인물들이 최 회장의 제자들이고 또 각종 공연장을 누비고 있는 출연진 대부분도 최 회장으로부터 수업을 받았던 제자들이다.

김해를 위해 가야문화예술 인들이 다양하게 무형문화재로 등록되어 각기 종목들이 보존 전승될 수 있도록 김해시와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 것을 보존하고 전하는 것이 전통이고 그 전통을 시민을 위해 내려 놓을때 예술이 되고 문화가 되는 것이다.

김해의 자존심을 되찾는 다는 마음으로 우리 김해에도 무형문화재 보유자들이 많이 등록되어 자랑이 될 수 있도록 시민들의 관심이 절대 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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