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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제, 한여름밤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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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제, 한여름밤의 꿈
  • 김병기
  • 승인 2014.09.01 1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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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김해중부경찰서 유치관리팀장

지난 89년 12월 어느 날. 말기 위암으로 고생하셨던 아버지는 힘들게 말씀하셨다. ‘그래도 너희 할아버지들보다는 많이 살고 간다. 괜찮다. 너희 엄마가 나에게 시집을 와 남들보다 두배의 일을 했다. 잘 부탁한다.’며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의 말씀이 아직도 가슴에 생생한데 아버지를 빼닮은 집안의 대들보이셨던 아제가 동아대학교병원 병상에 누워 성성한 눈빛으로 한여름밤의 꿈을 접고 계신다.

아제는 어린 시절 조실부모에 보릿고개를 헤쳐 오면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고 초지일관 한 길만 걸어 오늘을 살고 있는 조카들의 귀감이 되셨다. 이 땅의 많고 많은 운수업을 하는 사장 중 유일하게 딱정벌레 택시를 몰았고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마지막 손님을 태워 준 곳에 택시를 세워 택시 안에서 잠을 자고 하루 세끼를 해결했던 고달픈 시절을 회상하면서 조카들에게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 길을 제시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내 나이 40대인데, 조상님 묘소를 한 곳으로 이장해 모셔야 한다.” 주창해 집안 형님들의 반대를 설득해 한곳으로 모셨다며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 조상님들의 음덕이 있었기 가능한 일로 앞으로도 후손인 너희가 잘 받들어야 한다고 바른 가르침을 주셨던 아제. 집안 대소사라면 언제나 앞장서 챙겨주시고, 우애와 화목을 덕목으로 몸소 실천하셨던 큰 그림자가 일흔둘 많지 않은 나이에 찾아온 ‘루게릭병’을 정신력으로 버티고 계신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요즘 들어 부쩍 말을 배우기 시작한 손녀가 고사리손을 흔들며 아제에게 말을 건넨다. 아제는 말을 들을 수는 있어도 목에 튜브를 꽂아 할 수가 없다. 손을 흔든다. 그런데 아제의 눈빛과 달리 손목과 발목에는 뼈와 가죽밖에 남은 것이 없다. 8월이 가고 있다. 올 9월 추석은 유난히 우울한 한가위가 될 것 같다. 명절이면 언제나 반겨주셨던 아제가 없기에, 아제는 병상에 누워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어느 스님은 열반에 들기 전 “한바탕 춤 잘 추고 간다.” 했다는데, 일찍 세상을 등진 어머님이 그리워 남몰래 눈물을 흘리시지 않았을까를 생각하면 유난히 대담배를 좋아하셨던 할머님을 찾으시던 아버지가 불현듯 보고 싶다. 이렇게 살다 갈 것을. 아제는 고향 선산 근처에 후손들이 산소를 쓸 곳이 없어 고초를 당할 것을 염려해 자연장인 가족 묘원을 선물로 남겨주셨다. 누구든지 우리 집안과 인연 있는 자는 화장한 납골을 가족 묘원에 모실 수 있도록 하라는 배려로 아제의 꿈을 펼쳤다.

벌초하는 날 전국각지에 흩어져 있는 형제 조카들이 고향 밀양에 모인다. 지난 31일이 벌초 날이었다. 새로 조성한 가족 묘원 예지원을 둘러보기에 앞서 병석에 누워계신 아제에게 “개똥밭에 뒹굴어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좋다.” 하셨는데, 아제! 훌훌 터시고 일어나 한 번 더 딱정벌레 택시 이야기를 간청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 반드시 가야 하는 길이라지만 흰 눈이 내리고, 아지랑이 눈부신 봄날에, 아카시아 향기가 천지를 뒤덮는 날 또 그렇게 미래를 열어 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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