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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식의 허튼소리- 김해여고 소사의 보조 소사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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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식의 허튼소리- 김해여고 소사의 보조 소사가 되다
  • 경상도 촌놈 조유식
  • 승인 2014.09.22 16:5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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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학력 무학으로 기자가 되기까지<21>

2014년 2월 18일까지 연재하다 중단했던 ‘최종학력 무학으로 기자가 되기까지’의 김해정착 스토리를 이어가고자 한다. 필자가 김해로 오게 된 동기는 누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나의 수양아버지가 김해여고에 계셨고 직책은 교감선생님이셨다. 교감선생님의 사택은 대성동 논실 지금의 김해여중 인근에 있었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사택 바로 옆에는 소를 키우는 축사가 있었고 그 주인의 성씨는 정씨라고 일러 주었다. 엄마 찾아 천리 길을 다녀본 경험은 있지만 누나 찾아 천리 길을 와보기는 처음이었다. 누나를 찾아보려고 해도 어디에 사는지 조차 알 수 없었기에 찾을 수도 만날 수도 없었다.

자가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 엄마에게 와서 지내던 어느 날 엄마가 누나의 연락처를 주면서 김해로 가보라 하여 무작정 김해로 온 것이다.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머무를 곳을 정해 놓은 곳도 없이 무작정 김해로 오다 보니 당장 누나를 찾아 갈수가 없었다.

며칠을 지내면서 김해 읍내 전역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다한 후 김해여고 교감선생님의 사택을 물어 찾아가 누나를 만났다. 누나는 필자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지만 당장 누나도 어쩔 수 없는 입장이다 보니 결국 교감선생님께 필자가 온 사실을 알렸다. 교감선생님은 누나를 좋아하고 아꼈지만 사모님의 눈치를 살피는 듯 보였다.

다음날 누나로부터 “아버지가 계시는 학교 교감실로 찾아가 보라”고 하여 김해여고 교감실로 찾아갔다. 교감선생님은 필자를 앉혀 놓고 "김해에 직장이 마련될 때까지 당분간 이 학교에서 소사의 일을 도우며 지내라"고 했다.

그리고 이 학교 소사인 최 씨를 불러 "함께 일할 아이니 잘 좀 데리고 있으면서 가르쳐 주세요"라며 부탁까지 했다. 이날부터 필자는 김해여고 소사를 모시는 보조 소사로 일하게 되었다.

일이라고 해 봤자 인조잔디운동장처럼 푸른 잡풀이 장악한 운동장의 풀을 뽑아내는 것이고 틈틈이 탱자나무 울타리의 가지치기도 했다. 운동장의 풀 뽑기와 페인 운동장에 마사를 깔고 다지는 일에 비해며 울타리탱자나무 가지치기는 곤혹이었다.

지금과 같이 전지가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순전히 낫으로 그 여문 탱자나무가지를 다 잘라야 하다 보니 팔뚝과 손등은 늘 탱자가시에 찔려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직속상관 인 최 씨 아저씨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기도 하고 교감선생님의 채면을 생각해서라도 불평 없이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각오로 참으로 열심히 잡일을 했다. 대성동에 사시는 최 씨 아저씨도 참 좋은 분이셨고 나중에 그분의 아들과 필자가 친구가 되어 친하게 지내기도 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던 어느 날 교장선생님으로 칭찬을 받고 나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무엇보다 서울 말씨를 쓰는 필자를 보고 여고생들이 오빠 오빠하며 좋아했으며 이것저것 먹을 것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그렇게 꿈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누나의 양아버지신 교감선생님께서 학교에 나오지 말라고 한다는 소식을 누나로부터 듣게 되었다. 김해여고에서 가장 낮은 직책으로 최 말단 소사 보조직에서 짤린 이유가 기가 찼다.

교무회의 결과라는 이유인즉 필자 때문에 아이들이 공부는 하지 않고 이런저런 말들이 학교에 나돌고 여학생들끼리 필자이야기로 수업에 지장이 크다는 것이었다. 결국 김해 와서 처음으로 다니게 된 직장에서 잘린 것이다.

일을 못해서도 아니고 말썽을 피운 적도 없고 아무 잘못도 없이 필자가 서울 말씨를 쓴 다는 이유만으로 20여 일만에 해고를 당했다.

당시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것이 서울에서는 경상도 사투리 한다고 보신탕집 주방장으로부터 큰 쇠국자로 죽자고 맞아 박 터지고 경상도에 와서는 서울 말 한다고 짤라버리다니 세상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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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陽人 2014-09-25 12:48:52
그기에 안주로 삼고 살았으면 사깃꾼이나 폐인이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대인은 항상 문제를 가지고 극복한 사람. 그래서 조영감의 옛날 이바구를 기다리고 있었던 참이었습니다. 何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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