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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식의 허튼소리-기막힌 운명 교도소에 가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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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식의 허튼소리-기막힌 운명 교도소에 가기까지...
  • 경상도 촌놈 조유식
  • 승인 2014.11.17 14:1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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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학력 무학으로 기자가 되기까지<29>

오토바이 가게에 자주 오시던 손님 중 김해군 보건소에 근무한다는 김 씨가 하루는 필자를 보고 심부름을 시켰다.

자신의 오토바이를 내주면서 대저 평강 탑 여인숙 뒤편에 있는 자기의 친구 집에 가서 봉투하나만 좀 받아 오라는 것이다. 거절할 수 없는 입장이라 필자는 적어준 약도와 연락처를 들고 그 김 씨의 오토바이로 평강목적지로 가서 밀봉된 편지봉투 하나를 받아들고 돌아오는 길에 사고가 났다.

차도보다 한참 낮은 도로 옆 인도(비포장 길)로 자전거를 타고 가던 학생이 갑자기 왼쪽 도로 쪽으로 넘어졌는데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필자의 오토바이 뒤쪽에 충돌한 후 도로 바닥에 머리를 부딪쳐 크게 다쳤다.

장애인으로 밝혀진 그 학생을 지나가던 택시에 태워 가까운 불암동 모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은 후 부산 교통부의 신경외과까지 가서 입원을 시키고 치료를 하게 했다.

그리고 다음날 김해로 돌아와 오토바이 주인인 김 씨에게 사실을 알렸더니 자신은 공무원 신분으로 처벌을 받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 필자가 스스로 자기 오토바이를 타고 가서 사고를 냈다고 진술하라는 것이다.

사건이 별건 아니기 때문에 처벌은 벌금 정도 나올 것이라며 합의와 치료비 등 일체에 대해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하며 사정을 하여 어쩔 수 없이 필자에게도 책임이 있었기 때문에 벌금 정도의 처벌을 감수하기로 하고 경찰서를 찾아가 김 씨가 시킨 대로 진술을 하고 돌아왔다.

조서를 받던 경찰관이 신체장애가 있는 학생이고 인도에서 도로 쪽으로 넘어지면서 일어난 사고로 억울한 부분이 있지만 무면허운전에다 아이가 크게 다쳤기 때문에 벌금보다 더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김 씨가 아이의 치료비와 합의금 그리고 벌금까지 다 내어 주겠다고 약속했고 공무원 신분인 그분에게 불이익이 생기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처벌을 감수하기로 했다.

그리고 합의를 위해 피해자 가족과 접촉을 하고 있던 어느 날 경찰서로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고 경찰서에 갔더니 조사담당 경찰관이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라던 그 아이가 13일 만인 오늘 사망했다는 청천벼락 같은 말을 듣게 되었다.

엄청난 충격을 받은 나는 겁에 질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고 안절부절하며 유치장에 있다가 영장이 발부되어 구속되었다. 난생처음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된 나는 거의 매일 밥도 먹지 않고 울기만 했다.

소식을 듣고 찾아온 누나와 지인들이 오토바이 주인인 그 공무원을 찾아가 대책을 요구했지만 자기 몰래 오토바이를 타고 갔다며 딱 잡아떼더라는 것이다. 합의를 기다리며 이름도 성도 모르는 그 아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밤낮을 보내며 고통스러워하자 경찰서에서 바로 주례구치소로 넘겨 버렸다.

주례교도소에서도 그 아이가 좋은 곳으로 가서 건강한 몸으로 태어나기를 기원하며 참회의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다짐을 했다. 앞으로 나는 저 아이의 삶까지 살아야 한다. 부끄럽지 않는 회생으로 사회에 봉사를 하면서 참회하기로 명세를 했던 것이다.

오토바이 주인으로부터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한 누나와 지인들이 별도로 합의금을 어렵게 마련하여 합의서를 받아 주겠다는 모 단체 부회장에게 합의금을 주며 부탁을 했는데 이모 부회장이 합의금을 착취하고 합의서를 받아 주지 않은 바람에 나는 금고 10월 형을 선고 받고 전라도 순천교도소로 이감되어 갔다.

그곳에서 교도소장의 독일산 자전거 정비를 전담하는 보안소지로 발탁되어 매일 교도소장의 자전거와 생활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교도소장이 나를 불러 놓고는 “너는 내일 특별 가석방 된다. 나갈 준비를 해라 그동안 수고했다”는 말을 했다.

금고 10월을 받아 이곳까지 이감 왔는데 7개월만 살리고 3개월을 사면하여 나를 내보내 주었던 것이다.

교도소장의 자전거를 열심히 손질해주고 관리를 잘해 준 덕이라고 여기며 일단 감사해 했다.
하지만 솔직히 기쁘지는 않았다. 내가 이렇게 혜택을 받을 만큼 충분한 참회를 했는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 김해로 돌아갈 용기도 없었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석방이라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는 교도소 정문을 나와 하늘의 태양을 쳐다보았다. 저 높은 교도소 담장 안의 태양과 교도소 밖의 태양이 똑같다는 것을 느끼면서 김해로 왔고 오늘도 참회하며 그 아이의 몫까지 살고 있다.

지난 과거를 아는 사람도 없는데 밝히지 말라는 분들도 있었지만 지난날의 과오를 아무도 모른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늘 반성하고 또 사죄하며 새로운 일들에 임하는 것이 사람이 해야 할 도리이기에 오늘 이 참회록을 통해 다시 한 번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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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實 2014-11-24 09:25:11
로케트 발사체 다음 단계로 넘어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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