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숫자가 담지 못한 이웃의 비명
"며칠째 연락이 되지 않는다, 옆집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현관문 시건장치 개방 및 현장 안전 확인 요망."
긴급한 상황임을 알리는 무전기 소리와 사이렌을 울리며 현장으로 향하는 구급차 안. 자주 접하는 출동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늘 심장은 바쁘게 뛴다.
며칠째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가족의 신고, 또는 현관문 틈새로 흘러나오는 이상한 기척에 출동하는 현관문 개방 현장은 언제나 극도의 긴장감을 안겨준다. 문이 열리는 순간 마주하게 될 침묵이, 제발 비극이 아니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현관문 손잡이를 잡는 손에 힘이 들어간다.
평온한 일상의 그늘 아래서, 오늘도 수많은 이들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채 힘겨운 시간을 견디고 있다. 국가통계포털(통계청)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전국의 고의적 자해(자살) 사망자 수는 2022년 1만 2,906명, 2023년 1만 3,978명, 2024년 1만 4,872명에 이르렀고, 가장 최근인 2025년에도 1만 4,144명에 달한다. 단순한 통계를 떠나, 매년 만 명이 넘는 이들이 왜 삶의 희망을 놓게 되었는지, 그 차가운 숫자가 품은 외침은 우리 모두를 아프게 한다.
현장에서 마주하는 이들은 결코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 털어놓지 못할 아픔을 품은 채 치열하게 하루를 버텨온 사람, 거듭된 시련과 예기치 못한 실패 앞에서 힘겨워하는 사람, 그리고 적막 속에 홀로 남겨진 사람까지. 그들은 모두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자 가족이다.
무겁게 잠긴 현관문을 열고, 생사의 기로에서 마지막 손길이라도 잡는 마음으로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며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이미 골든타임을 놓친 경우를 마주할 때, 구급대원으로서 가장 마음이 아프다.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할 때의 안타까움은 더욱 크다.
그럴 때면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조금만 더 일찍 알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누군가가 보내고 있었을 작은 신호를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자책과 안타까움이 남는다.
통계 수치의 증감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근본적으로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고단한 일상 속에서 홀로 신음하며 외로움을 견디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 평소와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이웃은 없는지 한 번 더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물론 생명을 지키기 위한 제도와 전문적인 지원체계도 중요하다. 하지만 때로는 거창한 도움이 아니라 먼저 건네는 따뜻한 인사 한마디, 안부를 묻는 짧은 전화 한 통, 그리고 힘들어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관심이 누군가에게는 다시 하루를 살아갈 힘이 될 수 있다.
생명을 지키는 일은 싸늘한 현장에 도착해 급히 손을 쓰는 순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누군가가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기 전에 우리가 먼저 건네는 관심과 따뜻한 손길에서부터 시작된다.
부디 더 이상 외로운 신호가 묻히지 않는 사회, 서로의 안부를 살피고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오늘도 우리는 현장으로 출동한다.
그리고 그 현장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 무사히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해동부소방서 내외119안전센터 소방교 정영광
<자료출처 : 국가통계포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