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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칼럼...ㅡ헌것과 새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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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칼럼...ㅡ헌것과 새것
  • 편집부
  • 승인 2008.12.22 15: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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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헌것과 새것

정목일
수필가


우리 아파트 단지는 일주일에 한번씩 버릴 가구며 옷가지며 책 등을 한자리에 모은다. 이것들은 폐품 수집소로 가거나 쓰레기로 처분된다. 집수리를 한 경우엔 헌 가구들을 내다 버리는 일도 있다.

우리 집 식구들도 헌 가구며 헌책 등을 정리하여 버릴 것은 버리자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좁은 집안을 온통 책들이 차지하고 있어 갈수록 공간이 비좁아지니 쓸모없는 책들을 정리하여 버리자는, 애원에 가까운 하소연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껏 나에게로 온 책들을 버린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 내가 책을 버리면 내가 보낸 책들도 버림을 받는 처지가 될 것 같아 내키지 않는다. 낡고 퇴색된 것들을 정리하고 집안 환경을 바꿔 봄으로써 새 기분과 활력을 찾아보자는 슬기로운 뜻은 헤아릴 만하다.

꾀죄죄하게 궁색스러움의 때와 먼지를 둘러 쓴, 수십 년이 된 가구들은 지금 내다 버려도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일까. 평생을 여유롭게 살지 못한 나에게는 물건 한 가지를 사는 일도 쉽지 않은 만큼, 쓸모가 없어지지 않는 한 버릴 생각도 하지 않는다. 새것이 좋고, 집 안에 쓸데없는 물건들이 늘어나는 일이 좋지 않음도 알고 있지만, 정이 든 물건들을 함부로 버리는 일엔 쉽게 동조하고 싶지 않다.

오래된 것은 퇴색되면서 버림을 받고 망각 속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오래된 것일수록 삶의 손때와 체취와 정서가 묻어 있게 마련이다. 또 사연이 얽혀 있어 추억을 되살려 주기도 한다.
대대로 가구들을 물려 받기도 했던 우리가 언제부터 새로운 것만을 선호하고 가치를 부여하며 오래된 것을 쓸모 없고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게 된 것일까.

나는 우리 집에 장롱, 사방탁자, 서상(書床)같은 오래된 목공예품이 하나쯤 있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오래 묵은 목공예품은 적어도 백년 이상의 수령을 지닌 나무를 택해 만들어진 것이다. 세월의 흔적으로 거무튀튀하게 보일지는 모르나 목리문(木理紋)의 아름다움에는 그 어떤 찬사를 늘어 놓는다 하여도 넘치지 않을 것이다.

나무는 매년 삶의 체험과 느낌을 한데 모아 한 줄씩 나이테를 그린다. 수령만큼의 나이테로 자신의 삶을 아름다운 추상화로 그려 놓는다. 목리문엔 우리나라의 하늘과 당과 물의 말, 그리고 자연의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보잘것 없어 보이는 옛 목공예품엔 나무가 일생을 통해 얻어 낸 깨달음의 미가 담겨 있다60~70년대 우리 농촌에는 대대로 물려받은 장롱, 뒤주, 밥상, 궤 등의 목공예품을 가난의 상징물로 취급하여 고물장수에게 팔아 버리는 일이 잦았다.

쓰레기를 내다 버리듯이 목공예품을 팔고 반짝반짝 빛나는 호마이카 가구를 들였던 것이다. 호마이카 가구들은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상품에 불과하나 대대로 물려받은 목공예품들은 백년 이상 된 목재로 장인들이 손수 정성을 다해 만든 작품이다.

한국의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예술품인 것을 모르고 새것에만 가치를 부여한 결과, 그들은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오늘도 아내는 오래된 책이나 가구 등과 유행이 지난 넥타이는 버리자고 한다. 타당한 말이며 나 또한 그럴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나는 물건을 아끼는 사람도 아니고 특별히 욕심이 많은 사람도 더욱 더 아니다. 그런데도 여기저기 물건들이 어지러이 놓여있다.

사찰에 가면 승려의 방을 유심히 살펴보곤 한다. 승려의 방은 텅 비어 있다. 간결하고 명료하다 생존에 필요한 것만을 갖추고 있을 뿐, 더 이상의 옥심을 내지 않는다. 집착과 이기와 편리의 방이 아닌 명상과 참선의 방이기 때문일 것이다. 소지품이 많다는 것은 욕심, 미련, 집착이 많다는 뜻이 아닐 수 없다.

아내의 의견대로 집안을 정리할 때도 되었다. 삶의 체취와 시간의 흔적이 묻은 물건들을 처리할 때도 되었다. 옛것이라고 다 소중하거나 쓸모 있는 것은 아니다. 간직한 것과 버릴 것을 구분할 때가 되었다. 잡지류의 책들과 넥타이며 옷가지 등도 가려내어 버려야 한다.

마음을 비워 내야한다. 쓰레기로 분류되어 사라지고 말 물건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을 느낀다. 새것은 점점 시간의 침식에 못 이겨 퇴색되고 원형을 상실하면서 옛것이 되고 폐품이 되어 망각 속으로 사라진다.

나도 늙어 가면서 기억의 뒤안길로 가고 있다. 사람들은 늙어 가기 때문에 젊음을 좋아한다. 새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헌것을 버리려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자신 또한 점점 헌것이 돼 가고 있음을 망각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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