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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칼럼....장사익 소리판 `꽃구경`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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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칼럼....장사익 소리판 `꽃구경`을 보고
  • 편집부
  • 승인 2008.12.31 15: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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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춘영 김해연극협회장.  
 

ㅡ장사익 소리판 `꽃구경`을 보고

이춘영
김해연극협회장 

"어머니 꽃구경 가요"/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세상이 온통 꽃핀 봄날, 어머니는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마을을 지나고, 산길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깊어지자/아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더니, 꽃구경 봄구경 눈감아 버리더니/한 웅큼씩 한 웅큼씩 솔잎을 따서 가는 길 뒤에다 뿌리며 가네/어머니 지금, 뭐 하나요.솔잎은 뿌려 뭐 하나요/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내려갈 일 걱정이구나. 길 잃고 해맬까 걱정이구나.

이 부분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데 옆에 사람 눈치 볼 틈도 없이 나도 주체할 수 없이 볼 줄기을 타고 주르르 흘렸다. 가사가 물론 가슴에 와 닿기도 하지만 장사익의 목소리가 굽이굽이 내 가슴 속을 후벼파기 때문이리라.

장사익 소리판 '꽃구경'은 지난 11월 22일 부산시민회관 대극장에서 그렇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빈약한 경제 사정에 이층을 택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이 소리 한판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장사익의 소리는 허공을 넘어 이층 난간을 타고 그렇게 내 가슴 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죽음, 삶, 꿈, 이렇게 3부로 진행된 장사익의 소리판 '꽃구경'은 이렇게 닫혔던 내 가슴을 열어갔다. 그리고 그가 '가수'가 아니고 '소리꾼'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천상의 한을 심고, 뱉고, 허공을 박차고 나갔다.

가수의 콘서트에 가본 사람은 알 것이다. 화려한 조명, 현란한 음향과 특수 효과, 죽죽빵빵한 무용단과 합창단을 포함한 게스트, 각종 볼거리를 제공하는 이벤트, 정신 없이 구경하다 보면 어느덧 시간이 다 되고 포만감을 안고 객석을 나서면서 그 감동을 기억하나 며칠 후면 잘 기억나지 않은 그 다소의 황당함을...

그러나 장사익의 무대는 너무도 단순했다. 화려한 조명도, 무대도 없이 그가 설 자리와 연주자의 자리만이 뎅그러니 무대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기사 소리를 내 지르는데 복잡한 장치는 오히려 방해가 되기도 했으리라...

더욱 대단한 것은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대단한 뮤지션들이 같이 하면서도 전혀 자신은 내세우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 어떤 연주도 소리를 앞서지 않으려 조심조심하는 듯 보였다.

흥겨운 모듬북도 소리를 받치는 역할을 하면서 뒤따르고 첼로나 콘트라베이스도 작게 흐느끼며 노래 주위를 맴돌 뿐 절대 노래보다 뽐내는 법이 없었다.

기타나 건반도 길을 살포시 열고는 슬며시 자리를 소리에게 내줄 뿐 현란한 연주솜씨를 뽐내며 소리를 잡아먹는 법이 결코 없었다. 해금의 가는 떨림이 가슴을 후비고 나면 장사익의 소리가 거기 더 깊은 한의 자락을 덧대며 지나갈 정도였다.

죽음을 다룬 노래에서 삶의 노래로 넘어 가면서 땅과 하늘이 경계가 없고 삶과 죽음이 경계가 없음을 노래는 보여주고 있다. 허긴 죽음은 항상 삶의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고, 삶의 곁에서 같이 어깨동무하고 있는 존재가 아니겠는가?

장사익의 노래에서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있는가, 아니 버릴래야 버릴 수가 없다. 우리가 한국인인 이상에는 운명처럼 따라 다니는 것이 바로 한이기 때문에...

'찔레꽃', '이게 아닌데' , '국밥집에서' , '아리랑'...노래가 계속될수록 "이건 노래가 아니다!" 귀로 들어와야 할 노래가 가슴으로 스며들어 눈물이 되어 다시 나가는데 그 잔영은 차곡차곡 가슴속에서 설움으로 쌓여가 이젠 무슨 소리가 들려도 눈물부터 날 지경이다.

이렇게 한의 바다에 빠져 영영 돌아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2부로 옮겨간다. 그러나 희망가를 부르고 삶의 고비를 넘어가면서도, 박수를 치면서 따라 부르면서도 한번 빠진 몸을 추스러기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죽음과 삶의 경계를 연주자들은 뛰어넘었다. 슬픔의 언저리에서 벗어나 꿈으로 가기 전 모듬북이 툭툭 시작을 하더니 나중에는 사물놀이, 전자기타, 심지어 색소폰까지 어울려 모든 연주자들이 흐드러진 한판을 보여주지 않는가?

언제나 뒷자리에서 머물던 그들이 장사익이 잠시 숨을 고르고 목을 축이러 들어간 새, 멋들어진 연주로 그야말로 또다른 몰아지경으로 몰아넣지 않았던가?

1, 2부에서 상처받고 헝클어진 영혼을 추스러기 위함인지는 몰라도 3부는 우리에게 익숙한 노래(가요)들이 많이 불리어졌다. 그러나 그의 노래처럼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저하게 떨어지는 힘과 유난히 헐떡거리는 호흡에서 지금까지 젖어있던 가슴이 확 깨 버리는 듯 했다. 감기몸살에 컨디션 저하라는 본인의 변명이 있을 정도니 오죽하랴.

관객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를 부르며 '여러분에게 모두 드리겠다' 는 개사가 반가와서가 아니라 내 가슴속의 한을 끄집어내고 같이 어루만지고 같이 울고 싶은 마음을 함께해 주기 때문이라는 걸 왜 모를까?

'천상 그도 이젠 소리꾼이 아니라 가수가 되고 싶은 걸까' 하는 생각에 가슴 한켠이 쓰려왔다. 앵콜곡에서 그나마 그의 '소리' 를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종이 쪽지 몇장 붙여서 이천원을 받아먹는 팜플렛, 장사익이 쓴 글이 아닌 '장사익에 대한 이야기가 몇줄 나오는' 책을 팔아먹는 사람들이 시민회관 출입문을 메우고, 뭔지도 모르고 무작정 늘어선 사람들 뒤에 나도 줄을 서서 시디(CD) 두장을 사서 문을 나서는 시민회관 밖은 이미 깜깜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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