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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파헤쳐 없애 버린 남산공동묘지 혼령 평온 위해 市가 추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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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파헤쳐 없애 버린 남산공동묘지 혼령 평온 위해 市가 추모해야
  • 조현수취재본부장
  • 승인 2021.12.01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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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매일ㆍYN뉴스 창간 14주년 기획특집으로 `가야왕도 금관가야 도심 원형복원`이란 주제로 총 10회에 걸쳐 특집보도를 한다. 영남매일ㆍYN뉴스를 14년 동안 함께 해 준 김해, 응원하며 지켜주고 사랑해 주신 시민의 행복 등 인구100만 대도시를 바라본 김해 미래의 중심 도시 기반 조성을 비롯한 가야왕도 가락국 수도로서 균형 잡힌 도시 지형의 필요성에 대해 시민들의 의견을 기초하여 대안 제시와 시민운동을 통한 김해 숙원 해결에 기여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영남매일ㆍYN뉴스 창간 14주년 기획특집=가야왕도 금관가야 도심 원형복원]

<7> 파헤쳐 없애 버린 남산공동묘지 혼령 평온 위해 市가 추모해야

보도연맹사건 민간인 1300여명 집단 학살 500여 시신 남산공동묘지 안치
가족과 친척들 빨갱이로 몰릴까 봐 시신 수습도 못 하고 성묘조차 할 수 없어
김해 토호세력 시 청사 짓는다며 남산공동묘지 파서 부원ㆍ봉황 택지조성 매립
부원ㆍ봉황동 미나리논 매립에 뿌려진 공동묘지 인골 개들이 물고 돌아다녀
시 청사 신축하며 발생한 양민 유골 훼손 죄악… 사죄 차원 市가 나서서 달래야

지금의 김해시청 본관 및 좌우 별관 의회 청사 상공회의소가 있는 그 자리는 1978년까지만 해도 공동묘지였다.

김해의 상징적인 남산인 이곳은 분성산(만장대)끝자락으로 청룡(좌청룡)의 머리이며 임호산 백호(우백호)머리를 좌우로 하여 중앙에 가락국수도 왕궁(서상동)이 있었다.

가락국 시절부터 구전으로 전해오는 전설 속의 가락국 수도와 왕실을 수호해 온 좌청룡 우백호가 바로 남산과 임호산인 것이다.

때문에 백성들은 이 두 곳의 명산 명당자리에 조상의 묘를 쓰기도 하고 야밤에 몰래 이장도 하여 봉분 없이 매장을 했다고 전해오고 있다.

임호산 흥부암 뒤편 푹 꺼진 산능선 전체가 공동묘지인데 약 1천여 묘지가 있다는 것이 흥동 사람들의 증언이다. 그리고 지금의 분성산 남산(김해시청 본관 및 좌우 별관 의회청사 상공회의소)에도 1천여 묘지가 있었으며 지금도 200여기가 있다.

임호산의 묘지들은 자연 그대로 있지만 남산의 1000여 묘지 중 약 800여 묘지는 사라지고 없다.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공동묘지의 800여 봉분을 포크레인 등을 동원하여 모두 파헤쳐 버리는 인간으로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만행이 대한민국 최초 김해서 일어난 것이다.

파헤쳐진 묘지에서 나온 유골들이 남산 공사장 전체에 널브러져 화약으로 폭파한 바위와 돌과 섞여 다시 25톤 중장비에 실려 부원동과 봉황동 택지개발지역 미나리논 복토용으로 사용되었다.

6.25 전쟁 당시 보도연맹사건에 연루되어 영문도 모르고 살해 학살당한 억울한 선대들의 혼령이 잠들지 못하고 울부짖고 있어 유골을 수습하여 양지바른 곳에 합장하고 예를 갖추어 달래야 했지만 그 누구도 이른 예를 갖추지 않았고 무지막지하게 파헤쳐 들어내기 바빴다.

남산공동묘지에서 훼손되어 실려 온 유골들이 부원동과 봉황동 매립지 여기저기서 나 뒹굴어 다니자 온 동네 개들이 몰려들어 유골을 물고 다니는 모습을 수년 동안 볼 수 있었다.

당시 김해불교신도회(회장 배석현)와 김해불교청년회(회장 조유식) 간부 임원들이 배석현 회장의 인솔하에 만행이 자행되고 있던 남산 공사 현장을 찾아가 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유골 수습과 이장 합동 분묘 조성 및 혼령 추모 봉행을 요구했지만 모두 묵살되었고 만행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조성된 부원지구 토지구획정리 사업지구는 김해 최대 낙후지역이자 교통 혼잡지역이 되어버렸고 부원동, 봉황동 이면도로는 보행자용 보도 하나 없는 시골길이 돼버렸다.

김해 토호 세력들이 의기투합으로 떼돈을 벌기로 작당하여 시행한 부원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였지만 토지구획정리는 명분에 불과했고 남산을 들어내어 개발한다는 것과 택지조성 복토용 흙과 돌들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공짜로 반입할 수 있어 이중 삼중으로 떼돈을 벌겠다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당시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조합 김 모 이사가 증언해 주었다.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안 되는 것이 없던 바로 그 시절에 이들 토호 세력이 합심하여 떼돈을 벌어보자며 만들어 낸 것이 김해읍 부원동, 봉황동 일대 약 13만여 평을 대상으로 하는 토지구획정리사업이었다.

그때 부원동 김해중학교 정문 앞 남쪽 지역 대부분이 저습지로서 논, 밭농사는 불가하여 미나리 농사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이 지역에 대해 약 2미터 높이로 매립 복토하여 택지를 조성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김해 군수와 공무원들을 회유하여 도시계획 사업 승인을 신청하도록 했다. 그리고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 편입 예정지 논 대부분을 사전에 매입하기도 했다.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로 지정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순진한 농민들은 현 시세보다 조금씩 더 주겠다는 그들의 제안에 속아 논을 다 팔아버렸다.

논을 팔고 난 이후인 경남도로부터 도시계획토지구획사업지구 시행에 필요한 인가신청 기간을 1978년 8월 31일까지 지정했다는 발표가 있고 나서야 논을 판 농민들은 난리가 났다. `속았다. 논을 돌려 달라. 매매계약은 무효다. 매매한 논값을 더 달라` 등등 농민들의 원성이 극에 달했다.

오직 재산 불리는데 눈먼 그들의 농간에 재산을 잃은 일부 가장들은 가족들로부터 한참 동안 원성을 들어야 하는 고충을 겪어야만 했다.

지역의 절대 권력자들이 된 그들이 돈 없고 힘없는 농민들의 항의와 호소를 묵살해 버리자 농민들이 그들을 보고 `사기꾼 놈들 후손들이 얼마나 잘 사는지 두고 보자`며 이를 갈기도 했다

지역의 실세들은 공무원들에게 무언의 압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회유와 설득으로 그들의 목적을 관철시켰다. 결국, 78년 김해 군과 김해읍은 김해 도시계획 부원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에 관한 계획 인가 신청을 상부 기관에 제출하여 1978년 9월 경남도 고시를 통해 인가를 받았다.

조합은 인가를 받고 난 후 79년 80년 81년 82년 83년 84년 85년 86년 87년 88년까지 수십 차례의 계획변경을 신청하여 인가를 받는 등 도시개발이라기보다 자기들 입맛대로 구획정리를 했던 것이다.

조합은 토지구획사업지구에 들어갈 복토용 흙을 확보하기 위해 결국 남산의 공동묘지와 주변을 파고 들어내기 위해 토취장으로 허가 받아 공사를 강행했다.

조합과 공사를 맡은 이 지역 대표 건설업체인 D토건은 당시 문 모 시장과 남산을 들어낸 이곳 3천여 평(건평 1천5백 평)에 대해 20억 원의 예산을 들여 지상 5층의 시 청사를 건립했다.

당초 계획은 김해시 청사를 국도 14호선 바닥까지 흙을 들어내고 그 위에 청사를 건립한다는 설계였지만 남산 머리 전체가 하나의 암석으로 되어 있어 2년여 동안 화약으로 폭파하며 파들어 내다가 공사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로 공사 중 설계 변경하여 오늘처럼 저 높은 곳에 시 청사를 짓게 된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군청을 다녀본 농민들이 김해시 청사에 볼일이 있어도 자전거를 타고는 절대 올라갈 수도 없고 걸어서 가기도 힘들 정도의 남산 중턱에 시청이 우뚝 선 것이다.

남산의 공동묘지에 안장된 유골들을 훼손하고 그 자리에 세워진 김해시 청사, 그곳에 근무했던 간부 공무원들과 시장 상당수가 사고사와 급사 또는 알 수 없는 지병으로 운명하기도 하고 퇴직하기도 했다.

임명직 시장들은 각종 구설수에 올라 좌천되기도 했으며 민선 시장 3명 모두와 의회 의장, 상공회의소 회장등 남산의 수장들이 구속되는 악재가 이어지고 있다.

이제 공동묘지를 파헤치고 유골을 훼손했던 장본인들은 아니지만 김해시가 나서서 구천을 떠돌고 있는 혼령들을 위로하고 추모하는 사업을 통해 김해의 안녕과 평온 번영을 기원해야 한다.

인구 100만 시대를 준비하는 김해의 안정된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면 김해의 선조 영령들의 보살핌도 있어야 한다고 본다.

김해가 왜 이리 시끄럽고 평온하지 못하며 가난뱅이 도시로 전락해 가는지 걱정을 하고 있는 시민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행정이 나서서 양지바른 남산 또는 임호산 공동묘지 명지에 합동묘를 조성하여 남산 혼령들과 무주고혼 혼령들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추모 행사도 해야 한다는 충언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도 더 하신 분이 한국의 선승 화엄선사(전 동래범어사 선원장 및 주지)였다.

지난 일들과 선승들의 말씀을 다시 쓰는 기자를 보고 너무 무속적이라 할지 모르겠지만 제주도만 해도 2021년 11월까지 집안 곳곳에 가택신을 비롯한 1만8000여 신들을 모시고 있고 350곳의 신당(神堂ㆍ신을 모시는 집)이 운영되고 있으며 마을 곳곳에서 행정의 지원으로 민간신앙 추모 행사와 위령재가 여법하게 봉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주도의 발전과 번영 제주도민의 삶의  행복지수가 세계 선진국 수준이라는 것은 산자와 망자 그리고 자연의 기운을 비롯한 정기가 제주도와 함께하도록 각별한 보살핌과 보존운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해시도 제주도의 민간신앙 보존과 추모 행사 등 김해의 평온을 위해 잘하는 것 좋은 것 화합되는 것 좀 따라 해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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