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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귀인 윤용암 합성초 총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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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귀인 윤용암 합성초 총동창회장
  • 경상도 촌놈 조유식
  • 승인 2023.01.18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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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식의 허튼소리> 2023년 1월 15일 김해합성초등학교 총동창회 정기총회 및 신년의 밤 행사가 있었다.

필자에게 간단한 축사 요청이 들어와 참석하여 1부 의식을 함께 하게되었다. 필자는 합성초등학교 출신도 아닌데 매년 행사 때마다 특별 초청을 받고 있다.

100년 역사의 합성초등학교는 인재들과 영재 배출뿐만 아니라 성공한 경제인들도 수없이 배출했지만 2014년 10월까지는 총동창회가 없는 조금은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다행스럽게 몇몇 동문들이 머리를 싸잡아 매고 총동창회 창립을 위해 열정적으로 뛰어다닌 결과 2014년 11월 350여 명의 합성초등 동문들이 자리한 가운데 총동창회가 창립되어 합성 인들의 새로운 도약의 밑거름이 되었다.

동문들의 삼고초련 끝에 초대 회장으로 추대된 윤용암 회장은 취임사에서 "작은 힘과 힘을 모아 모교의 옛 명성을 되찾고 재도약을 하기 위하여 후배들에 대한 지원사업도 정착시키고 교육과정에 필요한 지원을 어른으로서 선배로서 함께 노력하여 학교 발전에 기여하고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총동창회가 되도록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초대 회장으로 추대된 윤용암 회장을 두고 제법 잘난 척하는 일부 동문들이 최종학력 합성초 졸업에다 머슴 출신으로 객지에서만 생활해 온 놈이 뭘 하겠느냐는 식의 개인의 인격과 성품을 비하하는 말들이 필자의 귀에 들릴 정도였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 잘 나온 그들 동문들의 우려와는 달리 총동창회는 파발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갔고 달리는 수레에 기별 동기들이 앞다투어 올라타면서 활기가 넘쳤다.

윤 회장은 이에 힘입어 취임사에서 밝힌 그 약속들을 빠짐없이 실천 실행하여 화합되고 열정 넘치는 탄탄한 합성초 총동창회를 구축해 놓았다.

합성초 총동창회는 윤용암 회장이 선뜻 내어준 2천만 원으로 총동창회 사무실을 마련하여 동문들의 친교의 공간 소통의 자리를 제공하여 단합을 도모했다. 2015년 5월 합성초등학교 최초의 동문들이 모교 운동장에 모여 한마음 체육대회를 개최했다.

한고희(전 김해문화원장) 15회 동기회장을 비롯한 47회까지 26개 기수 800여 명이 참석하여 난리도 그런 난리는 없을 정도의 한마당 축제장이었다.

이를 계기로 합성초 기수별 동기회가 활성화되고 덕분에 총동창회도 10년 20년 30년 역사를 가진 타 학교 총동창회보다 더 많은 사업과 활동으로 탄탄한 단체로 성장했다.

이와 같은 조직성장 배경에는 별난 귀인 윤용암 회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윤 회장은 초대 회장 취임부터 총동창회 사무실이 꼭 있어야 한다며 전세금 전액을 선뜻 기부하였고 한마음 체육행사와 총동창회의 주요 사업경비 일체를 기부 후원했다. 8년여 임기 동안 이렇게 내놓은 기부금과 협찬비만 3억 원에 가깝다는 것이 임원들의 말이다.

어린 시절 배도 많이 곯았고 가난하여 중학교 진학을 포기할 정도로 찌든 삶을 살아왔음에도 이 별난 귀인은 언제 어디서든 머슴살이로 끼니를 이어왔다는 말과 돈이 없어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했다는 말을 당당하게 한다.

울산으로 가서 조선소 허드렛일을 시작으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기술을 연마하여 특허를 받아 조선 업종에서 유일한 외부특수정비보수의 고수가 되어 큰돈을 벌며 호황을 누려오기도 했다.

윤 회장의 철학은 기업의 경영 수익금 상당액은 반드시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들 장학사업과 어려운 지인들 보살핌을 비롯하여 힘든 어르신을 위한 급식소 지원 사업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특히 2015년 필자가 운영하는 급식소 천원의 행복밥집을 찾아와 특별 후원 협약을 맺고 매주 돼지고기 300인분을 5년여 동안 후원을 해 왔다.

하지만 조선업의 타격으로 조선소 일감이 급속하게 줄어들면서 하청업체들이 줄도산을 당하는 전쟁을 치러야만 했고 윤 회장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착하고 아름다운 마음에 별난 귀인은 일거리가 없음에도 직원들을 감축 정리하지 않고 한동안 급료를 꼬박꼬박 주는 배려를 할 정도였다.

조선 경기가 나아질 조짐을 보이지 않고 기업을 100% 유지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하게 되자 서울로 올라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여 이전의 사업과 접목하여 새로운 기술 특허를 기반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반응들도 좋다고 한다.

머슴 출신 초교 졸업 인생이 신기술 두 개나 개발하여 특허까지 받아 그 분야 독보적인 인간 기능장이 되다시피 한 윤 회장을 두고 별난 귀인이라고 호칭하지 않을 수 없다.

힘들게 살아왔기에 힘들게 번 돈으로 호의호식도 해볼 만하건만 버는 족족 힘든 이웃을 위해 탈탈 털어 다 내놓는 윤용암 회장 한 사람의 헌신과 열정 덕분에 수천 명의 합성초 총동문들이 자존심과 자긍심을 가지고 모교 발전과 후배 양성 그리고 지역사회 발전에 참여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동기부여를 했고 그 결과 100여년 만에 김해시장을 배출한 것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 누구도 선뜻할 수 없는 그런 멋진 일을 합성의 상머슴 별난 귀인 윤용암 회장은 해오고 있는 것이다.

참 좋은 친구 그의 앞날에 무궁무진한 영광과 좋은 벗들이 넘쳐나도록 해달라고 천지신명께 발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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