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부지법원장, 법원행정처장 등 역임
딸 권유로 유튜브 시작, 여러 방송들 출연
"법에 의해서만 판결…잘못된 법 고쳐야"
'변호사 3만명 시대'가 됐지만 법률 정보는 여전히 일반 시민들의 갈증이 큰 영역이다. 일상에서 생긴 법률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 줄 수 있는 전문가가 주변에 있는 경우는 드물다. 오랜 법조계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참고할 만한 판례나 생활과 밀접한 법률 상식을 소개해주는 전문가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법부의 꽃'으로 불리는 대법관까지 지내고 은퇴 후 이런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
'자식은 부모의 빚을 갚을 의무가 있는가', '진실을 밝히기 위한 비밀 녹음은 정당한가', '깨알 글씨로 나열된 계약 조항 당사자에게 적절히 고지했다고 볼 수 있을까', '부동산 매매계약 후 해지시 알아둬야 할 점', '초과 이자는 돌려받을 수 있나'.
박일환 전 대법관은 이 같은 내용을 비롯해 민형사·행정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콘텐츠를 다루는 유튜버로 활동 중이다. 지난 2016년 5월 '차산선생법률상식' 채널을 개설, 현재 14만6000여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앞서 서울고법 부장판사·서울서부지법원장·법원행정처장·대법관 등을 역임한 그는, 법무법인 바른에서 고문 변호사 역할도 맡고 있다.
박 전 대법관은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법무법인 바른 사무실에서 진행된 뉴시스와 인터뷰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나 계획이 있나'라는 물음에 "편안하게, 건강하게 잘 사는 거지 목표가 뭐 있겠나"라며 "(유튜브) 실버 버튼을 받았는데, 지금 골드 버튼을 받자는 건 달성할 수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고 답하며 웃어 보였다.
그는 이어 "사실 그 정도 됐으면 어떻게 보면 대성공한 것 아닌가. (유튜브 구독자) 1만명 넘기도 어렵다는데"라며 "순수 법률 콘텐츠를 가지고 (구독자) 14만명을 넘은 사람은 나하고 여러 변호사들이 하는 곳 (이렇게) 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딸의 권유로 처음 유튜브를 시작한 박 전 대법관은 '유 퀴즈 온 더 블럭', '차쌤과 청정차산수 한 잔' 등 방송에 출연하면서 보다 대중에 알려지게 됐다.
박 전 대법관은 "나한테 직접 와서 이야기하는 사람은 잘 없지만, 이제 (길을) 가면 알기는 알더라"라며 "특히 학생들 같은 경우 어디 지역에 가면 자기들끼리 수군대면서 '유튜브 나온 분'이라고 한다"고 전했다.
법관에 대한 잘못 알려진 인식을 바로잡는 것도 그의 바람 중 하나다. 박 전 대법관은 "언론에서 좀 치우쳐서 보도하면서 (부정적 여론이 판사에게) 넘어간 예도 많이 있었다. 예컨대 조두순 사건이라든지… 판사는 법에 의해서만 (판결)하게 돼 있고 법을 넘어설 수 없는데 국민의 감정은 그렇지 않은 것"이라며 "법이 잘못된 건 법을 고치고 그렇게 해결하고 있다"고 했다. 이른바 '리걸 마인드'와 국민의 법 감정 사이에서 법관이 느끼는 고뇌가 묻어나는 대목이다.
콘텐츠는 최신 대법원 판례를 소개하거나 법조계 이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내용이 많다.
그는 "(콘텐츠로) 너무 시사적인 것을 할 수도 없고, 오래된 판례를 할 수도 없다. 최근에 나온 좋은 판례가 있으면 제일 좋은데 요새 상가임대차법은 됐는데 (계약)갱신청구권 이런 건 아직 대법원까지 판례가 안 나와 할 수가 없어서 좀 아쉽다"고 했다. 그 역시 여느 크리에이터들처럼 콘텐츠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구독자들 사이에서는 '재능 기부자다', '법 없이 사실 분 같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가졌다' 등의 호평이 나온다. 이에 대해 그는 "법 없으면 내가 굶어 죽는다. 법이 있으니까 그거 때문에 먹고 사는 것"이라는 재치 있는 답변을 내놨다.
'법률 상식 전파'라는 자신의 소개처럼, 박 전 대법관 채널은 10분 안팎의 짧은 영상 속에 유료 광고 없이 압축된 법적 지식만을 전달한다. 자택뿐만 아니라 벚꽃밭·밀밭·사찰·벌판 등 야외를 배경으로 한 영상이 많아 시청자들은 친숙함을 느낀다.
그렇다면 전직 대법관 출신 유튜버는 오랜 사회적 이슈인 법조계 내 전관예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박 전 대법관은 "사람에 따라 심리적인 거니까 있다고 생각하면 있다고 보는 거고, 없다(고 생각하)면 없는 귀신하고 비슷한 것"이라고 에둘러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