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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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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정화
  • 영남방송
  • 승인 2009.04.01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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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찬
언론인권센터 이사장

몇 년 만에 대학에 출강했다. 근자에 신세대의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해서였다. 교정을 드나들며 신세대의 정서를 느끼는 대신 훈계와 잔소리로 그들을 쥐어박다보니 어느 새 한 학기가 훌쩍 지나갔다.

최근에 나는 프랑스 작곡가 레오 들리브의 오페라 ‘라크메’에 나오는 ‘꽃의 이중창’ 에 ‘필이 꽂혔다.’ 인터넷에 들어가 찾아낸 ‘꽃의 이중창’은 여성 고음(소프라노)과 차고음(메조소프라노)의 두 가수가 호흡과 음량의 조화를 이루며 부르는 높은 음 자리의 노래다. 여성의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그 드높고 아름다운 화음이야말로 천상의 노래가 아니고 무엇이던가. 과시 남성에게 여성의 초상은 구원의 미(美)라는 진리를 새삼 깨닫게 만들었다. 그처럼 ‘꽃의 이중창’은 나의 마음을 관통하여 나를 취하게 했다.

대학생들에게 이 노래를 들려주면 그들도 뜻이 통해 나와 같은 감정을 가질 것인지 알고 싶었다.

내가 수강생들에게 들려준 ‘꽃의 이중창’은 호주의 소프라노 조안 서더랜드와 미국의 메조소프라노 마릴린 혼이 부른 것이다. 한국의 홍혜경과 미국의 제니퍼 라모어가 함께 부른 것도 있으나, 연륜이 깃든 앞의 두 가수의 노래가 화음의 깊이를 더 한다고 느껴서 그것을 선택했다.

신세대는 음이 강렬하고 박자가 급한 댄스곡이나 랩 음악에 익숙한 터지만, 나이 먹은 두 소프라노 가수의 치솟아 오르는 이중창이 영사막 동영상으로 강의실 안에 울려 퍼지자 모두 귀를 쫑긋 모으며 선율 속으로 빨려드는 모양이었다.

나는 이 노래 외에도 서양 고전음악 중에서 여성과 남성의 감정을 실은 노래를 더 들려주었다. 그리스 출신의 나나 무스쿠리가 부르는 마르티니 작곡 ‘사랑의 기쁨’과 세 남성 테너가 부르는 베르디의 아리아 ‘여자의 마음’이다. 남녀의 정서를 담지 않은 곡으로는 당대 최고의 샹송가수 밀레이유 마티유가 힘차게 혀끝을 차며 부르는 혁명 행진곡이자 프랑스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가 있다.

신세대들은 내가 소개한 노래들을 흥미롭게 경청했다. 피아노를 공부한 한 법학과 남학생은 ‘꽃의 이중창’은 곡의 화음으로 인해 절정을 느끼게 만든다고 감상을 말했다. 영어과 여학생은 댄스곡이나 랩 음악은 조만간에 싫증이 나지만 고전음악은 깊이가 있어 물리지 않는다고 했다.

신세대는 우리세대 보다 다양한 소재를 소화할 수 있는 진화한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래를 듣는 시간과 별도로 나는 시를 읽는 시간도 따로 만들었다. 절정(絶頂)의 시를 쓴 민족시인 이육사의 ‘광야’, 세월의 저울로 삶의 무게를 잰다는 김광규의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아일랜드의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지혜는 시간이 되어야 오는 법(The Coming Of Wisdom With Time)’ 등 역사와 세월과 젊음을 노래한 시 몇 편을 돌아가며 읽게 했다.

“무성한 잎사귀와 화려한 꽃을 흔들며 젊음을 구가하던 허위의 삶을 거쳐 이윽고 잎이 이울 때에 너는 비로소 지혜를 얻는다.” 예이츠의 시는 세월의 경구를 담고 있다.

여기에 나는 물의 성질처럼 구름의 마음처럼 ‘수성운심(水性雲心)’으로 방랑한 김삿갓(본명 김병연)의 시 두 수를 더 읽어보게 했다. 그 하나는 남녀의 관계를 읊은 ‘운우지정(雲雨之情)’이다.

“해도 해도 싫지 않아 다시 하고 또 하고 / 안 한다 안 한다 하면서도 다시 하고 또 하고” 원문 한시로 보면 운율이 독특하게 살아난다.

“위위불염경위위 불위불위경위위” / (爲爲不厭更爲爲 不爲不爲更爲爲)

남녀 간의 관계를 읊은 시지만 음란하지 않고 유머러스하다. 남녀의 정은 아무리 해도 끝이 없고 아무리 해도 싫지 않다는 것을 절묘하게 비유했으니 말이다.

김삿갓의 시중에는 기생을 연모하여 지은 것도 있다.

‘이대로 저대로 되어 가는대로’ 방랑하던 김삿갓은 함경도 단천에 잠시 정착하여 서당 훈장을 3년 동안 했는데, 이때 스물세 살인 기생의 딸 가련과 사랑하며 애틋한 연정을 표현하여 ‘기생 가련에게’를 썼다. '가련'을 반복하여 쓴 파격시다.

“가련한 행색의 가련한 몸이/ 가련의 문 앞에 가련을 찾아왔네
가련한 이 내 뜻을 가련에게 전하면/ 가련이가 가련한 마음으로 알아주겠지”

나는 일찌기 조선기녀의 정절과 사랑에 관심이 많았다. 수주 변영로의 ‘논개’는 “아, 강낭콩꽃보다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고 하여 조선기녀의 하늘을 찌르는 절개를 알렸다.

3년 전 개성에 갔을 때, 북한 측 고려박물관 강사 리옥란이 여성의 육체를 비유하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송악산 연봉의 지형이 만들어내는 윤곽은 임신한 여인이 머리를 풀고 누워서 분만하려는 듯한 자세라는 말이다. 그런 송악산 어머니의 정기를 타고났는지, 명기 황진이가 지은 시조는 격조 높은 정화(情火)의 절창이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요컨대, 나는 오래간 만에 신세대 대학생과 어울려 들리브의‘꽃의 이중창’을 듣고 김삿갓의‘위위불염경위위’를 읽으며 구원으로서의 여성 존재를 다시 확인했다. 그리하여 젊으나 늙으나 ‘사랑의 정화’는 상수(常數)라는 것을 그들과 함께 확인했다. 이만하면 세대 교감에 상당한 성과를 올린 강의였다고 자평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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