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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칼럼...어느 고가(古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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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칼럼...어느 고가(古家)
  • 영남방송
  • 승인 2009.04.15 17: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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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어느 고가

정목일
수필가

객지 생활 10여년만에 두메 고향에 돌아와 교편을 잡고 있는 내 벗님에게서 온 편지에는 시골 하늘이 담겨 있다. “보게나, 집 앞 개울가에 줄지어 선 미루나무 잎사귀가 바람과 어떻게 교감하는가”

벗은 시골 고가(古家)에서 바람 소릴 들어 보자고 슬그머니 꾀는 편지를 몇 차례 받아 보았다. 그 은근한 초대,  보이지 않게 손길 내미는 따스한 정에 마음이 동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첩첩산중에서 몇 년간 지내 본 나로서는 이야기를 그리워하는 적적한 내 벗님의 심정을 모르는바 아니었다. 그러나 되풀이 되는 생활속에 마음의 여유를 얻기란 그리 수월하지 않았다.
편지에 쓰인 “여가 있으면 꼭 한번 다녀가라”는 말대로라면, 언제 그런 여가가 있으랴 싶어, 어느 토요일 오후 무작정 준비도 없이 버스를 탔다.

큰 고가였다. 천 평도 더 듬직한 기와집에 들어섰을 때, 이렇게 마음을 평온하게 감싸주는, 한적하고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집이 있을까 감탄했다. 예로부터 민간에 널리 퍼져 오던 택지풍수설에 근거하여 집터를 잡았을 것이란 생각이 담박에 알수 있었다.

풍수지리설에 대해 통 모르긴 하나 아예 아무 가치 없는 이야기는 아닐 거라고 어렴풋이 생각해 오던 터였다. 자연속에 살던 옛 사람들은 자연과 가장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으로 풍수지리설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온 나였다.

집 뒤쪽으로 산을 배경으로 죽림(竹林)을 조성하고,  앞으로 개울이 흐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지관을 불러 집터 주변의 지세를 살펴 지은 집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해가 떠서 질 때까지 마루에 햇살이 비켜나지 않도록 남향으로 집을 지어 집안이 밝고 화기(和氣)에 차도록 했고, 집 뒤로 자리한 나지막한 산은 계절마다 새로운 풍취를 볼 수 있게 했다. 집이 커서 노모와 두 내외, 딸 하나, 이렇게 네 식구가 살기엔 절간처럼 적막하다고 말하는 내 벗님의 표정 속에, 산 넘어가는 노을빛의 그리움이 깃들어 있다.

그러나 반화방(半火防) 담장을 반듯하게 쌓은 천 평쯤 되는 택지의 고가 속, 홀로 적막감을 누리는 내 벗님은 얼마나 행복한가. 이곳에는 평당 얼마씩의 땅 값에 짓눌려 어디라도 좋으니 내 집 한 칸만 가질 수 있다면 다행으로 여기는 현대 도시인들에게는 도저히 상상 할 수 없는 여유가 있었다.

우선 집터를 마련하는 것만도, 지관인 풍수 전문가를 불러 지세와 주변의 풍취를 살펴, 엄밀히 명당 지를 선택하고, 자자손손의 복까지를 생가가하여 지은 이 고가는 무언지 모를 위용과 기품이 있어 보였다. 뜨락도 없이 밀집해 있는 도시의 아파트나 주태에서 호사스런 장식으로 눈길을 끄는 경우는 있어도 내 벗님의 집에서 처럼 마음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은 없다.

아주 텅 빈 것 같으나, 한편으로는 알맞게 들어찬 듯 한 고가의 공간, 닫힌 듯 열려 있는 그 오묘한 조화는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아름다움이다. 대문으로 들어서면 바깥마당이 나오고 사랑채가 있다. 사랑채 쪽으로 가면 문이 나오고 안채로 들어가는 문이 기다린다.

사랑채는 집주인인 양반 어른이 거처하던 곳이자 손님을 접대하는 곳으로, 대청, 뒷마루, 쪽마루, 부엌, 온돌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큰 사랑방에는 족보와 선조 대대로 내려오는 고서와 문집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선비의 집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내 벗님의 고가에서 하룻밤 유숙하면서 집이 거느리고 있는, 공간이라는 보이지 않는 형태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햇빛을 가장 잘 맞아들일 수 있고, 뜨락과 담벼락에 비치는 달빛을 고요로이 바라볼 수 있는 공간, 대청에 앉으면 바람과 가슴을 맞댈 수 있고, 정원의 나무에 새들이 찾아 올 수 있는 공간, 그런 공간을 생각하는 것은 도시인들에게는 하나의 꿈이 아닐 수 없다.

오랜만에 내 벗님과 둘이서 한 이불을 덮고 누워 이야기를 나눈다. 책상 위에 놓인, 겨울이면 홍매(紅梅)를 꺾어 두던 백자 항아리 곁의 은촛대 촛불은 은근한 빛을 뿌려 쉬 잠들 수 없게 만든다.

내 벗님은 집을 팔려고 해도 덩치만 크고 쓸모가없는,  요새와도 같은 이 집을 살 사람이 없어 걱정이라고 했다. 나는 팔아서는 안 되리라고 말해 주었다.

비록 낡고 퇴색된 고가라고는 하나, 이 집만으로도 하나의 고향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 제발 마음의 텃밭을 얼마의 돈으로 팔지 말라고 간청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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