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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칼럼) ㅡ아름다운 간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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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칼럼) ㅡ아름다운 간격
  • 편집부
  • 승인 2009.05.14 1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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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아름다운 간격

정목일
수필가

깊은 산중의 고찰(古刹)에 가 보면, 예전에 없던 건물들이 들어서 있을 때가 있다. 옛것과 새것이 뒤섞이고 건물들의 간격이 좁아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재한된 공간 속에 신축 건물들이 들어서 간격이 맞지 않음을 느낀다.

건물의 배치는 여러 측면을 살폈을 것이다. 건축이나 그림을 그릴때에 적용되는 황금 비례를 염두에 둠은 물론이요, 건물과 건물의 간격, 산세와 주면 경관과의 조화를 우선적으로 고려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산과 사찰, 인간과 자연, 대웅전과 요사(療舍) 등에 사색의 간격이 사라진 것은 아쉽기만 하다.

미국 서부 휴양 도시인 산타바바라에서 본 해안 풍경 중에 기억나는게 있다. 바닷가 식당 지붕에 새들이 앉아 있는 모습이다. 펠리컨, 갈매기, 비둘기 수십 마리가 일직선으로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내가 유심히 본 것은 새들의 간격이었다. 덩치가 큰 펠리컨들이 앉은 간격과 갈매기, 비둘기가 앉은 간격이 몸의 크기와 정확하게 비례하고 있었다. 새들은 약속한 것도 아닌데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여 내려 앉았다.

미국 서부 에리조나 사막들 여행할 때도 비슷한 풍경을 접했다. 바람이 불면 굴러가다가 자리를 잡아 살아가는 사막의 풀이 있었다. '세시부래쉬'란 이름의 이 풀은 바람이 세게 불면 줄기가 부러져 날아가 죽은 듯이 있지만 비가 오면 되살아나 13미터 까지 뿌리를 내린다.

광막한 사막을 차지한 풀들은 바람에 날려가다가 멈춰진 곳에 자리를 잡아 자생하는 것인데도, 마치 사람들이 심어 놓은 것처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모든 생명체는 영역과 간격을 유지하므로 공존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활동 범위가 넓은 야수들은 그만큼 생존 영역이 넓어야 하며, 이 영역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생존 위협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종(種)의 번식을 위해 자기 영역을 지키려는 것은 본능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고속도로 주행 중에 뒤차와 일정한 거리가 유지되지 않으면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안전거리를 지켜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여야 마음이 놓이는 것이다.
이처럼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는 일정한 공간이 필요하고 간격이 있어야 한다. 가로수들도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져 있기에 쾌적감을 갖게 하지 않는가.

인간관계에도 간격이 있어야 한다. 너무 가까운면 싫증이 나게 마련이고, 멀리 있으면 망각하기 쉽다. 이런 면에서 상대방과의 간격 유지는 삶의 슬기가 아닐 수 없다. 간격은 떨어짐의 공허만이 아닌, 서로 간의 깊이와 이해와 자각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어떤 대상이 아름답게 보이는 데는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다. 간격이 없으면 허물도 보이고 취약점도 드러난다. 간격을 없애고 밀착시키면 아름다움은 사라지게 될지 모른다.

이해와 간격, 배려의 간격, 사색의 간격, 사랑의 간격이 필요한 것이다.

날이 저물고 저녁놀이 붉게 타고 있다. 사라지는 저녁놀이 아름다운 것은 하루라는 간격이 있어서일 것이다. 계절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일 년의 간격이 있어서이고, 그대가 그리운 것은 볼 수 없는 거리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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