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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타리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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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타리 전설
  • 박경용 고문
  • 승인 2008.01.09 1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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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국 겸지왕 때의 일이다.

바닷가에 위치한 왕도 김해에는 해선이란 아가씨가 살았다. 그의 어릴 때 이름은 명선이었고 별명으로 마타리라 불리기도 했다.

해선 아가씨의 집안은 대대로 내려오는 연주가 혈통의 집이다. 당대 최고의 금관옥적 주자인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아버지도 금관옥적의 일인자였고 다른 악기인 십현금과 가야금에도 탁월한 재능을 가졌었다.  해선 아가씨 또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가야금 연주자가 되었고 뭇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궁중에서 포상팔국의 난 평정 축하연 등의 여러 행사가 있을 때마다 해선 아가씨는 아버지를 따라 연주 초대를 받곤 했다.

그러던 차 궁중에서 쟁을 연주하는 섬섬이란 도련님을 알게 되었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흠모하는 사이가 되었다.

망해정(지금의 봉황대)에서 만나 사랑을 속삭이고 악기를 연주하며 화음을 맞추어 나갔다. 망해정은 임금님이 사시는 궁궐에서 가까운 서쪽에 자리 잡은 경관이 좋은 봉우리였다.

앞으로는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고 서쪽으로는 임호산, 북으로는 경운산이 그림처럼 아름답게 둘러 싸여 있었다. 그곳에서 둘은 신들린 듯 화음을 맞추어 연주하고 음악이 끝나면 바위 뒤편에 가서 포옹을 하며 뜨겁게 사랑을 불태우는 것이었다.

이렇게 연주와 사랑을 계속하는 가운데 사랑은 익어만 갔고 연주는 신기에 이르게 되었다. 이들의 역량이 소문이 나서 아라가야, 성산가야 등 여러 가야연맹국 뿐만 아니라 중국과 왜국에도 전해졌다.

이로써 가야연맹 각국의 초대와 함께 중국, 왜국에도 초청을 받아 철 수송선을 타고 가서 연주하여 그 나라 왕으로부터 많은 사와 귀한 선물을 받아오기도 했다.

그런데 그 당시 신라의 국경 침입으로 많은 장정이 황산강(낙동강)전투에 나가게 되었다. 섬섬이도 군대에 나가게 되었고 그의 재능을 고려하여 군대의 사기를 높이도록 춤과 노래를 하는 자충(무당)패의 소속이 되어 연주를 하였다.

한편, 해선 아가씨의 연주솜씨와 예쁜 모습에 반한 덕필 장군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황세 장군의 부하장수로서 좌장역할을 하고 있었다. 덕필 장군은 해선 아가씨를 자기 아내로 삼괒 온갖 감언이설과 함께 자수정 목걸이, 귀고리, 팔찌 등 금은 보화를 선물했으나 섬섬이를 향한 해선의 마음은 바위같이 단단하기만 했다.

덕필은 한 가지 묘안을 떠올렸다. 일선 지휘관인 그는 섬섬이를 전사시키기 위해 자충패를 더 위험한 지역으로 가게 하였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섬섬이는 죽지는 않았지만 신라군의 포로가 되었다. 덕필은 섬섬이가 전사하지 않고 포로가 되어 갔다는 보고를 받고 약간은 찜찜하였으나 절반의 성공이라 여기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덕필은 틈을 내어 곧장 해선에게 달려가서 계속 끈질긴 구애를 했다. 그러나 해선은 일편단심으로 섬섬이와 나눈 정분의 고리를 풀지 않은 것이었다. 해선이는 괴로울수록 가야금 연주를 하며 자신의 심정을 달랬다.

그러기를 3년이 흐르는 동안 섬섬이는 소식이 없었고 덕필이도 전장에서 화살이 왼쪽어깨에 명중되어 화살촉에 발린 독이 번져 보름 만에 죽고 말았다. 해선 아가씨는 덕필에게 마음은 허락하지 않았지만 그의 주검 앞에서 혼을 달래는 진혼곡을 연주하여 주었다.

한편, 해선이는 춘하추동 망해정에 올라가 경운산 동북쪽(삼계 쪽)을 바라보며 섬섬이를 기다리다 감기에 걸린 것이 더욱 악화해 중병이 되어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듬해 여름과 가을 사이 가냘프고 키가 큰 해선의 모습을 닮은 꽃이 한 무리 피어났다. 사람들은 해선의 별명을 따서 마타리꽃이라 불렀다.

한편, 천신만고 끝에 신라에서 빠져나온 섬섬이는 고향 김해로 돌아왔으나 해선의 소식을 듣고 비통에 빠졌다. 그는 망해정에 올라 마타리꽃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적셨다.

섬섬이는 해선을 그리워하며 마타리 옆에서 쟁을 연주하곤 했는데 이를 듣는 가야 사람들은 모두가 눈시울을 적셨다고 한다. 섬섬이가 쟁을 연주할 때마다 마타리가 함께 연주하며 화음이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섬섬이는 망해정에서 밤낮으로 연주하였다. 고고하고 우아한 자태의 마타리는 오늘날에도 사랑의 진실과 애절함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김해문협 고문, 국제 펜클럽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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