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매일 PDF 지면보기
과월호 호수이미지
과월호 호수이미지
과월호 호수이미지
과월호 호수이미지
과월호 호수이미지
과월호 호수이미지
최근 김해종합뉴스
행복1%나눔재단 희망캠페인
함께해요 나눔운동
時도 아닌 것이
행복밥집
TV 방송 영상
커뮤니티
다시보는 부끄러운 김해 현장
ㅡ내가 종이책을 좋아하는 이유
상태바
ㅡ내가 종이책을 좋아하는 이유
  • 편집부
  • 승인 2008.05.26 15: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ㅡ내가 종이책을 좋아하는 이유

윤재열
수필가 

  술자리에서 인터넷이 화제에 올랐다. 컴퓨터 관련 분야에 지식이 해박한 후배가 정보를 쏟아낸다. 자신은 요즘 전자 신문을 보는데, 신문 대금을 절약할 수 있어 좋단다. 게다가 전자책은 비싼 책값을 내지 않는 잇점도 있다고 자랑을 한다.

그의 말대로 지금은 ‘e-’세상이다. ‘e-learning’, ‘e-book’, ‘e-news’, ‘e-편한 세상’, ‘e-편한 치과’, ‘e-쁘지오’ 등등 ‘e-’가 넘친다.
직장에서도 문서는 전자 문서로 오고, 회신도 전자 문서로 한다. 은행 업무, 세금 납부, 병원 처방, 학적 기록 등도 인터넷으로 하고 있다.

세상이 변하면 생활 방식이 변하듯 나의 삶의 방식도 이렇게 갈 수밖에 없다. 우체국까지 가서 보내던 원고는 ‘e-mail’로 하고, 은행 업무도 인터넷을 이용한다. 전자시계를 사고, 전자 사전을 본다. 전자저울은 한 치의 오차도 없어 좋다.

동료도 전자 신문을 이야기했지만, 컴퓨터와 친숙하지 않은 나도 인터넷으로 신문을 자주 본다. 그야말로 전자(electronic) 세계에 길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책만은 종이 책이 좋다. 술자리에서 후배는 ‘e-’세상이 편리하고 세련된 것처럼 전자책은 어디서도 즉시 볼 수 있어 편하다고 한다.

휴대할 필요도 없다고 예찬한다. 그런데도 나는 종이 책이 좋다. 서점에 가서 고르는 재미도 있고, 손에 들고 다녀도 전혀 불편하지 않다. 책은 점잖은 자리에 들고 가도 흉이 되지 않는다.
고리타분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전자책은 내 것이라는 만족감이 없다. 인터넷을 타고 불확실한 곳에서 온 매체이기 때문에 언제나 반납해야 한다. 전자책은 컴퓨터를 끄는 순간 소멸해 버리는 일회적인 책이다. 반면 종이 책은 사사로운 정이 묻어 있다. 종이 책은 소유의 개념이 명확하다. 종이 책은 내 것이기 때문에 영원히 소유하는 대상이 된다.

원로 수필가 한 분과 인연이 있다. 문학 관련 세미나에 갔다가 그 분과 인사를 했다. 그 분의 수필은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나는 그 분의 수필을 많이 읽었는데 이런 경험을 말씀 드렸더니 수필집을 주셨다.

헌사까지 써 주셔서 지금도 아끼고 있다. 그런 인연으로 그 분이 다시 전자 수필집을 발간했다고 직접 보내오셨다. 그 순간 처음 받아보는 전자 수필집이고 디자인이 화려해서 컴퓨터에 넣고 몇 번 읽었다.

그런데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 분의 전자책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다. 워낙 얻기 어려운 것이라 소중히 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슬그머니 없어졌다. 내가 버리지는 않았으니 집안 어디에 두고 찾지 못하는 듯하다.

다행히 그 분이 주신 종이 책은 아직도 내 책꽂이에 당당히 모시고 있다. 책은 이미 여러 번 읽었어도 글이 막힐 때는 자주 보면서 손을 떠나지 않는다. 또 수업 시간에 그 분의 수필을 가르칠 때는 아이들에게 이 책을 보여주고 은근히 그 분과의 인연을 자랑한다.

온라인 시장에는 이미 스타 작가가 있다. ‘그 놈은 멋있었다’라는 제목의 소설은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더니 책으로 다시 나오고 판매에서도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판타지 소설, 무협지 등은 네티즌의 반응이 폭발적이다. 그러다보니 유명 작가도 블로그 문학을 선보이고 있다.

이문열, 공지영, 신경숙, 박범신 등의 작가가 온라인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인기를 얻고 있다.
전자책 시장은 현재 전체 출판 시장의 4% 정도로 미미하지만 성장 속도가 빨라 규모도 커질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전자책 서비스 업체도 성업 중이다. 이에 단말기 시장도 덩달아 호황이다. 전자책의 단점이 눈이 부신 모니터 화면이었는데, 눈의 피로를 줄이는 단말기가 보편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술자리에서 후배는 종이 책만 고집하는 사람은 아날로그 세대라고 폄하했다.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고 곰팡스레 여겼다. 후배는 나이를 먹을수록 인터넷과 친한 척이라도 해야 한다며 오히려 내가 굼뜬 것 아니냐며 걱정을 했다.

그래도 나는 아직도 종이 책이 좋다. 종이 책은 오래 소유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전자책은 한 순간 머무는 구름 같다. 종이 책은 살아있는 유기체다. 새 책은 새 책 대로 즐거움을 주지만 헌 책은 헌 책 대로 주인과 동고동락한다. 새 책이 이제 막 사귄 젊은 친구라면 헌 책은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식구다.

이사할 때도 늘 따라다니는 것이 책이다. 조그만 집이라도 책장은 늘 있고 그 곳에 책이 있다. 책이 장식품은 아니지만, 가구와 전자 제품만 있는 집은 삭막하기 그지없다. 아파트를 짓고 마지막 조경 공사를 하듯, 책은 집안에 나무 같은 존재이다.

논밭이 우리 먹을거리의 기반인 줄 알면서도 점점 없애고 있는 것처럼, ‘e-’세상이 진행되면 종이 책이 없어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부러 논밭을 버리지 않고 사는 것처럼 나는 영원히 종이 책을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개발 논리에 밀려 토지를 강제 수용 당하면 슬픔을 안고 고향을 떠나는 듯 시대가 전자책을 선택하면 모를까 내가 종이 책을 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