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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를 대표하는 9길(걷고 싶은 길)- 2길 허왕후 신행길 Forever Romance Road(48.3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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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를 대표하는 9길(걷고 싶은 길)- 2길 허왕후 신행길 Forever Romance Road(48.3km)
  • 특별 취재팀
  • 승인 2015.08.12 1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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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품관광도시 김해`
 `김해를 대표하는 9경(볼거리), 9미(먹을거리),
 `9품(살거리), 9길(걷고 싶은 길)을 소개합니다.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許黃玉) 이야기

“저는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許黃玉)이라고 합니다. 부모님이 꿈에서 ‘가락국왕 김수로는 하늘에서 내려 왕위에 올랐다.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했으니 공주를 보내라’는 상제님의 전언을 받았습니다. 말씀을 받자와 가락국으로 향했으나 수신(水神)이 노해 뱃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석탑을 싣고서야 무사히 여기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A.D 46년, 지금으로부터 2000여년 전 이역만리 타국에서 붉은 깃발 배를 타고 온 여인의 말이다. 그녀의 이름은 허황옥,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금관가야(김해)의 시조 김수로왕은 인도의 공주 허황옥과 혼례를 올린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내용이다. 아유타국이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지금껏 말이 많다. 누군가는 인도 갠지스강 상류의 아요디아라고 했고 어떤 이는 태국 메남강 주변의 아유티아라고 주장했다. 또 황옥공주의 시호인 ‘보주태후’ 덕분에 중국 사천성 가릉강 유역 ‘보주’의 소수민족 출신이라는 설도 있다.

망산도 이야기

 

   
 
  ▲ 망산도.  
 

황옥공주와 수로왕의 러브스토리가 시작되는 곳은 진해시 용원동 앞 바다의 망산도다.

이름부터 ‘기다림’을 품고 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를 살펴보자. 왕이 된지 7년이 넘도록 혼자인 수로왕은 혼인하라는 신하들의 청에 “하늘이 보내줄 것”이라며 유천간을 작은섬으로 보낸다. 지금의 망산도이다. 그리고 어느 날 정말로 허황옥 일행이 탄 배가 붉은 돛과 기를 달고 나타난다 그리고 마침내 허황옥 공주와 수로왕은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유주암 이야기

이때 황옥공주가 타고 온 돌배가 뒤집혀 유주암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망산도에서 멀지 않은 바다에 자리한 바위다.

망산도는 거북이 등짝같이 갈라진 바위들로 가득한데 이 역시 한반도에서는 흔치 않은 것이라 한다.

유주비 이야기

 

   
 
  ▲ 유주비.  
 

유주암과 멀지 않은 곳에 유주비각과 유주비가 자리하고 있다. <삼국유사> 기록을 바탕으로 세운 유주비는 1908년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대가락국 태조왕비 보주태후 허씨유주지지’라고 새겨진 문구가 이곳을 통해 허왕후가 가야로 들어와 수로왕을 만났음을 전한다. 아쉽지만 유주비각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흥국사 이야기

 

   
 
  ▲ 흥국사.  
 

만났으니 혼례를 올려야 했을터다. 혼례를 올리고 첫날밤을 치르며 세기의 로맨스를 완성(?)한 공간이 바로 흥국사다. 부산 명월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수로왕이 왕후 허황옥의 아름다움을 달에 비유해 이곳을 ‘명월산’이라 이름 했다고 전해진다.

“수로왕은 이곳 명월산 흥국사에서 허황옥과 혼례를 치르고 환궁했습니다. 한반도 최초의 국제 결혼식이 열린 장소이지요. 흥국사에 남아있는 사왕석을 보더라도 이곳에 인도의 영향이 끼쳐졌다는 걸 알수 있어요. 두 마리 뱀이 부처를 호위하고 있는 문양, 한국에서는 거의 볼 수 없지요.”

수로왕릉과 수로왕비릉 이야기

백여년 동안 금슬좋은 부부로 해로했던 수로왕과 허왕후는이승의 연을 다하고 수로왕릉에 잠들어있다. ‘납릉’이라고도 불리는 이곳, 수로왕릉 정문에는 인도에서 흔한 쌍어문양이 새겨져 있다. 수로왕비 허황옥이 인도 아유타국에서 왔다는 <삼국유사> 기록을 상기시킨다.

금술 좋았다고 전해지는 수로왕비릉은 약간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 부분을 두고 학자들은 “수로왕과 허황옥은 각자 독자적인 정치 구역이 있었을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단다. 황옥공주가 그저 단순한 왕의 비(妃)가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구지봉 이야기

 

   
 
  ▲ 구지봉.  
 

수로왕의 탄생설화를 전하는 구지봉은 수로왕비릉 자락에 있다. 거북이 머리를 닮았다고 ‘구수봉’이라고도 부른다. 야트마한 언덕이지만 구지봉 자락은 가야의 건국설화를 품은 곳이다.

인도의 공주 허황옥과 가야의 태조 김수로의 세기적 로맨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늘이 맺어준 그들의 사랑이야기는 아름다운 별이 되어 21세기의 김해를 비추며 김해를 사랑과 낭만이 넘치는 로맨스의 도시로 만들어 내고 있다.

비밀의 문 허왕후를 찾아서

허왕후의 출신지 못지않게 흥미로운 대목이 허왕후 초행길(신행길)이다. ‘삼국유사’에는 허왕후가 가락국에 도착, 수로왕과 혼인하기까지의 ‘신행루트’가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드디어 유천간을 시켜 날랜 배를 몰고 준마를 끌고 가 망산도(望山島)에서 기다리게 하고 신귀간에게 분부하여 승점(乘岾)으로 가게 했다…’.

수로왕이 허왕후가 온다는 것을 미리 알고 맞을 채비를 하는 모습이다. 결혼담에 나오는 지명을 둘러싼 논란도 만만치 않다.

우선 망산도에 대해서는 진해시 용원의 욕망산이라는 견해(허명철), 김해시 풍류동·명법동에 걸쳐 있는 칠산(七山)이라는 견해(김태식), 김해시내의 전산(田山)이라는 견해(황규성) 등이 맞서 있다. 전설로는 진해시 용원동 해안의 돌무더기인 ‘망산도’(비석도 있음)가 그럴듯하나 가락국의 궁성(김해 봉황대)에서 너무 멀다.

허왕후가 처음 배를 댔다는 주포(主浦)도 아리송하다. 강서구 녹산동과 경계인 진해시 웅동2동 가주마을 주포(主浦)는 지금도 임이 내린 갯가라 해서 ‘임개’라 불리고 있지만 정확한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일부 학자들은 주포가 지금의 강서구 녹산동 상곡마을, 옛 장락나루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허왕후가 비단바지를 벗어 던졌다는 능현(비단고개), 그의 배가 처음 발견됐다는 기출변(旗出邊), 수로왕과 첫밤을 지낸 명월산 등도 제대로 규명되지 않고 있다.

김해시는 얼마전 ‘허왕후 초행길’을 역사체험 코스로 삼기 위해 전문가들을 불러 회의를 열었으나 코스가 3~4개로 엇갈려 코스정립 작업을 포기했다.

코스가 경남 진해시, 김해시, 부산 강서구에 겹쳐 있는 것도 문제점이다.

전문가들은 “설화는 역사적 사실 여부를 명확히 규명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해석 자체가 의미를 갖는다”며 “허왕후 설화도 역사적 상상력을 확장하는 차원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허왕후 설화는 신라 문무왕대나 고려 문종 연간에 종래의 전승을 토대로 불교적으로 윤색됐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으나 지명과 신화, 전설, 민속학적 풍습 등 다양한 내용이 숨어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

허왕후 일행이 풍랑방지를 위해 싣고 왔다는 파사석탑과 왕후사(452년) 건립 등은 남방불교 전래라는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고려시대 때 김해 일원에서는 ‘매년 음력 7월29일 승점으로 올라가 장막을 설치하고 가무를 즐기면서 편을 나눠 망산도를 기점으로 말은 육지로 달리고 배는 북으로 옛 포구를 향해 달리는 놀이가 성행했다’는 기록도 있다. 허왕후 도래를 기념한 이 놀이는 매년 봄 김해 가락문화제에서 재현되기도 한다.

가야사누리길의 김수로왕과 허왕후

 

 
   

얼추 2000년 전쯤이다. 인도 아유타국(아요디아)의 공주가 극동의 작은 나라 가락국을 찾아 긴 항해를 시작한다.

하늘이 정해준 피앙세, 김수로왕을 찾아 나선 길이다. 공주의 이름은 허황옥. 16세(추정) 가녀린 소녀가 벌인 대항해의 여정은 삼국유사 ‘가락국기’편을 통해 조금씩 세상에 알려졌다.

신화와 역사가 뒤섞인 소녀의 여정이 이제 테마길로 태어날 예정이다.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알알이 맺힌 ‘허황옥 신행길’이다.

어느 날 허황옥의 아버지, 그러니까 인도 아유타국의 왕이 꿈을 꾼다. 천제가 나타나 배를 타고 동쪽 끝까지 올라가 닿는 나라에 딸의 배필이 있다고 알려준다. 왕은 곧바로 허황옥을 배에 태워 보낸다. 서기 48년께 일이다. 이때 동행하는 인물이 오라버니 장유화상이다.

이때부터 16세 소녀의 대항해가 시작된다. 허황옥은 ‘돌배’ 위에 파도를 잠재운다는 ‘파사석’을 싣고 가락국으로 향한다. 같은 시기, 가락국의 왕 김수로도 비슷한 꿈을 꾼다. 수로왕은 꿈에서 자신의 배필이 멀리서 배를 타고 올 것이라는 천제의 가르침을 듣는다.

수로왕은 신하 유천간을 망산도로 보내 피앙세를 맞는 한편, 자신은 명월사 인근에 행궁을 차리고 허황옥 일행을 기다린다. 그 명월사가 있던 곳이 현 명월산 자락의 흥국사(명월사 터가 따로 있다는 주장도 있다)다.

그리고 마침내 둘은 이곳에서 첫날밤을 보낸다. 이때 수로왕의 나이 6세. 무려 2000년 가까이 앞서 요즘 ‘대세’라는 연상녀 연하남 커플이 탄생한 셈이다.

수로왕과 허황옥은 10명의 아들과 2명의 딸을 낳는다. 이 가운데 첫째 아들은 2대 거등왕에 오르고 둘째와 셋째는 허왕후의 요청에 따라 김해 허씨의 시조가 된다.

여태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가 결혼을 하지 않는 건 이 때문이다. 나머지 7명의 아들은 장유화상을 따라 승려가 된다. 그곳이 바로 경남 하동의 지리산 자락에 있는 칠불사다. 두 딸 중 첫째는 신라 석씨 왕의 시조가 되고 둘째 딸은 일본국 초대 천황의 모후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신어'는 가야의 표식, 남·북방 만남상징 '쌍어'

"김해시 삼방동 은하사 대웅전 대들보에 그려져 있는 신어는 380여 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상당히 탈색됐으나 아직까지 또렷하게 볼 수 있다.

사찰이 지어질 때부터 존재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불탄 절을 조선 후기에 중건하면서 대들보에 그린 것을 감안하면 절 창건 당시에도 신어가 현재의 자리에 있었을 것이란 사실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절 중건 때 대웅전의 방향과 대들보의 신어 등과 같은 것을 고증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설치하고 그리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머리는 용이고 몸통은 물고기인 신어는 가야의 표식이라 할 수 있다. 이 신어가 산의 이름도 바꿨다.

소금강산, 은하산으로 불리던 이 산이 신어산이라는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바로 이 신어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특히 가야의 상징이랄 수도 있는 신어가 은하사 대들보에 그려진 것은 가야 건국에서 은하사가 빼놓을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지금도 안개 낀 신어산에 올라 아래를 굽어보면 눈 아래 펼쳐진 기암괴석이 마치 신어가 헤엄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김해시 삼방동 은하사 대웅전 불단인 수미단에 새겨진 쌍어.

은하사 대웅전의 불단(佛壇)인 수미단에는 가야와 인도, 북방민족과 남방민족의 만남을 상징하는 쌍어(雙魚)가 새겨져 있다.

수로왕릉의 정문에도 물고기 두 마리가 마주보고 있는 쌍어가 발견된다. 인도의 아유디아국이 있던 아유디아읍에도 쌍어문이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도에서 발견되는 쌍어가 가야 수로왕릉과 은하사에도 있다는 것은 허왕후가 인도 아유타국에서 왔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 말한다.

수로왕과 허왕후의 만남, 장유화상의 은하사 창건 등은 역사서에 아주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가야의 중요 유적 곳곳에 새겨진 쌍어만 보더라도 수로왕과 허왕후의 만남, 가야 번창, 은하사 등 가야 초기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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