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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시리즈<13>“50만 김해 - 근대50년” 역사 문화의 보고 김해자랑 주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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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시리즈<13>“50만 김해 - 근대50년” 역사 문화의 보고 김해자랑 주촌면
  • 조유식취재본부장
  • 승인 2012.02.01 12: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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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는 경상남도 2011년 지역신문발전지원 자유공모사업에 선정된 영남매일이 위 기금으로 취재하여 보도하였다.

김해시 17개 읍면 중 가장 많은 고분군과 문화유적이 산재해 있다.
1905년 주동, 주서 2개 면으로 분리됐다가 1910년 합병, 주촌면 탄생

인구 12만 전국최대 면 지역인 장유신도시와 인구 8만여 명인 내외동 신도시 사이에 있는 인구 4천여 명의 작은 도시 주촌(酒村)면, 8개리 23개 마을 29개 반 1,870여 세대가 터를 잡고 주촌을 지키고 있다.

1천여 개소의 제조 기업과 250개소의 도.소매업체가 주촌 경제를 움직이고 있다.

   
 
  ▲ 주촌면 농협에서 바라본 택지조성 지역. 주촌고개까지 도로확장 공사가 한창이다.  
 

남쪽에 남해고속도로 서김해 IC가 있고, 국도 14호선 대체 우회도로 개설과 국도 58호 우회도로(계획) 등의 도로망이 확충되어 가고 있어 교통의 요충지이며 김해시 도로망의 중심축에 자리 잡고 있다.

주촌면(면장 박효수)은 전통적인 쌀농사와 함께 시설화훼, 단감, 부추 등 고소득 작물을 재배하는 농가가 많으며 최근 수년간 많은 제조공장이 입주해 가동되는 등 지리적으로 좋은 여건을 갖추어 산업단지 조성과 택지개발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거나 계획 중에 있어 향후 급격한 도시화가 형성될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주촌면은 양동리 고분군, 양동산성, 천년고찰 선지사, 천곡리 이팝나무 그리고 수많은 고분군과 지석묘, 패총 등 역사 문화 유적들이 산재해 있으며 양동리 고분출토 유물은 고대 김해지역에 자리 잡았던 가야 사회의 '국가적 성격'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며 대성동 고분 출토 유물들과 함께 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복원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름깨나 있는 골프인들은 다 주촌면 소재 정산 컨트리클럽을 찾고 있고, 전국 축산 농업인들 또한 부경양돈농협이 직영하고 있는 부경축산물 공판장을 찾고 있다.

하루 도축능력 돼지 2,000두, 소 300두와 가공능력 돼지 400두, 소 40두의 첨단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보니 전국의 축산농들이 이곳 주촌 축산공판장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주촌면은 특이하게도 축산공판장, 화장장, 추모공원, 고분군, 첨단산업단지, 위락 시설인 골프장을 두루 갖추고 있는 김해 유일 복합 도시이다.

30여 년 전만 해도 주촌 막걸리가 유명했으며 비포장도로 주촌 고개를 넘어다니던 학창시절 추억을 간직한 주촌 출신 청소년들이 지금은 중년 이상이 다 되었다.

비만 오면 동신마다리가 다니질 않았으며 흐린 날 어쩌다 한 번 버스가 운행하는 날은 버스바닥과 바퀴에 흙 범벅이 되어 한때 ‘주촌 차차 촌 차차’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의리 있고 인정이 많았던 주촌 면민들도 지난해 구제역 파동으로 어쩔 수 없이 축산농민들과 이견을 보이기도 했었다.

수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택지개발조성공사가 주촌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지만, 산업단지 유치로 새로운 도약을 하고 있다.

주촌(酒村) 지명의 유래에 대해선 논란이 많았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주지봉(住持峯) 또는 주주봉(酒主峯) 아래의 마을, 혹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는 과거에 번성한 포구였던 선지리의 배가 정박하는 곳이었던 '주촌지(酒村池)'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하다.

풍수지리설도 한 몫 한다. '옥 술잔'형의 명당이 있다는 기록이 여러 풍수지리 관련 문헌에 나온다.

가장 주목할 만한 사실은 최근(2003년) '김해향토문화연구소'와 '옥주문화연구회'에서 발굴한 1800년 초기의 옛 '김해부지도'이다.

이 지도에는 주촌이 '사람이 살기 좋은 마을'이란 뜻의 '住村'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지도를 볼 때 주촌이란 지명은 일반적인 의미의 '술(酒)'과는 차원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수백 년 전까지 번성했던 선지 포구는 당연히 요즘의 유흥가 즉, 주막거리(酒村)가 형성이 되었을 것이고 그래서 주촌지(酒村池)로 불렀을 것이다.(주촌지의 현 위치는 선지 들판 한가운데에서 동남쪽에서 200~300M 내려간 지점인데 현재도 노인들은 이 지점을 '선창거리'라고 부른다) 그렇게 볼 때 '주촌지(酒村池)' 정면에서 바라보이는 산이기 때문에 주주봉(酒主峰)이 된다.

농소리(農所里)는 주촌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한다. 옛날 농사짓는 농소가 있었다고 농소리이며 농소란 옛날 세력가들의 농장이다. 내삼천 하류와 조만강 사이에 형성된 삼각주와 남향의 아늑한 구릉지에 이루어진 마을로써 농소(農所), 사덕(砂德) 2개 마을이 있다.

사덕은 내삼천 하류의 모래등 위에 새로 생긴 마을이며 주촌의 끝 마을이다. 농소마을 뒤 편 야산 조만 강가 쪽엔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쌓았다는 농소 왜성의 흔적이 있다. 이 지역은 고대로부터 수로 교통, 전략의 요충지이기 때문에 가락국시대 때부터 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일대의 패총들과 주변지역에 분포하는 여러 유적이 그것을 말해준다.

농소리는 땅이 기름지고 들이 평탄하여 농사짓기에 아주 적합한 지역이다. 1982~1984에는 기계화 영농부문에 모범마을로 총리상을 받기도 했다. 남해고속도로 서김해 나들목과 인접하고 있다.

원지리(元支里), 대리(大里), 석칠(石七), 국계(菊溪), 내연(內蓮) 4개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대리는 옛날에 부자들이 많이 사는 큰 동네였다고 하며 북쪽에 대리 골(언각골), 동쪽에 고래새 저수지가 있다.

그 옆 야산에는 가락국시대 고분이 밀집한 원지리(대리) 고분군이 있다. 석칠은 마을 앞들에 일곱 개의 큰 돌(고인돌)이 있다 하여 생긴 이름이고 국계는 시냇가에 들국화가 많다 하여 생긴 이름이며 이 세사효각이 있다. 내연은 안연말, 즉 천곡리 연지(연말)마을 안쪽에 있다고 해서 내연이다.

덕암리(德岩里)는 선지리와 원지리 북서쪽에 위치한 덕암(德岩), 용곡(龍谷), 옥천(玉泉) 3개 마을과 옥천마을에 속하는 점골을 말하며 최근 덕암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많은 기업체가 들어서 있다. 덕암이라는 이름은 임진왜란 때 흥해 최씨 형제가 피난 와 살면서 후진을 가르쳤다고 하며 뒷산의 바위를 형제바위(덕바위), 동네를 덕암촌으로 부른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용곡마을은 두 청룡봉 사이에 있는 마을이라서 용곡이다. 절골이라 불리는 마을 뒷산에 덕운사가 있다. 옥천은 마을 뒷산 계곡 이름이 옥계인데, 옥계 맑은 물이 흐른다고 옥수골, 즉 옥천이다.

천곡리(泉谷里)는 지리적으로 주촌면의 중간지점에 위치하며 천곡(泉谷), 연지(蓮旨), 용덕(龍德) 3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재 주촌면의 행정 중심 마을이다.(면사무소, 파출소, 우체국, 농협 등 소재) 천곡은 뒷산에 샘이 많다고 해서 새미실 즉 천곡이다.

천연기념물 제307호로 지정된 이팝나무와 가락국시대에 쌓은 것으로 알려진 천곡 산성이 있다. 연지마을은 청동기 시대의 무덤인 대형 고인돌이 남아있는 것으로 봐서 가락국시대 이전부터 생겨난 아주 오래된 마을임을 알 수 있다. 마을 뒤 골짜기를 불당골이라고 한다.

용덕은 용산과 덕교마을을 합하여 생겨난 이름인데, 선지 쪽에서 보면 산세가 용을 닮았으며, 덕교는 마을 앞길이 조선 시대의 국도인 자연 도였는데 흥동 쪽과 주촌을 연결하는 돌다리의 이름이 덕교(德橋)였다. 덕교가 덕다리 - 떳다리로 변하여 재미있는 전설까지 생겨난 듯하다. 지금도 덕교 자리엔 돌다리 기둥과 난간들이 물속에 잠겨있다.

양동리(良洞里)는 가장 서쪽에 위치한다. 양동(良洞), 신전(新田), 가곡(歌谷)마을로 구성되며, 502전경부대가 위치한 냉정마을로 양동리에 속했는데 몇 년 전 행정구역개편으로 장유면으로 편입되었다.

양동리에는 양동산성, 양동리 고분군을 비롯한 역사, 문화유산이 많으며 특히 양동리 고분출토 유물은 고대 김해지역에 자리 잡았던 가야사회의 '국가적 성격'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며, 대성동 고분 출토 유물들과 함께 가야역사와 문화를 복원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2004년 7월 23일부로 양동리 고분군은 국가사적 제454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앞으로 가야문화권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양동리 고분정비 사업이 완료되면 대성동 고분유적지와 함께 명실상부한 한국 최고의 고분유적지로 거듭날 것이다. 양동리는 원래 사양곡 또는 노래실 이라고 하여 가곡리였는데 조선 후기 철종 때 양동(어진마을)으로 고쳤다고 한다.

내삼리(內三里)는 내삼(內三), 원당(院塘) 2개 마을과 원당에 속하는 자현을 말하며, 주촌초등학교가 위치한다. 내삼 마을은 옛날에 삼내(三川)라고 했으며, 내삼과 덕암 그리고 진례면의 경계에 있는 우리 지역에서 가장 높은 봉인 황새 봉에서 부터 지역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주지봉(주주봉) 자락까지 면적도 가장 넓고 인구도 가장 많다.

가락국시대에 임금님께 진상하던 쌀을 생산하던 현곡전이 있었으며, 조선조 인조반정의 주역 김자점에 관한 설화가 있는 내삼 연못이 학교 앞에 있는데 인조실록에 김자점의 손자 세룡(인조임금의 부마)과 인조의 외딸인 효명옹주(김자점의 손부)의 전장(농장, 별장)이 김해부에 있었는데 주민들에게 민폐를 많이 끼쳐 원성이 자자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내삼마을 안쪽 황새봉 자락 깊은 골엔 아름다운 폭포가 있는데 높이 30m가량의 2단 폭포이며 숲이 울창해 항상 수량이 일정하다. 김해읍지에 능동폭포, 삼계폭포, 내삼(三川)폭포가 함께 기록되어 있다.

선지리(仙池里) 내외동에서 넘어오는 주촌의 관문으로 선지못을 중심으로 동선(東仙),서선(西仙),내선(內仙) 3개 마을로 이루어지며 주동초등학교, 선지사 등이 소재한다.

수백 년 전까지는 번성한 포구였다고 한다. '주동초등학교'의 '주동'은 주지봉(주주봉) 동쪽이라는 뜻이며, 100여 년 전 구한말의 선지, 원지, 덕암, 천곡 4개리의 행정명칭이 '주동면'이었다.

그래서 "주동초등학교"라고 한다. 선지사 출토 명문 기와 편에 새겨진 "仙地寺"란 글을 볼 때 선지란 지명은 천 년 이상 된 아주 오래된 지명임을 알 수 있다. 현재 계획 중인 도시개발 사업이 완료되면 과거에 번성했던 선지리는 천 년의 시공을 건너 다시 한 번 지역의 상업과 물류의 중심지가 될 것이다.

   
 
  ▲ 선지사 목조 아미타 여래 좌상.  
 

망덕리(望德里)는 내삼리 원당마을 자현과, 장유면 유하리 후포마을, 농소리와 경계하고 있으며 처음엔 신답리 였다가 1914년 신답, 신기를 합하여 망덕리가 되었다. 현재 망덕(望德), 신답(新畓), 신기(新基) 3개 마을로 형성되어 있으며 옛날엔 남해의 바닷물이 조만강을 거슬러 마을 앞까지 올라왔다고 한다. 내삼천에서 흙, 모래 등이 떠 내려와 쌓이고 싸여 새로운 논을 형성하였다 하여 신답이라고 하고 들판 한가운데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새 각단 즉 신기마을이라고 하는데 조선 후기 고종임금 때 김해 김씨들이 옮겨와 정착하고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넓고 기름진 망덕리 들판에서는 각종 고등 채류와 품질 좋은 쌀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

 

 

내외동 칠산 서부동 장유면이 가지고 있지 않은 다양한 시설과 문화유적, 산업단지 등으로 특색 있는 도시 주목받는 주촌면으로 변신할 날도 그리 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양동리 제304호분 출토 소뿔모양 토기.  
 

양동리 제304호분 출토 소뿔모양 토기

- 분  류 : 양동리 고분군 - 소재지 : 주촌면 양동리 산 3번지 - 시  대 : 고대 가야사회 
동물 뿔 모양의 유물들은 북방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명멸한
여러 기마민족들(스키카이,흉노,부여 등)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렇게 볼 때 고대 가야사회 지배계층의
근원을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다.
  양동리 제78호분 출토 소용돌이 문양 장식 판갑옷

- 분  류 : 양동리 고분군 - 소재지 : 주촌면 양동리 산3번지 - 시  대 : 가야시대(4세기경) 
소용돌이 문양 장식 판갑옷은 얇은 철판을 못으로 결합시켜 만든
가야시대(4세기경) 무사들의 갑옷으로 당시의 철기제작 기술과
문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유물로서 가야의 국력을 상징적으로

   
 
  ▲ 양동리 제78호분 출토 소용돌이 문양 장식 판갑옷.  
 


보여주고 있다.

  양동리 제215호분 출토 옥목걸이

- 분  류 : 양동리 고분군 - 소재지 : 주촌면 양동리 산3번지 - 시  대 : 삼한 및 삼국시대 
북방계통의 민족들은 전통적으로 금제품의 장신구들을 애용했고,
남방계통은 옥제품의 장신구들을 많이 사용했는데 양동리 고분에서 출토된
뛰어난 옥제품 장신구들을 볼 때 당시의 가야사회가 북방의 문화와 남방의
해양문화가 조화를 이룬 국제적인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선지사 목조 아미타 여래 좌상

- 분  류 : 도지정 문화재자료 제330호 - 소재지 : 주촌면 선지리 501번지 선지사 - 시  대 : 선조33년(1605년) 
여래의 좌상으로 최근에 개금하였으며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불상 내부에서 나온 복장 유물로 보아 선조33년(1605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 양동리 제215호분 출토 옥목걸이.  
 

불상의 앉은 키는 51cm이며 내부에서 발견된 복장 유물은 범자 기원문 2매, 조성기 1매, 경문 1매인데 조성기에는 해서체로 조성연대와 시주자, 회원등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주촌면 천곡리 이팝나무

- 분  류 : 천연기념물 제307호 - 소재지 : 주촌면 천곡리 895-3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서 꽃이 피면 쌀밥을 담아 놓은 것 같다고 하여 이팝나무라고 한다. 수령 약 500년으로 높이 17m, 지면부의 둘레 6.9m로서 지상 1m 높이에서 2개로 갈라지고 가슴높이 둘레는 동쪽의 것이 4.2m, 서쪽의 것이 3.5m로서 매년 5월중순에서 5월 하순에 걸쳐 꽃이 핀다. 꽃이 만발하면 풍년이 든다는 전설이 있어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지역민들이 무척이나 좋아하고 아끼며 또한 신성시 하는 나무이다. 

양동 산성

- 분  류 : 도지정기념물 제91호 - 소재지 : 주촌면 양동리 산 39-1 - 시  대 : 가야시대  - 규  격 : 둘레 800m, 높이 2.5m, 두께 5m  양동리와 내삼리의 경계에 위치한 해발 331m의 산봉우리를 두른 테뫼식 산성으로 일부는 흙으로 쌓고 일부는 대강 다듬은 할석으로 쌓았으며 마을이름을 따라 양동산성, 내삼성이라고도 불리고 가곡산성이라고도 한다. 가야시대에 쌓여서 계속 수리되어 사용된 듯 하며, 둘레 약 800m이고 성벽 높이는 2.5m에 두께 5m로 협 축하였던 부분이 허물어진 모습을 보여준다. 남쪽과 북쪽의 문터에는 초석이 남아 있으며, 성 안에는 우물터의 흔적도 남아 있다. 
20 농악회(회장 조명자)
19 자율방범대(회장 이경우)
18 여성소방대(회장 박계남)
17 의용소방대(회장 신오철)
16 청소년지도위원회(회장 이만기)
15 기업체협의회(회장 주보원)
14 청년회특우회(회장 이상학)
13 청년회(회장 강영수)
12 노인회(회장 최조원)
11 새마을문고회(회장 김홍민)


10 생활개선회(회장 최종순)
9 자원봉사회(회장 박정순)
8 농업경영인회(회장 박성복)
7 농촌지도자회(회장 강만용)
6 바르게살기협의회(회장 박인찬)
5 자연보호협의회(회장 신성철)
4 새마을부녀회(회장 권순임)
3 새마을협의회(회장 박기원)
2 번영회(회장 박기원)
1 주민자치위원회(회장 박기원)


동선 이장 이영우
서선 이장 박상윤
내선 이장 정정섭
대리 이장 최성대
석칠 이장 최성태
국계 이장 박덕윤
내연 이장 이상홍
용곡 이장 김성만
덕암 이장 최진권
옥천 이장 김정부

연지 이장 이학윤
천곡 이장 강상문
용덕 이장 김인석
내삼 이장 주세규
원당 이장 조무현
가곡 이장 정몽기
양동 이장 정광조
신전 이장 정일영
신기 이장 조창제
망덕 이장 권순호

신답 이장 최종화
농소 이장 장기대
사덕 이장 박수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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