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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식의 허튼소리- 신발공장 국제상사 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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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식의 허튼소리- 신발공장 국제상사 취업
  • 경상도 촌놈 조유식
  • 승인 2014.12.02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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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학력 무학으로 기자가 되기까지<31>

아는 후배의 추천으로 부산시 사상에 있는 신발제조 공장인 국제상사에 취업을 했다. 필자에게 주어진 업무는 제5사업부의 알루미늄으로 된 신발 금형을 실어 나르는 일이었다.

한 라인별로 50여 명의 여사원들이 둘러앉아 수작업으로 신발을 만들어 검사를 거쳐 포장까지 마무리하는데 이런 라인이 10개나 되었다. 신발을 만드는 500여 명의 여사원들과 검사원 조장 준비팀의 남자들까지 약 6백여 명이 한 층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제일 앞줄의 사원들이 신발 모양의 금형에 운동화 윗부분을 씌워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면 차례대로 운동화 끈을 끼우는 사람, 본드 칠을 하는 사람, 밑창을 붙이는 사람, 바느질을 하는 사람, 깔창을 붙이는 사람 순으로 한 라인을 빙 돌고 나면 운동화 한 켤레가 완성되어 나온다.

필자가 하는 일은 이 라인 가장 앞줄에 생산운동화 문수에 맞는 금형을 짝수와 숫자를 맞춰 싣고 와서 라인위에 올려놓는 것부터 사용된 금형을 제자리에 다시 가져다 놓는 것 까지였다.

매일 금형 창고에서 제법 무거운 금형 수천 개를 실었다 내렸다를 반복하다 보니 힘도 들고 허리가 많이 아프기도 했지만 참고 이겨내야만 했다. 발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가장 힘들 때는 회사에서 한 달에 한 번 상금 30만 원을 걸어 두고 라인별로 경쟁을 시키는 날이었다.

10개 라인별로 가장 많은 운동화를 생산하는 라인에 시상금 30만 원을 주었다. 여공들이 이 상금을 받기 위해 죽기 살기로 운동화를 만들어 1등을 하면 그 돈으로 회식을 하기도 했다.

평소 라인별로 7~8백 켤레를 생산했는데 이처럼 시상금이 걸리는 날은 1000켤레를 만들어 내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준비를 해주어야 하는 남자들은 한마디로 죽을 맛이었다.

참으로 어리석고 착한 아가씨들이 회사의 꼼수를 눈치 채지 못하고 상금에 눈이 멀어 자기들 스스로 1000족의 운동화를 생산하는 기록을 세우는 바람에 그다음 날부터 전 라인의 생산 목표량이 1000족으로 늘어났다.

이처럼 교묘한 방법으로 필자가 근무한 6개월 동안 라인별 목표량이 1400족까지 늘어났다. 따지는 사람도 없고 물어보는 사람도 없으며 힘들다고 투정부리는 사람도 없다.

불평을 하는 순간 자동해고를 당하기도 하고 건달 출신들에게 완장을 채워 반장이라는 직책을 주어 여공들을 관리하게 했기 때문에 회사를 다니기 위해서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 참아내야 했다.

사원의 권리도 인권도 없는 무법천지가 되어 사람들을 노예처럼 부리고 일을 시키기도 했다. 하루 목표량을 채우지 못하면 목표량을 채울 때까지 퇴근을 시키지 않고 잔업을 시키기도 했지만 연장근무 수당은 없었다.

작업을 하다가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반장이라는 건달이 그 자리에서 무자비하게 폭력을 행사하여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회사의 잘못으로 운동화를 만드는 재료가 떨어져 생산라인이 스톱되었는데도 욕설과 폭력은 여공들에게 돌아온다.

하루는 생산과장이라는 인간이 중단된 라인의 조장 아가씨를 불러 세워놓고 양쪽 뺨을 수차례 때리며 쌍욕을 퍼붓는 것이다. 500여 명의 동료 여사원들이 쳐다보고 있었고 아가씨가 코피를 흘리며 울고 있었지만 생산과장의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보다 못한 필자가 생산과장에게 달려가 멱살을 잡고 머리로 생산과장 얼굴을 들이받았다.

필자로부터 박치기를 당한 과장이 바닥에 넘어지자 또다시 발로 걷어차며 "너거가 잘못해 놓고 와 죄 없는 조장한테 화풀이 하노"라며 아가씨 대신 보복을 하고는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이 사건으로 퇴사하여 20여 일 일한 월급을 받아야 했지만 건달 반장들이 겁이 나서 회사에 가지 못했는데 37년 후 결국 국제상사는 망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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