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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를 왜 사국(四國)으로 인정하는데 주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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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를 왜 사국(四國)으로 인정하는데 주저할까?
  • 조민규 기자
  • 승인 2017.08.31 1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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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불교학술대회,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성황리 마쳐
▲ 가야불교 학술대회에서 6명의 교수들이 열띤 발표를 하고 있다.

"가야에 불교는 있었을까. 그보다 먼저 가야는 과연 존재했을까. 서기 42년 가야를 건국했다는 기록이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전한다. 그러나 역사학자는 가야를 포함하는 삼국에서 사국(四國)으로의 인정을 주저하고 있다."

가야불교학술대회가 지난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김해시와 동국대학교 세계불교연구회, 민홍철ㆍ김경수 국회의원이 주최해 의미가 깊다.

총 400석 규모의 국회도서관 대강당은 새벽부터 버스를 타고 서울 여의도 국회로 상경한 김해지역 스님 50여분과 불교신도ㆍ종친회원 등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늦게 도착한 시민들은 학술대회장 복도에 간이의자에 앉자 참관을 했으며 행사장으로 들어가지도 못하는 시민들도 100여 명이나 됐다.

이날은 가야사에 대한 김해시민들의 기대와 성원이 뜨겁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리임이 분명했다.

▲ 고영섭 교수.

첫번째 주제 발표에 나선 고영섭 동국대 교수는 "한반도 남부에 자리했던 가야는 고구려와 백제, 신라에 맞서며 왜국까지 경략했던 제4의 제국이었다"며 "수로왕은 붓다의 성도자이자 우리의 영원한 고향인 '부다가야'를 의식하여 불교식 국명인 '가야국' '대가락'으로 정했다"고 강조했다.

고영섭 교수는 "나아가 수로왕은 가야의 새로운 왕성터를 '십육 나한이 살만한 곳'이자 '일곱 성인이 살만한 곳'이라는 불교적 왕성 비정을 통해 국제적으로 앞선 선진 문물인 불교적 이념에 의한 나라를 건설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영섭 교수는 "수로왕이 대륙에서 서해를 건너온 서기 42년은 가야국의 건국 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왕에 의해 법제적으로 공인된 가야불교의 시원년이기도 했다"고 시사했다.

고영섭 교수는 "수로왕의 8대손인 질지왕은 수로왕의 뜻을 받들어 '대왕사'와 '왕후사'를 건립함으로써 불교 공인을 제천명 했고 재확인 했다. 이후 가야는 불교적 이념에 의해 나라를 통치하면서도 철기문화와 조선(造船)기술을 주축으로 대륙과 해양과 교역하여 고구려와 백제, 신라에 필적하는 사국시대를 안착시켰다"고 진단했다.

금관가야는 가야제국을 주도한 나라였다는 점은 확실하게 주입시킨 셈이다.

▲ 남재우 교수.

'가야사 연구와 가야사의 지위'라는 주제를 발표한 남재우 창원대 교수는 "가야사 복원이 한국고대사의 완성이다"고 하면서 "삼국이 존재했던 시기에 가야는 삼국과 발전과정이 달랐지만 삼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한국 고대사회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말했다.

남재우 교수는 "가야사 연구는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점이 너무 많다"고 지적하면서 "연구과정에서 지나치게 고고자료에 의존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하며 시작부터 일제 관변역사가들에 의해 왜곡되었던 가야사 연구가 신라사ㆍ백제사 연구자들에 의해 또 다시 신라ㆍ백제사 중심 사관으로 흐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부족한 문헌자료 때문에 고고자료를 활용하고 문헌자료를 되짚어 보지만 삼국의 역사처럼 연구의 깊이와 폭을 확대하는 일은 쉽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 이영식 교수.

'Made in india는 없다'는 발표로 시작한 이영식 인제대 교수는 "현재까지 김해지역에 수 많은 발굴조사가 진행되었어도 인도 계통의 유물이나 유적으로 볼 수 있는 자료는 발견된 적이 없다"고 역설했다.

이영식 교수는 "가야불교에 관련된 모든 기술을 설렵해 보면 '삼국유사'의 고려시대 이전까지 소급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다. 17세기 전반 '진양지'의 칠불암에 관한 기술이나 1706년의 '명월산 흥국사 사적비문'이나 1812년 서림사(은하사)의 취운루중수기, 1915년 장우사의 '가락국사 장유화상 기적비문' 등이 그나마 돌아볼 수 있는 관련 기록의 전부이다"고 주장했다.

이영식 교수는 "고고학 자료 역시 마찬가지 상황으로 모든 유적을 정밀 조사한 바 있으나 가야시대까지 올라 갈 수 있는 자료는 전혀 확보하지 못했다. 결국 문헌기록과 고고학 자료 모두에서 서기 48년 허왕후의 도래와 동시에 이루어진 불교전래와 이후 484년 동안이나 가야인의 신앙이 되었다는 흔적은 확인할 수 없다"고 피력했다.

▲ 최경아 교수.

'Made in india는 있다'고 발표한 최경아 동국대 교수는 "가야에 전래된 인도불교의 모습을 추적하기에는 자료가 너무 빈약하다"고 전제하면서 "쌍어문양과 아요디야에서 눈에 띄게 자주 보이는 쌍어의 문양과 김해 지역과 경상남도의 사찰에서 왕왕 발견되는 쌍어문이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평가했다.

최경아 교수는 "파사석탑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한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재질이라는 것이다. 이는 인도 동부해안에서 볼 수 있는 재질이라고 했다. 가야불교의 남인도 전래를 주장하는 학자들에게 구체적인 증빙자료로 작용할 수 있다"고 표방했다.
 
최경아 교수는 "장유화상(長遊和尙)과 칠불암의 전설 등은 허황후의 동생은 출가한 비구로 허황후의 일곱 아들과 더불어 성불했다는 내용은 역사적인 사실이라기보다는 전설적인 측면이 강하다"며 "어떤 식으로든 가야에 불교가 존재했음은 명확하다. 그러나 가야 고분군에서 불교관련 유물이 전혀 출토되고 있지 않다는 지적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사항이다"고 갈무리했다.
 
김해 은하사에 있는 장유화상의 영정에서 그가 월지국출신임(月氏國來駕洛國長遊大和尙之照 )을 밝히고 있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것이다.

▲ 정진원 교수.

'missing chain'의 공백이 너무 커다는 정진원 동국대 교수는 "역사와 고고학계에서 엄격한 실증 사료 중심으로 바라보는 가야연구도 필요하지만 이제는 각 분야의 학제간 연구를 통해 국어학적 어원 고찰, 인도 산스크리트 문자 비교 연구, 힌두문화의 시바와 삭티 신앙을 비롯한 문화 교류 등 빅데이터 구축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제안했다.

정진원 교수는 "앞으로 중첩된 내용의 사료들과 교차 확인을 통해 원점에서 시작하고자 한다. 또 한편으로 김해 지역의 구전과 그 스토리텔링으로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는 가야 유적들의 자취를 귀기울여 듣고 공통 요소를 찾아나가고자 한다"고 조언했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가 중요한 시점이다는 점을 강하게 시사한 것이다.

▲ 김복순 교수.

마지막 발표에 나선 김복순 동국대 교수는 "수로왕 내지 백제, 신라, 왜의 초기 왕들의 연수는 이러한 허황후에 의해 전해졌을 범력에 의해 그 년수가 헤아려졌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들 나라의 상대 왕들의 긴 재위기간은 이러한 범력에 의한 계산에서 나온 것으로 보았다"고 예측했다.

김복순 교수는 "신라와 가야의 불국토설의 정착으로 신라의 전불시대의 칠처가람설은 신문왕대 달구법로의 천도를 막고자 하였던 신라 구귀족들에 의해 주창되어 정착되어진 것으로 보았고 가야의 16나한설은 가야의 역사가 개황력과 개황록으로 기록되어지고 금관소경이 설치되어지는 신라 문무왕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비정해 보았다"고 평가했다.

이에 앞서 인사말에 나선 허성곤 김해시장은 "서기 42년 수로왕께서 건국한 고대가야의 왕도로서 머지않아 가야건국 2000년을 바라보게 됐다"며 "김해시는 가야복원사업 추진과 국립김해박물과 유치, 시립대성동고분박물관 개관, 가야유적 발굴 등 가야사를 복원하기 위해 다양한 일들을 추진해 왔다"고 말했다.

또 허 시장은 "현재는 가야고분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가야왕궁발굴 복원, 가야역사문화도시 지정 등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 고대사를 제4국의 역사로 정립하기 위한 모든 분들의 지혜를 모아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추진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대한불교 조계종 교육원장인 현응스님은 "가야사에는 수많은 불교적 스토리텔링이 지역마다 산재하고 있다. 종교와 신화와 전설은 서로 어우려져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어 기록과 자취로 전설로 오늘에 까지 전해오고 있다"면서 "가야사를 복원하고 재정립하는 데는 가야불교를 재조명하는 일이 매우 긴요하다"고 조언했다.

현응스님은 "김해는 500년 가야사의 중심지이자 맹주의 역할을 한 김해금관가야가 번성했던 고장이다"며 "21세기 현대에 와서 다시 김해가 중심이 되고 좌장이 되어서 가야의 역사가 소재한 20개 지자체의 관심과 적극적 동참을 이끌어내어 가야사를 다시 복원하여 재정립해 주실 것을 바란다. 아마도 많은 전문학자들도 동참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가야사를 한국사 내에서 제대로 복원하고 정립하고자 하는 '큰 뜻'을 북돋아 주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 허성곤 시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 대한불교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스님.
▲ 발표를 듣고 있는 허성곤 시장, 민홍철ㆍ김경수 국회의원.
▲ 참석한 스님들이 경청하고 있다.
▲ 이날 많은 시민이 참석해 가야사에 대한 뜨거은 기대를 반영했다.
 ▲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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