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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때 신어산에 감로사ㆍ구암사가 있었다김해시ㆍ중세사학회 학술회의서 동의대 최연주 교수 주장
조민규 기자 | 승인 2018.04.10 10:54
▲ 최연주 동의대 교수.

고려시대 때 김해 불모산에 장유사(長遊사)가 있었고 신어산에는 감로사(甘露寺)와 구암사(龜岩寺)사가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를 통해 고려는 새로운 불교문화를 수용할 수 있었고 고려 건국 이후에는 불교계 변화가 많았다는 것이다.

즉 김해와 인접해 있던 경주가 수도의 기능을 했던 통일신라와는 달리 개경으로 수도로 하는 고려시대에는 중앙과는 다른 형태의 지역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김해시와 한국중세사학회가 `중세도시 金州, 김해의 재발견`이라는 주제을 가지고 지난 6일 김해문화원에서 학술회의가 열렸다.

이른바 가야왕도 김해의 역사적 위상을 높이고 고려시대 김해의 역사와 문화를 재조명한 것이다.

특히 김해에서 처음 개최되는 고려시대의 `김해의 불교와 사원` 학술 발표는 뜨거운 관심을 불러 모았다.

이날 최연주 동의대 교수는 "김해는 낙동강 본류와 지류의 곡저(谷低)평야를 중심으로 농경지가 발달하여 선사시대부터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며 "16세기에는 감로사, 금강사, 구암사, 십선사, 청량사, 이세사, 운점사, 진국사, 명월사 등 9개 사원이 있었다"고 정의했다.

최 교수는 "고려시대 김해는 경남 지역사회에서 9개의 주읍(主邑) 중 하나로서 그 읍세가 강성했던 곳이다"면서 "김해지역 사원들은 지역공동체의 수호신으로 숭앙되어 왔으며 그 숭배는 지역적 정서를 귀일시키고 사상적 통일을 이룩하는데 기여했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그는 "나말여초 김해지역은 해로(海路)와 강로(江路)를 통한 당과의 연결이 용이하고 무역을 통한 경제기반을 확장하여 독자적 세력을 구축할 수 있었다"며 "고려초기 장유사가 창건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으나 현존하는 사원과의 연관성은 구체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김해는 고려시대에는 개경이 수도로서 기능하게 되자 가장 원거리에 위치하게 되었다"면서 "구암사ㆍ호계사ㆍ감로사 등 사원은 그 창건 연대를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 김해지역 세력과 연계되었거나 지역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진단했다.

또 그는 "고려 중기 이후 가장 번성한 사원은 감로사로서 원종대 원감국사 충지(沖止)에 의해 사세가 크게 확장되었다"고 하면서 "감로사는 조선 태종 7년 전국의 총 88개 명찰(名刹)을 자복사(資福寺)로 지정할 때 문경 사자사, 하동 양경사 등과 함께 감로사는 자은종 17개 사원 중 하나로 편성되었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김해지역 내에 분호(分戶)하고 있는 사원 등에는 아쉽게도 각 유적지의 창건연대 등을 알려 줄만한 결정적 유구는 발굴되지 않았다"고 전제하면서 "감로사지 삼층석탑, 팔성암지 마애여래삼존좌상의 양식 등을 통해 삼국시대부터 존치한 것으로 추정되며 본산리사지 봉화산마애불 양식 등을 통해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소개했다.

그는 "선지사지에서 출토된 `선지사` 기와편을 통해 사원의 명칭을 정확히 파악한 사례도 있다"며 "나머지 유적지는 기와와 청자편을 통해 유적의 편년을 추정했고 유적의 층위가 복수로 조사되어 여러 시대에 걸쳐 형성된 경우도 상당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최 교수는 "20여 개의 유적지의 각종 유물 등 구분을 통해 삼국시대 2건, 통일신라시대 4건, 고려시대 10건, 조선시대 1건으로 조사되었다"면서 "삼국시대는 은하사, 팔성암이었으며 통일신라시대는 감로사지, 덕산리사지, 본산리사지, 팔성암지, 통천사지이다"고 구분했다.

또한 그는 "고려전기로 구분되는 것은 안곡리사지, 구산동사지, 임강사지, 범방동 삼층석탑이다"고 강조하면서 "고려 후기는 망월석탑, 영구암 삼층석탑, 유하리사지이다며 조선시대는 도요리사지이다"고 단정했다.

따라서 고려시대에 창건된 사원이 다수 분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고 마애블의 편년을 구분해 본 결과 역시 고려시대가 많았다고 평했다.

또 마애블이 석재라는 특성 상 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었지만 다수가 건립되었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지역 불교문화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최연주 교수는 "김해지역 사원의 증감이 고려후기 또는 조선중기를 전후하여 황폐화 되거나 방치되고 있었다"면서 "고려 후기 한창 창궐했던 왜구에 의해서도 상당수가 약탈과 방화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많았다"고 평가했다.

▲ 학술대회에 참석한 가야불교문화진흥원 이사장 인해스님과 내빈들.

조민규 기자  cman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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