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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氣' 막힌 김해 -5- 제8~9대 국회의원 김영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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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氣' 막힌 김해 -5- 제8~9대 국회의원 김영병
  • 경상도촌놈 조유식
  • 승인 2010.11.27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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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에 김해지역 국회의원 신상우, 김택수 전 의원에 대해 기억나는 대로 글을 쓰면서 그분들의 선거유세와 정치 활동시절을 잠시 떠올려 보기도 했다.

필자뿐만 아니라 그 시대를 함께 영위했던 많은 지인들도 그리움과 아쉬움으로 그 분들을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조심스레 이 코너를 이어가고 있다.

제3공화국 아래 실시한 제8대 국회의원 선거(선거일 1971년 5월 25일)에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공화당 총무인 김택수 의원을 제치고 김해지역구 공천을 받아 출마한 김영병 후보가 당선 되었다.

당시 김해지역 유권자들은 이 공천에 대해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별 문제 없이 국정활동을 활발히 해 온 김택수 의원이 당연히 공천을 받을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충격은 더욱 컸다고 했다.

김영병 후보는 김해 출신이지만 김해에서는 많은 활동을 하지 않았고 1952년 동아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한 후 1966년 해외개발공사 전무이사, 1968년 경제담당 무임소장관 보좌관, 1971년 공화당 훈련부 부장을 역임하는 등 중앙에서만 활동을 했다.

요즘말로 하면 낙하산 공천이었지만 군민들은 그에게 표를 몰아주어 당선시켰다.

하지만 이렇게 당선된 제8대 국회의원은 1년 4개월 후인 1972년 10월 10일 유신헌법 통과로 국회가 해산됨으로 인해 국회의원직도 날아가 버렸다.

(유신헌법-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의 대통령 간접 선거, 임기 6년 대통령, 중임제 폐지, 대통령이 국회의 3분의 1 추천권(유신정우회), 긴급조치권(헌법을 초월), 제 4공화국 출범(1972, 유신체제)) 1973년 중선거구제가 된 김해선거구는 양산이 포함되어 1선구에서 2명을 선출 하게 되었다.

김영병 전 의원은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화당 공천을 받아 김해, 양산 선거구에서 신상우(신민당) 의원과 함께 당선되어 재선 의원이 되었다.

김영병 의원과 신상우 의원이 국회에서 활발한 국정활동을 하고 있던 시점인 1978년 2월 25일 당시 김해군 대저읍, 명지면, 가락면 등 낙동지구가 부산시로 편입되어 버렸다.

김해 군민들은 김해 국회의원들의 방관 속에 김해 땅을 부산에 빼앗겨 버렸다며 연일 규탄 집회를 가지기도 했다.

이때부터 김해국제공항이 부산ㆍ김해 국제공항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김해 땅 부산 편입 반대 운동을 주도했던 필자와 사회단체들을 비롯한 군민들이 반대투쟁을 하였지만 부산의 야욕을 막을 수는 없었다.

부산에 편입된 이 지역 대부분이 그린벨트와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버리는 바람에 32년 동안 재산권 행사도 재대로 못하고 부산시의 쓰레기 매립장만 들어서게 되었다.

요즘 김해시의 발전을 보고 다시 김해로 돌아가고 싶다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고 한다.

김해 땅 낙동지구가 김해 사람들로부터 멀어져 가면서 이들 국회의원들도 정치와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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