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의 왕(급) 무덤들인 대성동1호분보다 약 30년 늦은 시기인 5세기 후기에 해당하는 대형수혈식석곽묘(73호분)와 무문토기시대 개석목관묘(84호)가 대성동고분군에서 처음으로 조사됐다.
대성동고분박물관은 김해시 대성동 434 대성동고분군 6차 발굴조사에서 5세기 후반인 73호 대형 수혈식 석곽묘에서 산모양을 새긴 금동판으로 만든 관테(臺輪)와 꾸미개인 입식(立飾)으로 보이는 금동관 일부를 출토했다고 밝혔다.
이 무덤에서는 투구와 작은 비늘(小札)을 꿰매 만든 갑옷인 찰갑(札甲)과 철촉군, 재갈, 다수의 토기류 등도 함께 나왔다.
수혈식석곽묘인 73호분은 비록 부곽이 딸리지는 않았지만, 무덤의 크기와 금동관으로 보아 금관가야의 수장묘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이 무덤에서는 투구와 작은 비늘(小札)을 꿰매 만든 갑옷인 찰갑(札甲)과 철촉군, 재갈, 다수의 토기류 등도 함께 출토됐다.
출토된 토기는 이단교호투창고배 등 신라식 토기들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가야적인 문양시문 방법과 소가야식토기가 부장되는 등 가야토기의 요소 역시 많이 포함했다는 것을 확인됐다.
84호 석개목관묘는 청동기시대후기 전반의 늦은 시기에 해당하는데, 삼한시대 목관묘에 주로 부장되는 직경 1.5mm~3.0mm의 남색과 옅은 청록색 유리제 소형 환옥이 다량으로 출토됐다.
이는 한반도에서 출토된 유리제 소형환옥 중 가장 빠른 시기의 사례로 이 환옥의 계통과 제작시점에 대해 많은 논쟁이 예상되며, 석개목관묘의 하한시점과 삼한시대 목관묘와의 관련성 여부 역시 앞으로의 연구과제로 남았다.
이외에도 4세기 1/4분기의 대형목곽묘가 대성동고분군에서는 확인되지 않다가 이번에 조사되는 등 금관가야 고분문화 연구의 중요한 자료들이 다수 확보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