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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칼럼...밤 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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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칼럼...밤 마실
  • 편집부
  • 승인 2009.08.24 1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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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밤 마실

이춘영
김해연극협회장

저녁을 먹은 후 누군가와 마주 앉아 밝은 색이든 어두운 색깔이든 오늘 있었던 삶의 색깔을 정리해 보는 건 행복한 일이지만 막상 그렇지 못할 때의 우울함을 덜어낼 수 있는 건 뭐니뭐니 해도 밤마실 돌기가 제격이다.

매일 만나는 사람도 매일 그 느낌이 달라지는 법인데 산책이야 조금씩만 코스를 바꿔주면 제법 그 재미가 쏠쏠해진다. 더구나 날로 늘어나는 뱃살이 이젠 뒷꿈치없는 신발까지 등장시켜 새 신발 신고 걷는 재미도 늘어난 데다가 후텁지근한 날씨까지도 사람을 밖으로 내몬다.

이상하다. 막상 산책하기로 마음먹고 밖으로 나오면 일단은 스치는 사람들이 무섭거나 짜증나지 않고 정겹다. 나처럼 마실 나온 부부들의 한가로움이 반갑고 끌어안고 걸어가는 풋내나는 연인들의 뒷모습도 피식 웃음을 띠게 한다.
스포츠센터 옆을 지나 대청천을 따라 걸으니 작은 개 한마리가 내 곁에서 몇번 쭈빗거리더니 달려들기 시작하는데 우습게도 겁먹은 표정이 역력해 용기를 내어 쫒아본다. 평소에 발바리 한 마리도 무서워서 돌아가던 내가 강아지를 정면에서 쫒을 생각을 하다니...제법 용기가 가상하다.

게다가 목줄 묶으라고 주인한테 호통까지 치고 돌아서는데 순해빠진 주인 아저씨나 강아지에게 조금은 미안하다.

검도관에서 우렁찬 기합 소리가 울려나온다. 잠시 기웃거리는 문틈으로 이제 갓 들어온 듯한 아저씨가 약간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머리' , '손목'들을 외치며 소리만큼 자신없는 동작을 되풀이하고 있다.

갑자기 오카리나 배우러 갔던 생각이 난다. 대황하의 도도한 물줄기, 실크로드의 아름다움을 감미롭게 펼쳐내 주는 오카리나의 아름다운 선율에 매혹돼 학원을 찾았다가 '삑','삐익'하는 불협화음을 내는 사람들의 진지한 표정을 뒤로하며 실망을 안고 돌아서던 그 때를... 완성되고 숙달된 것이 좋지만 이젠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두렵다.

다리 건너 대청성당 앞을 지나가다 보니 성모님께서 서 계신다. 성당은 늘 내 가슴 한 구석을 아릿하게 하는 곳이다. 서먹한 걸음으로 다가가 인사를 드리나 본당까지 들어갈 용기는 아직 나지 않아 또 돌아선다.

어릴 적 혼자 성당에 나갈 때 어른이 된 내가 온 가족을 차에 태우거나 아이들 잡은 손을 흔들면서 일요일 아침 성당가는 꿈을 무수히 꾸곤 했다. 언제나 그 꿈은 파편이 되어 가슴 한켠에 응어리로 남아있다가 불쑥불쑥 나타나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들곤 한다.

장미 덩굴이 예쁘게 피었던 아파트 담벽을 따라 돌아간다. 병원과 골프장의 휘황한 불빛이 멀리 보이는 앞에 큰 십자가가 붉게 빛나고 있다. 그래 사실 교회나 병원이나 골프 연습장 중 어느 것이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해 줄까?
사람을 구하는 방법은 달라도 누군가를 편안하게 해 준다면야 뭉쳐있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엉뚱한 생각도 하며 걷는다.

교차로 조금 못미처 눈에 띄는 '행복한 교회' 그 옆에 '허브 다이어트 클럽'- 행복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감사하기 위해 사람들은 교회에 갈까, 아님 교회에 가면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까? 풀잎 하나로 행복해지고 풀잎 하나로 살을 뺄 수 있다면 사람이란 자신의 큰 소리와 관계없이 얼마나 작은 것에 의지하고 작은 일에 얽매어 사는가?

연세힘찬정형외과와 맑은 이비인후과를 지나친다. 힘차고 맑게 산다는 것만큼 좋은 일이 또 있겠는가마는 남의 힘참과 맑음을 평생 부러워만 하다가 자신의 삶은 허겁지겁 소모해 버리는 이가 더 많으리란 생각도 해 본다. 가만, 대청고등학교를 지나왔지...'꿈에 날개를 달아준다'는 글귀가 펄럭이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은 꿈이 없다는 걸, 꿈꿀 시간이 없다는 걸 사람들은 알기나 할까? 어른 들의 못다 이룬 꿈에 아이들의 꿈을 채색해 놓고는 마치 아이 자신의 꿈을 위해 헌신하는 양, 뿌듯해하는 부모들이 대부분이 아닐까..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노블레스 미용실 쪽으로 치고 올라간다. 이젠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듣기 시작한다. 땀도 흘린터라 눈물도 흘리고 싶던 터라 잘 됐다 싶은 마음으로 그냥 걷는다. 한참을 약간은 어둑한 곳을 묵묵히 걸어올라가니 왼쪽편으로 에이스 골프장과 유치원이 보인다.

아. 엊저녁에 다른 길로 오다가 여길 지났다는 생각을 문득 해 본다. 국민학교 옆에 형사 기동대 차가 서 있어 무슨 일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코너를 도니 온 도로에 불빛이 번쩍거린다. 폭포에서 나오는 길을 중심으로 음주 측정을 하고 있다.

문득 저 사람들 틈으로들어가서 나도 한번 숨이 찰 때까지 후-욱 불어 보고 싶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으로 걷고 있는데 익숙한 모습 - 횡설수설 투덜거리는 아저씨와 경찰 두 명이 버스 쪽으로 걸어간다.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가 좋아 다리 난관에 기대 밑을 내려다 본다. 뭔가 멋진 시 조각이나 의미있는 말 한마디 뱉고 싶은데 생각은 안 떠오르고 팔꿈치가 닿은 난관만 촉촉하다.

푸르지오 아파트 옆으로 내려오다 문득 예전에 지나칠 때마다 걷고 싶었던 길 - 대청천과 아파트를 앙 옆에 낀 채 나 있는 오솔길로 접어든다. 꿈으로 남겨둘 걸, 어둡고 울퉁불퉁한 길을 뒷꿈치 없는 운동화를 신고 연방 기우뚱거리며 걸어내려가려니 길이 후회만큼 길게 느껴진다.

공터에서 학생들이 농구를 하고 있다. 아, 여기가 대청고 정문 쪽이구나. 다리를 건너 공원을 걷다보니 군데군데 벤치에서 사람들이 두런거리고, 몇몇 부부들의 모습 - 하나는 연방 이야기하며 다른 이는 고개를 끄덕거리며-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들 몇몇이 대청천으로 돌을 던지고 있다. 작은 기분좋은 울타리 안에 나도 같이 갇혀있는 것같아 금새 기분이 좋아진다.

'낙동강오리알'을 오른쪽으로 흘려보내고 이젠 내 보금자리 불빛을 따라 걸으니 레드페이스 앞에 부부인듯한 몇몇 사람이 의자를 놓고 술잔을 기울이고, 안주인인듯한 여자가 연기를 후후 불며 연방 고기를 굽고 있다. '쉬었다 가라고 한잔 하고 가라고' 권하는 사람 없지만 곁을 지나치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유쾌한 대화에 끼인 듯하여 또 기분이 좋아진다.

많이 걸었다고, 땀에 이렇게 절었다고 엘리베이터 속에 비친 또다른 나에게 중얼중얼대는데 며칠 째 괴롭히며 따라다니는 화두가 중얼거림을 타고 또 슬며시 흘러나온다. '내가 남에게 부담스런 존재일 때 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 일상이란 이다지도 벗어 던지기 힘든 굴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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