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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인생은 떠돌이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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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인생은 떠돌이로 산다.
  • 영남방송
  • 승인 2013.07.09 1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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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기란(정숙)  수필가>

어린 시절은 고향 전남 보성에서 자랐다. 고향이 그립고 소꼽놀이 하는 친구도 헤어지고 달랑 단봇짐을 들고 부모님 따라 부산 대연동에 정착하여 도시 그늘이 설설하여 낯설고 물설은 새둥지에는 새천지 같았다.

그런데 도심의 하늘은 푸르고 푸르건만 마음은 무거웠고 시내가 아니고 산비탈 판자촌이라 불편하고 생활하는 데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공중변소에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 참 신기하기도 했다.

서서히 해가 저물고 어두움이 닥쳐오면 판자집은 없어지고 눈부시게 많은 불빛들이 광경으로 펼쳐져 그야말로 시골에서 볼 수 없는 풍경들이 펼쳐지고 밤과 낮 사이가 확연히 달라 보이는 것은 어린 마음에 이색적인 모습이 도시의 모습이구나를 되내여 보았다. 이 많은 사람들이 도심을 활보하며 농사도 짓지 않고 무엇을 먹고 어떤 일을 하는가 하고 의심도 가고 학교의 학생수도 많고 이런 곳이 도시이구나 하고 생각은 깊어만 갔다.

그런데 우리 집은 달라진 것이 없고 어렵고 힘들고 고된 삶은 계속되고 한곳에 오래 정착하지 못하고 이사를 자주 옮기는 것이 싫었다. 왜냐하면 학교의 친구를 사귈만 하면 다른 학교로 옮기니 정다운 친구 보고 싶은 친구 속마음을 털어놓고 얘기할 친구도 없었으니 초등학교의 마음 맞는 친구도 사귀지 못했다.

어떻게 해서 어렵게 장만한 10평 정도의 땅을 구입해 가족들의 힘으로 학고방같은 집을 건축하여 우리 집이라고 하니 셋방살이 보다 집이 있으니 기분이 좋았다. 집은 편히 쉴 수 있고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즐겁고 행복했다. 행복은 마음에서 온다는 것을 그때 느꼈고 마음이 즐거우면 행복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데도 어렵게 장만한 집은 오래 지키지 못했고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고 또 셋방살이로 생활이 시작되었으니 왜 우리 집을 남에게 돌려주어야 하는가 하고 부모를 원망하고 한 곳에 오래 살지 못할까.

어린 마음은 항상 불안 속에서 살아야 하는가 다른 친구 친구들을 보면 부러움으로 보이고 내가 자라서 돈을 많이 벌어 가족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꿈이였다. 성장하면서 꿈과 현실은 상반되고 뜻대로 되지 않으니 꿈을 실현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과 성실이 필요했다.

한데 아버지의 알콜 중독자로 가정은 흔들리고 어머니가 발 벗고 나서서 생계를 꾸려가니 잘 산다는 것은 꿈과 같았다. 여기에다 아버지는 폭력을 휘두르고 견디기 힘들어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지 않을 수 없었다.

학교는 갈 수 없게 되었고 어머니와 함께 살기를 결심하고 어린 나이에 직장생활을 하며 입에 풀칠하기에 급급하였는데 이사를 옮기고 얼마 있으면 어떻게 알았는지 아버지는 찾아와서 술주정을 부리고 없는 돈을 요구하고 몇 푼 지어주면 가시곤 했다.

부산 여러 곳을 전전하며 부암동, 연지동, 금사동 등을 다니면서 피하고 피했으나 찾아오면 집은 수라장이 되고 창피하기까지 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따로 살아도 불안한 생활은 계속되고 이사를 갈 때 이웃이나 아는 사람에게 비밀로 하고 간편한 이삿짐이지만 자력으로 옮기고 한 번에 다 못하고 여러 번 옮기고 고생은 말할 수도 없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억척같은 일을 어머니와 함께 했으니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니 눈가에 이슬이 맺히기도 하고 삶이란 이렇게 어렵고 힘들구나 하고 넋두리를 늘어놓고 있지만 눈물겨운 일은 잊을 수 없다.

나이가 들어 결혼도 하고 자식을 키우며 지난 일을 잊어버리게 하고 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악착같이 살아야지 하고 또 다짐도 한다. 나의 신조는 "성실, 친절, 봉사"로 사회에 기여하고 힘이 있을 때까지 살아가리라 속을 삼키며 세월의 수레바퀴는 돌고 돌아 45년이란 세월을 부산에서 희노애락의 장단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이 인생길이다.

지긋지긋한 이사는 하지 않을려 했는데 살다보니 어머니가 하늘나라에 계시고 울적한 마음을 달래고 안정시켜 보려고 친척이 있는 경기도 안양에서 부천으로 제법 먼 곳으로 가게 되었으니, 부산 생활의 아픈 상처를 치유하고 싶었으며 또한 친척도 보고 싶었고 옹기종기 모여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만 해도 기뻤다. 이제 50년 살아오면서 내집을 장만한다는 것은 인생일대의 경사요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헌집인 연립주택을 구입해서 리모델링하니 궁전과 다름없다. 남이 보기에는 별 것 아니지만 나에게는 큰 축복이요 행복이 굴러온것 같다.

이제는 이사할 일도 없을 것이고 영원히 이곳에 있고 싶은데 믿고 믿었다. 인생을 투자하고 마련한 것이기에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인생의 앞길은 알 수도 없불부면 견디기가 힘들어 괜히 여기까지 왔구나 하고 후회스럽기도 하고 친척 외는 아는 사람도 없고 사람의 마음은 조석으로 변한다더니 내가 그렇다 혹한과 폭설로 환경의 변화는 부산의 친구들이 그립고 따뜻한 부산이 그립기도 하다. 그렇다고 수입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딸들의 직장도 울산이고 가족이 부산 근교에 있는데 혼자 객지에 있으니 외톨이로 경기도에 있는 것이 쓸쓸하고 괴로웠다.

전세를 내 놓으니 금방 계약이 되고 기왕 이사를 할려면 부산으로 가는 것이 좋을듯 해서 친구들과 이웃들의 정을 잊지 못해서 부산으로 결심을 했다. 마음이 가는 곳에 정이 가고 친구들이 반겨주고 기쁘고 행복하리라 생각한다.

제2의 고향은 부산이다. 인생은 떠돌이로 살지만 애정이 가는 부산이기에 체험이나 경험을 통해서 인생살이의 참다운 행복도 감정도 우애도 다시 회상하며 영원히 부산에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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